정의사회

[밑줄] 안수찬 외, 『4천원 인생』

두괴즐 2011. 6. 25. 10:35

[밑줄긋기] 안수찬 외, 『4천원 인생』


p. 14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치열하게 그려내는 것이 당대 예술의 정수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누구도 예술에 그런 주제넘은 요구를 하지 않는다. 문학에도, 영화에도, 음악에도. 그러나 2010년이라는 시점에 만약 아직도 그런 감수성을 위해 비워둔 자리가 있다면 그곳에 『4천원 인생』이 꽂혀야 한다. 이 책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기 때문이다.(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문)


p. 16


내가 ‘비정규노동’이라 하지 않고 굳이 ‘불안노동’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첫째,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구분만으로는 만성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오늘날의 노동자들의 처지를 총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불안노동의 전면화를 상징하는 신조어 ‘프리캐리어트(precarious+proletariat 불안노동자)’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비정규노동이라는 용어보다 불안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국의 현실을 다른 사회에도 보다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불안노동’이라는 말이 물질적 처지 뿐 아니라 질존적 불안에 늘 시달리며 점점 황폐해지는 영혼의 상태까지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

아무리 전세계적 문제라고 해도 OECD 국가 중 한국만큼 이 문제가 심각한 국가는, 단연컨대 없다. ‘비정규직’이 시대적 화두가 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성찰과 개선은커녕 갈수록 악화일로다. 특히 생애 첫 취업을 앞둔 20대, 고졸 이하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가장 약한 집단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해왔고 여전히 희생당하고 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한국은 OECD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고 그중에서도 청년세대의 자살률이 유독 높은 나라가 됐다. 출산율 또한 세계최저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난 개혁정권 10년과 이명박 정부 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희생양 만들기’였다.


p. 131


 일이 그렇게 풀려나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길이 없지는 않다. 마트의 수익을 줄이면 된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매겨 임금을 주고, 점포가 내야 하는 수수료도 인하하고, 대형마트가 좀 덜 벌면 된다. 그러나 이상은 현실에 간단히 압도당한다. “그래도 우리 마트가 잘되는 게 좋죠.” 영호가 말했다. 피로가 덮개를 이루듯 쌓여도 마트 노동자들은 마트 탓을 하지 않았다. 마트가 망하는 게 가장 큰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p. 132


고용주에 대한 불만도 까맣게 잊었다. 책상물림인 나에게 그것은 수수께끼였다. “지금 사장이 마음에 든단 말이에요.” 판촉 이벤트 회사에 고용된 영희가 말했다. 돼지고기 작업장에서 일하는 영철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사장하고는 말이 통하거든요.”비정규직으로 자신을 고용한 용역업체 사장을 ‘인간적’으로 믿는다고 그들은 종종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썼는지,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사장의 ‘말’을 기억했다. 그들은 제도를 신뢰하지 않았다.


p. 133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통로라고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 좋은데 민주노총은 꺼림칙하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영철이 말했다.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끌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p. 145


 마트의 매출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처음에는 마트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주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트에 입점한 점포 사장들의 처지에 마음이 쓰였다. 마트의 모든 점포는 매출의 20%를 ‘자릿세’ 몫으로 마트 본사에 지불한다. 마트는 동일 품목을 다루는 복수의 점포를 입점시켜 서로 경쟁시킨다. 대형마트는 동네 슈퍼를 먹어 삼켰다. 그렇게 등장한 대형 마트끼리 다시 무한 경쟁했다. 생존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려고 대형 마트는 입점한 자영업자의 손실을 수수방관하거나 오히려 부추겼다. 자영업자의 손실은 마트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마트 노동은 ‘먹이사실 노동’이었다.


p. 185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민과 고향에 대한 진한 향수를 넘어서는 건 부모와 형제자매를 먹여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이주 노동자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리고 가족을 만들기도 한다. ‘이주 노동자도 사람이다’라는 간명한 진실은 그들이 여권 안에 한국 체류 비자를 갖고 있는지에만 쏠린 눈길을 조금만 거두면 보인다.


p. 293


노동 문제를 고민하는 위정자들이 현장에서 딱 한 달만 일하면서 어느 노동자건 자유롭게 인터뷰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면, 구체적이고 훌륭한 정책 대안이 수없이 나올 거라고 절감했다.


p. 295-296


 론스타 같은 해외 투기자본은 마구잡이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투기로 수조원대의 돈을 벌어간다. 투기는 생산 없이 자본을 증식하는 건데, 그건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보장을 해준다. 반면 이주 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뭔가 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의 위선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