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렉 (2001)
Shrek
8.9
<슈렉>
- 당신의 주위에 ‘슈렉’ 같은 분이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당신이 슈렉 같은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의 주위에 ‘슈렉’ 같은 분이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당신이 슈렉 같은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슈렉은 ‘엽기적인 그’로 보이지만 실은 ‘상처받은 그’이다. 사람들은 슈렉을 보면 “징그러운 떡대, 괴물이다.”라고 하며 무기를 휘두르거나 도망을 친다. 슈렉은 사람들이 “날 알기도 전에 비난부터 한”다고 고백한다. 그러한 상처들은 슈렉을 혼자가 되게끔 만든다. 그가 감행한 모험이라는 것도 실은 혼자만의 공간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슈렉을 비난하는 것일까?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남의 외모를 비난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고발한다.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알아?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인 거지. 안 그래도 다들 시시하게 보는데 자신이 더욱 시시해진다 생각을 하는 거라구. 실은 그 누구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데 말이야.(····)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런 거야.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없는 거라구. 그래서 와와 하는 거야. 조금만 이뻐도 와와, 조금만 돈이 있다 싶어도 와와,(···) 결국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면서 결국 그렇게 평생을 사는 거야. 평생을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말이야.1)(강조는 인용자)
그러니깐 실상 슈렉을 비난하는 사람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잘 생기고 예쁜 스타를 부러워하고, 나 자신을 그에 비추어 보며 부끄러워하면서 말이다. 슈렉은 그런 나에게(그리고 우리에게) 상대적 위안거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어줘야 한다.
‘비난하는 자’로 둘러싼 비참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의 잔소리를 좀 더 들어보자.
현실은 늘 당대의 상상력이었어.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돈다 거품을 물던 인간도, 아내의 사타구니에 무쇠팬티를 채우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던 인간도, 결국 아들을 낳지 못했다며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맨 인간도... 모두가 당대의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를 벗어나지 못했던 거야. 옛날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다들 낄낄거리지만, 그리고 돌아서서 대학을 못갈 바엔 죽는 게 나아! 다들 괴로워하는 거지. 돈이 최고야 무쇠 같은 신앙으로 무장하고, 예쁘면 그만이지 더 이상 뭐가 있어-당대의 상상력에 매몰되기 마련인 거야.(···) 그러니까 미리, 그 외의 것을 상상하지 않고선 인간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이를테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 와 같은 상상이지. 모두가 현실을 직시해, 태양이 돌잖아?해도 와와하지 않고, 미리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거야.(···) 그래서 신은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신 거야.(···) 바로, 사랑이지.2)(강조는 인용자)
슈렉이 자신의 늪지를 지키기 위해 구출한 피오나 공주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던 여인이었다. 누구보다 어여쁜 피오나 공주는 사실 비밀을 감추고 있었다. 그것은 해가 지면 못생긴 괴물로 변하고 마는 끔찍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슈렉의 상처를 알게 된 피오나 공주는 자신의 상처를 고백할 용기를 갖게 된다. 비밀을 고수한다면 자신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남을 수 있지만 사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3)
상처받아 혼자만의 늪지에 틀어박혀 살아가는 것만을 상상하던 슈렉은 사랑에 의해서 전혀 다른 상상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당대적 상상력이 아닌 <손해>라는 기반 위에 서있던 사랑이었기에, 마법이 풀려 추한 모습이 되 버린 피오나 공주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니깐 우리가 앞서 던졌던 질문, 즉 내가 슈렉이거나 혹은 네가 슈렉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결국 ‘<손해>라는 이름의 사랑에 팔짱을 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가 되어야 한다. <손해>라는 이름의 사랑은 ‘그래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나 혹은 ‘이런 나라도’라는 심정을 오롯이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주위에 ‘그런 사랑’을 하는 분이 계신가요? 아니면 혹시 당신이 ‘그런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면서’ 사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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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예담, 2009. p.220-221쪽.
2) 박민규, 위의 책, p.227-228쪽.
3) 박민규, 위의 책, p.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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