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사회

[밑줄] 한윤형·최태섭·김정근,『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두괴즐 2011. 6. 1. 08:58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저자
한윤형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1-04-15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대기업 면접부터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청춘에게 내려진 최종 명령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밑줄] 한윤형·최태섭·김정근,『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여는 말


 마치 탄식처럼 ‘열정 노동’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이 말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이 사회가 얼마나 사람들의 열정을 당연하다는 듯이 착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틀어막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15)



1장 당신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라


 기업은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당신이 자본가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그에게 고용되지 못할 것이다. 구직자들은 제각기 특별한 존재임을 주장해야 한다. 말하자면 ‘영웅’이나 ‘초인’이 되어야 한다. ‘평범한 노동자’로 살기 위해 ‘비범한 존재 방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자본주의가 새롭게 발견한 열정의 ‘쓸모’이다. (35)


 열정은 제도화 되었다. 오늘날 면접관들은 열정을 ‘측정’한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답변은 간단하다. ‘악조건들을 얼마나 버텨 내는지’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면접관들에게는 우리를 모욕할 권리가 주어진다. 압박 면접이란 이름으로 성추행과 인신공격, 그리고 조야한 사상 검증이 횡행한다. 면접관들이 제시하는 과업들에 영웅적으로 훌륭하게 대처하는 자만이 취업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물론 거기서 끝이 아니다. 끝없는 자기 계발로 열정을 증명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47)


 각종 ‘경영의 기법’의 최종 과녁은 다름 아닌 ‘나’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언제나 도약을 준비하는 자세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자발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며, 혁신과 쇄신에 힘쓰는 ‘1인 기업’으로서의 나.

 이런 ‘경영 정신’의 뒷면에는 하나의 강박적 주문이 새겨져 있다. ‘나는 결코 노동자가 아니다. 내가 지금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즉, 나는 누군가의 명령이나 받으며 시키는 일을 하는 그런 수동적이고 나태한 노동자가 아니다. 능력을 계발하고, 인맥을 형성하고, 몸값을 올리고, 비전을 갖고, 성공과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자기 계발 담론은 ‘나’를 경영하는 주체로 인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상품으로 대상화하여 시장에 내어놓는 담론이다. (51-52)


자본주의의 발달한 생산력은 모든 사람을 입히고 먹일 만큼 성장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고용되지 못하고 낙오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들은 ‘잉여’가 된다. (54)



2장 대한민국 열정 노동 백서: 열정의 현장


 어째서 한국 사회엔 프로 게이머, 운동선수,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또 그들은 왜 자발적으로 이 무시무시한 경쟁체제에 선뜻 발을 내닫는가? 과연 한국의 젊은이들이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진취적이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일까?

 지난 세월, 일본의 연예인과 운동선수 중에는 ‘재일 한국인’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업이 아직까지도 연예인과 운동선수이다. 이처럼 한 사회에서 다른 방법으로 자아실현을 하거나 성취를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종류의 직업을 택한다. (73)


 이제 열정을 갖지 않는 당신은 죄인이다.

 코딩이 좋아서, 프로그래밍이 짜릿해서 IT업계에 뛰어든 개발자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것도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감내해라이다. 개발자들이 자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기제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103)


 이현은 미래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돈 벌려고 이 일을 하지 마세요. 돈 버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즐기고 싶은 사람들만’ 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 돈을 버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목돈을 만들어서 그것을 굴리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들은 자기의 노동을 팔아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IT노동자들이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으니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만 와라’라는 말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106)


 “그러면 법조인이 된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삼성 비자금 특검을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던데요?”라고 묻자 고시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죠. 사실 고시생들은 삼성 비리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얼마나 대단한 검사였는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양반이 나서서 폭로했는데도 다른 검사들이 이 사건을 처리할 수 없었던 거죠.(···) 굴비를 받을 수만 있고 때려잡을 수 없다면, 검사도 자본의 노예에 불과한 거지요.” (122)


 진보 정당이나 시민 사회 단체의 상근자들에게는 임금의 하한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형편이 좋지 않은 단체 같은 경우, 월 20만 원을 주는 곳도 있다. 그나마 ‘진보신당’에는 나이와 자녀에 따른 수당과 호봉 시스템 등의 임금 체계가 존재한다. 상근자에게 근로 계약서를 쓰게 하고 4대 보험 가입도 시킨다. 월급도 150만 원 정도이다. 그래서 운동권들끼리는 농담으로 진보신당 상근자를 ‘운동권의 대기업 정규직’으로 부른다.

 이런 상근자들이야말로 ‘열정 노동’에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과 삶을 분리시키지 못한다. 인간관계 역시 철저하게 ‘운동권’ 내부에서 맺는다. IT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프로그램의 코딩에 관해 고민하고,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것과 흡사하다. 그리고 IT노동자들이 자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개발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상근자들도 자신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활동가’이므로 자신들에게는 노동조합 같은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150-151)



3장 오렌지족, 그리고 ‘신지식인’의 열정: 열정의 역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정한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이 길만이 유일하다는 전문가들의 설교가 이어졌고,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대항했던 노동자들에게는 ‘이기주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제 정말로 ‘안정적인’ 직업은 공무원과 교사만 남았다. 덕분에 시시한 직업의 대명사였던 9급 공무원 채용에 엄청난 인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무지 하늘 아래 안정적인 곳이라고는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당신은 지금 마시멜로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는 달콤한 위로,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면 언젠가는 얻을 수 있다는 조언, 그것들의 진짜 의미는 사실 ‘그러니까 혼자 알아서 하세요’라는 냉정한 외면이다.(184-185)


 열정은 본래 대중의 것이었다. 오타쿠와 매니아들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자발적으로 배웠으며, 자발적으로 창작했다. ‘문화 산업’과 ‘벤처 기업’의 등장은 상황을 바꿔 놓았다. 취미가 일로, 일이 취미로 변했다. 열정이 산업의 내부로, 그리고 노동으로 유입됐다. 자본주의는 ‘열정’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 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열정의 노동의 본질은 다음 세 가지 진술이다.


 (1)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이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

 (2) 그러므로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3) 고로 나에겐 노동자의 권리가 필요 없다.


 열정 노동의 확산은, IMF사태라는 국내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창궐이라는 전 세계의 상황을 근간으로 한다.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의 열정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신자본주의는 ‘불안정함’이라는 운명을 새 시대에 부여했다.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거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요구되었다. 면접장에서도, 구직자가 열정을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인사 담당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널 대체할 사람은 많아’라고 이야기했다. (186-187)



4장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열정의 미래


 열정 노동의 현장엔 ‘미래의 창작자’가 되기 위해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들이 현장에서 열정 노동에 투여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양은 만만하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여건은 이것이 애초에 ‘취미였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열정 노동’의 진정한 함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열정 노동의 이념은 이제 모든 종류의 노동을 ‘열정 노동처럼’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열정 노동’은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찾아내도록 강제된 상황과 관련이 있다. 열정은 불안정성과 무의미함을 감내하는 태도를 요구한다. (198-196)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그리고 노동 계급의 죽음.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윽박질러지고 강요된 것이었다. 사실 1990년대 말 한국의 기업들이 정리 해고를 요구했을 때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유지를 제안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의 노동자들보다 이기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대박 아니면 쪽박’의 위험천만한 내기에 뛰어드는 이유는 위험을 회피할 방법이 없어서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예인이나 프로 게이머 같은 직업군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은 그들이 ‘열정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기대했던 수준의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벌어진 파업들에 대해 법원이 한 일이 바로, 노동자들에게 ‘위험 회피’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었다. 법원에서는 “정리해고나 사업 조직의 통폐합, 공기업의 민영화 등 기업의 구조 조정의 실시 여부”에 반대하는 파업은 원칙적으로 경영권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노조가 자발적 임금 삭감 등의 양보 교섭을 통해 얻어낸 고용 안전 협약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무력화되었다. (208-209)


 * 맺는 말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왜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부자가 될 수 없는가? 이런 질문이 이어질수록 열정은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간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창조적이어야 하고,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고, 문제가 생겨도 남을 탓하지 말아야 하고, 무언가에 미쳐야 하고······ 이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251)



[밑줄] 한윤형·최태섭·김정근,『열정은 어ë–.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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