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영화감상] 업

두괴즐 2011. 6. 6. 23:05



(2009)

Up 
9.3
감독
피트 닥터, 밥 피터슨
출연
이순재, 에드워드 애스너, 크리스토퍼 플러머, 조던 나가이, 밥 피터슨
정보
어드벤처, 애니메이션 | 미국 | 101 분 | 200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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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 관념의 자켓을 벗고, 모험을 해보자. 친구의 손을 잡고서. 지금 여기서부터.



 영화 <업>은 모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모험은 관계를 동반한다. 영화의 주인공 칼에게 모험심을 심겨준 영웅은 찰스 먼츠이다.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다. 그가 바로 서태지다. 수능시험만이 절대적 진리인양 취급되던 나의 학창시절에 그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 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교실이데아) 서태지는 수능시험과 대학이라는 것이 내재하고 있는 폭력을 고발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에 “됐어!”를 외쳤다. 나는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며 모험과 혁명을 꿈꿨지만, 수능을 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나는 현재 대학원 재학 중이고 서태지는 자퇴한 중졸 학력자다. 나는 여전히 위태로운 현실 앞에 모험을 뒤로 미루고 있고, 서태지는 여전한 모험의 항해를 하며 나를 유혹한다.


 영화 속에서 칼은 함께 모험을 꿈꿨던 소꿉친구 앨리와 함께 살면서 여생을 보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앨리는 칼의 곁을 떠난다. 이후 칼은 그녀의 사진과 대화를 하고,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집에만 기거한다. 가끔 어릴 적 꿈을 떠올리고, 모험을 위해 만들었던 일지를 만지작거리지만 그의 문은 굳게 닫혀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뱃지를 달고 있는 꼬마 러셀이 칼을 방문한다. 또 하나의 뱃지인 노인돕기 뱃지를 얻기 위해서다. 칼은 자기를 귀찮게 하는 러셀을 따돌리려 한다. 한편, 칼의 동네는 재개발로 공사가 한창이다. 칼은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가 않다. 결국 그는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수많은 풍선을 집의 손에 쥐어주어 함께 모험을 떠난다. 앨리가 만든 모험의 일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모험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요. 이제 새로운 모험을 하세요. -사랑하는 앨리”

 

 그런데 이 여행에 의도하지 않았던 일행이 생긴다. 바로 러셀이 함께 왔던 것이다. 칼은 러셀을 귀찮게 여기지만 나중에는 그의 모험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칼은 그렇게나 집착했던 자신의 집 대신 러셀의 손을 잡는다. 러셀은 칼이 집을 잃어버릴 때 진심으로 안타까워한다. 칼이 부인과의 추억이 깃든 집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칼은 이렇게 말한다. “저건 그냥 집일뿐이야.” 칼은 부인과의 사별 후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아 왔다. 그는 그저 수많은 자물쇠로 문을 단단히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단단했던 고립을 비집고 러셀은 기어들어왔다. 칼과 러셀의 모험은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했고, 각기 다른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칼은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었고, 러셀은 ‘모험이 그려진 뱃지’가 아닌 ‘진짜 모험’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교실이데아’에 매료되었음에도 학교를 그만두지 못했다. 왜냐하면 ‘모험 일지’ 조차도 준비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음악을 향한 모험’이라는 일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실천할 수 있는 열정이 있었다. 그저 막연한 꿈으로는 결코 ‘자퇴’라는 실천에 이를 수 없다. 서태지에게 있어서 “날 바꿨던 어떤 답안지”(울트라맨이야)는 강요당한 무력한 젊음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는 제시된 ‘답안지’가 ‘사기’임을 깨달았기에 기어이 일상을 부수고 모험에 뛰어 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뛰쳐나와 골방에서 함께 기타를 두들기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항해가 가능했다. 나는 지금 모험 일지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함께 항해를 할 친구들을 고대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항해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모임을 만들고 발언의 시간들을 가지는 것, 그 자체도 한편의 모험이지 않을까.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만 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라고. 이 말을 조금 변주하면 이렇게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사람들은 모험을 여러 가지로 생각만 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험을 체험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라고.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해도, 실제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리 많은 모험 뱃지를 모아도 진짜 모험을 체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관념의 자켓을 벗고, 모험을 해보자. 친구의 손을 잡고서. 지금 여기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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