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프레지던트 (2009)
Good Morning President
6.8
<굿모닝 프레지던트>
-행복한 대통령을 보고 싶다.
율동과 과자에 매혹되던 교회 유초등부 시절, 그 때 목사님이란 존재는 내게 천사처럼 느껴졌다. 무조건적 사랑의 예수님 보다는 야곱을 쳤던 능력과 권위의 천사 같은. 하지만 나이를 먹고 커가는 동안 목사님들을 직접적으로 만나보고는 어릴 적 품었던 이미지가 환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절대적인 존재도 아니었고 초월적인 존재도 아니었으며 때로는 누구보다 세속적이기도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장진 감독의 신작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인간 대통령을 다룬다. 수많은 덧칠의 환상의 옷을 입고 있는 대통령을 벗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 대통령을 발견한다. 첫 번째 대통령인 김정호 대통령은 엄청난 금액의 복권에 당첨되지만 국민과의 약속(만약 자신이 걸리면 기증하기로 했던) 때문에 괴로워한다. 두 번째 대통령인 차지욱 대통령은 첫사랑의 등장으로 설레여하고 세 번째 대통령인 한경자 대통령은 직위자로서의 역할과 남편과의 관계 사이에서 갈등한다. 권력의 정점에 서있는 거인으로서의 대통령은 거기서 찾을 수 없다. 기증해야 하는 당첨금 때문에 악몽을 꾸고 첫사랑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남편과 화해의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장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대통령’을 봐달라고 요청하는 것 같다. 제목을 봐도 ‘좋은 아침입니다. 대통령’이라고 대통령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있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먼저 ‘굿모닝 프레지던트’라고 한다고 해서 ‘굿 프레지던트’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영화는 동화같이 느껴진다. 환상으로 덧칠 된 대통령을 벗기기 위해 동화를 만들어 버렸다. 임기 중 국민의 한 사람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주는 대통령, 자주권과 북한과의 관계를 위해 강대국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는 대통령, 정당이 다른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훈훈하고 정겨운 풍경들. 최고의 브레인인 참모진 보다 주방장의 조언을 새겨듣는 대통령.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동화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가장 서민적이었고 진솔하려고 노력했던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인간’이고자 했던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으려 했던 우리가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린 것이다. 대통령도 한 명의 인간이고 그 역시 우리와 같이 사사로운 것들에, 행복에 연연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럴 권리가 있다. 장진이 요청하는 ‘인간으로서 대통령’ 보기 혹은 대우하기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라면 곤란하다. 어쨌거나 대통령은 그 직위에 걸맞은 책임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고 최고의 주방장의 음식을 먹고 여러 편의적 특혜를 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대통령’이 ‘사사로운 행복’을 추구하라고 허락된 것이 아니다. 한 명의 국민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주기도 하고, 평화통일과 주권 보장을 위해 강대국의 불합리한 요구를 거절하기도 하는, 그러한 자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을 ‘인간’으로 보고 싶고, 거짓말 하지 않는 ‘대통령의 진심’을 보고 싶다.
자신을 인간으로 봐주기를 원하는 목사는 진심을 가진 목사일 것이다. 환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발견 앞에 당당할 수 있기 위해서는 솔직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함은 가식이라는 갑옷을 버릴 때 가능하다. 환상을 버리고 버틸 수 있을 만큼 목사님들은 당당함을 가지고 있을까. 끝없이 사단의 무리를 만들어 내고 그 뒤에서 안도하며 맘몬신의 머리에 향유를 붇는 그에게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덧칠된 환상의 옷을 벗겼을 때 남은 것은 정말 사랑일까. 대통령의 환상의 옷을 벗겼을 때 남는 것은 과연 인간일까. 그것을 보게 되는 국민의 가슴에 남는 것은 신뢰일까, 상처일까. 위정자들의 정치와 국민들의 삶 사이에는 극심한 불신뢰가 놓여있다. 위정자들은 ‘오해’를 남발하고 국민들은 ‘거짓말’이라고 되뇐다.
화해를 위해서는 서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알기 위해서는 솔직함과 신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 가능하다. 누구든지 인간으로서 잘못된 욕심을 품을 수 있고 또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두가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이해받을 수 있다. 문제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속이기 위한 것이고 그 속에 솔직함과 신뢰란 기대의 씨앗은 상처라는 악의 열매를 맺게 된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멍멍’ 짖거나 ‘찍찍’ 대는데 어떻게 ‘인간’으로 대해 줄 수 있겠는가. 피땀 흘려 소출한 곡식을 갉아먹는 쥐새끼한테 ‘굿모닝’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늘과 파를 먹는 고통을 참고 인간이 된 곰이 우리의 조상이다. 그 곰 덕분에 우리는 인간의 후예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쥐새끼라 불리거나 돼지새끼 혹은 개새끼라고 불리는 짐승들이 있다. 잘 생각해보자. 그들이 날 때부터 짐승이었는지. 인간으로 태어나 짐승이 되 버린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이 되고자 마늘과 파를 먹던 곰의 눈물일 것이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마늘과 파를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의 진심을 보고 싶다. 국민들의 사랑 속에 행복에 겨워하는 대통령이 너무나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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