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0)
Poetry
9.1
[감상] 시
- 나는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어쨌거나 시를 쓰곤 했다. 내 놓을 만한 것은 못되었지만 어찌됐든 썼던 것이다. 나는 어쩌다 시를 쓰게 되었던가. 돌아보면, 나는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울게 했던 장면, 그리고 그 사람들.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사건. 그리고 무력함의 환멸. 나는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달래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면서, ‘시’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담패설과 뒹구는 시, 기술을 전수해 주는 교실 속의 시, 치장된 옷가지 위에 앉아있는 시, “죽어도 싸다”라는 소리를 듣는 시.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나의 이런 태도가 시를 특권화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친구의 말이 맞다. 시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딴 세계의 것이 아니라, 지리멸렬한 우리들의 삶 속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하지만, 그 삶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영화 속 미자 할머니는 경기도의 작은 소도시에서 이혼한 딸이 맡기고 간 중학생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생활보조금과 중풍 든 노인을 간병하며 받는 돈이 수입의 전부인 그녀는, 그럼에도 레이스 달린 옷과 모자를 즐겨 쓰고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이다. 그런 그녀는 평생에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시 쓰기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애지중지 키웠던 손자가 자살한 여학생의 강간범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그것을 돈을 통해 합의로 무마시키려는 손자 친구들의 아버지들을 만나고, 게다가 자신은 돈도 없고, 의사는 자신보고 치매에 걸렸다고 하고, 피해자의 어머니인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아름다움을 떠들고.
쫓아오는 삶의 바람은 꽃과 살구와 레이스를 흔들다. 그녀를 흔든다.
시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미자 할머니는 더 이상 태평한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는다. 시 창작 교실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정(情)이라는 이름으로 기만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죽은 소녀를 기어이 자신의 삶에 끌어온다. 함께 배드민턴 치던 손자가 경찰관에게 잡혀가도록 긁히는 마음을 견딘다. 그녀는 시란 꽃을 보고 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부조리와 부도덕의 기만을 찢어 삶을 온전히 끌어안았을 때,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 쓰기를 관둔지 꽤 오래 됐다. 사실, 관뒀다기 보단 쓸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해야 한다. 나는 그 동안 문학 전공자가 되었고, 문학이론을 공부하고, 창작론과 창작기법들을 배워왔다. 예전에 썼단 시들을 보며 ‘손발이 오그라든다’며 그 시절을 부인하고 우습게 여기는 사이에,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 버렸다. 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기검열의 강화”를 말하곤 했지만, 사실은 ‘부조리와 부도덕의 기만’을 찢을 용기를 잃었다. 씁쓸하게 웃으며 “시는 돈이 안 되잖아?”라고 말하는 나는, ‘쓸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어디에 버리고 온 것일까.
자신이 작가이기도 했던 이창동은 <시>를 통해 ‘범람하는 화려한 색깔과 소리, 향기’ 속에 사는 우리에게 ‘시가 죽은 시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화려함 속에 안도하고 있던 너와 내가 기만한 ‘죽음’을 보게 한다. 그새 벌써, 불편한 마음을 거절하고 다시 관성을 타고, 이 시대의 속도감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든다.
나는 그 때의 그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시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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