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영화감상] 마더

두괴즐 2011. 6. 6. 22:57



마더 (2009)

Mother 
7.8
감독
봉준호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전미선
정보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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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엄마의 뒤틀린 사랑과 사랑을 뒤틀리게 하는 것들


 

 얼마 전 한 프로에서 자식을 정신병자로 만든 엄마의 이야기를 보았다. 부유한 집안에 시집와 외롭게 살던 부인은 자식의 교육에 목을 맸고, 우리말도 서툴던 아이는 외국어를 비롯한 각종 영재교육의 채찍질에 거품을 물고 병신이 되었다. 아이를 진찰한 정신과 의사는 아이의 엄마를 질책했지만, 그녀는 “천재임에 분명한 우리 아이”라거나 “자식에 대한 사랑” 따위의 이야기를 내어 놓았다. 엄마는 자신이 아이에게 준 것은 ‘사랑’이라고 했고,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폭력’이라고 대답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자식을 향한 엄마의 뒤틀린 사랑이야기이다.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그녀의 외아들인 도준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졸지에 살인용의자가 되어 유치장에 수감된 도준을 구하기 위해 마더 혜자는 진짜 범인을 잡기 위한 추적을 하게 된다.

 

 

  마더는 권력(변호사)에 손을 벌려보기도 하고 폭력(진태)과 손을 잡기도 한다. 진태의 발길질에 학생의 앞니가 박살이 나도 마더는 담담히 담배를 들 뿐이다. 앞니 빠진 학생은 그저 남의 자식이며 자신의 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도구에 불과했다. 마더가 진짜 범인으로 주목한 노인이 실은 결정적 증인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노인의 머리를 박살낸다. 자신이 믿었고 그럴 것이라고 여겼던 아들의 상(相)이 뒤틀렸을 때 마더(mother)는 머더(murder)가 된다.

 

 결정적 증인을 제거한 마더는 종팔이가 진범으로 잡혀 들어가고 자신의 아들은 출소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더는 종팔이에게 면회를 가서 엄마가 있는지를 물어본다. 종팔이는 고개를 젓고 마더는 흐느껴 운다. 엄마라는 울타리조차 없는 종팔이는 누구도 자신을 대변하거나 보호해주지 않는다. ‘약자’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며 더 약한 ‘약자’ 앞에서는 ‘강자’가 된다. 종팔이는 도준이 대신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간다.

 

 출소한 도준이는 마더의 효도관광에 마중을 간다. 그리고 마더가 결정적 증인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놓고 온 침을 돌려준다. 버스에 올라탄 마더는 아들이 돌려준 침에 대한 진실 때문에 춤판에 끼질 못한다. 하지만 곧 마더는 허벅지에 ‘망각의 침’을 스스로 놓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춤을 춘다.

 

 <마더>에서의 엄마는 자식과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한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반면 영재 교육에 열을 올렸던 강남엄마는 더 없이 부유했다. 하지만 그들은 똑같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아들의 상(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천재임이 분명한” 혹은 “우리 아들은 절대 살인할 수 없다.”라는 엄마의 믿음은 파멸을 가져왔다.

 

 누군들 그렇겠지만 우리엄마들의 자식사랑은 더 없이 놀랍고 또 끔찍하다.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情)을 들먹일 것이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가족애의 비극을 들먹일 것이다. 이를테면 자신들의 삶의 불만족에서 비롯된 자식에 대한 집착, 혹은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힘든 한국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자식의 예속 경향 따위 말이다. 어쨌거나 모든 면에서는 양가적 측면이 존재한다. <마더>에서 모성애가 극에 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식에게 극약을 먹였었던 과거에 대한 죄책감의 부채가 있었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아들이 어수룩하여 피해를 많이 보며 커왔던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 마더는 아들에게 누군가가 ‘바보’라고 놀리면 꼭 갚아주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자식의 우발적 살인 역시 ‘바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마더의 가르침이 결국 비극을 낳았지만 어수룩한 처지에서 살아가야만 했기에 그 가르침은 불가피한 생존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봉준호는 이 영화를 통해 모성애란 이름의 폭력 혹은 비극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모성애 해부는 금기의 대상이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듣기 딱 좋다. 하지만 온통 사랑의 아우라로 가득한 것 같은 모성애는 폭력을 내재하고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거나 자신과 동일시할 때, 이미 불행의 씨앗을 심고 있는 것이 된다. 자식의 행복을 보고 싶은 부모의 욕구처럼 자식 역시 부모의 행복을 보고 싶어 한다. 나에게만 메여있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부모의 모습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자식은 언제나 부모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부채에 부담을 갖고 살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 문제가 발생된 가족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만한 상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즉, 부모의 기질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적으로 놓여있는 상황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강남부모의 자식사랑은 그 동네의 학구 분위기에 앞도 된 상황에 놓여있었고, <마더> 역시 홀로 어렵게 어수룩한 아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제대로 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 속에서 살인을 당한 아정이 역시 사회적 시선은 그녀의 행동거지와 숱한 소문에 대한 것일 뿐, 그녀 앞에 놓여 진 상황에서의 어쩌지 못함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쌀을 담보로 그녀 몸에 사정(射精)을 했던 남자들은 감히 사랑(뒤틀린)을 입에 올릴 수 있었을까?

 

 <마더>는 봉준호 특유의 유머가 줄기는 했지만 치밀해졌고 예술적 확장으로써의 의의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스릴러라는 형식을 통해 던져 놓은 많은 떡밥은 다의적 해석을 가능하게 해서 물어줄만한 재미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영화팬들이 이 영화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재미있게 풀어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추리적 쾌감과 미학적 성취의 측면의 조명 못지않게 이 영화에서 말하는 ‘아픔’에 대해서도 직시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게 ‘불쾌한 영화’라는 평을 내뱉고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싶은 바로 그 때가 실은 관객을 불쾌하게 했던 ‘아픔’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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