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2001)
GO
8.5
- 감독
- 유키사다 이사오
- 출연
- 쿠보즈카 요스케, 시바사키 코우, 오오타케 시노부, 야마자키 츠토무, 야마모토 타로
- 정보
- 드라마, 로맨스/멜로 | 일본, 한국 | 122 분 | 2001-11-23
글쓴이 평점
<고(go)>
- 이 영화가 ‘연애영화’인 이유.
영화 <고>는 재일한국인 스기하라(본명 이정호)의 연애이야기이다. 연애란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말하는데 이는 서로를 알 때, 그리고 신뢰할 때 가능한 일이다. ‘수퍼 그레이트 치킨 레이스’를 달성하여 ‘또라이’로 전설이 된 그가 “차별이 무서워졌다.”고 고백하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 뻗은 주먹으로 만든 원에 대한 철학이 어떻게 변하는가? 사회가 강요할 때 개인은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기하라는 초급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 열혈 마르크스주의자로 조총련 활동을 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조총련계 초,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국 복싱 7위에 올랐던 복서였고 재일한국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삶의 태도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그것은 뻗은 주먹으로 만든 원에 대한 철학이었다. 원 밖은 적들이 우글대는 전쟁터이고 원 안으로 들어오려는 수많은 적의를 물리쳐 내는 것으로서 삶은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기하라의 아버지는 느닷없이 하와이를 가자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느닷없는 결정이 아니다. 여행을 위해 한국국적을 취득하려고 했을 때 자신에 대해 아무런 검열을 하지 않는 행정직원의 태도에 분개한다. 하지만 그 분개는 결코 행정직원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흘러간 세월 위에 놓여진 자신의 신념에 대한 것이며, 비바람으로 닳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비를 맞으며 스페인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는 이념의 굴레를 던져버리는 제의를 벌이는 것이고, 이북에서 죽은 동생에게 게를 보내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며 흘리는 눈물은 자신의 세대를 삼킨 이념에 대한 인간적 회포다. 하지만 스기하라는 이것들이 모두 지긋지긋하다.
아버지가 하와이를 가기 위해 한국국적을 취득할 때, 이념이 지긋지긋한 스기하라는 일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재일한국인이라는 딱지는 스스로 규정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불려진 것이다. 스기하라가 이념 혹은 자신에 대한 규정을 지긋지긋해 하거나 말거나 원 밖의 세계는 그에게 적의의 주먹질을 뻗는다. 반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돌려차기를 하거나 특기할 만한 복싱실력으로 적의를 원 밖으로 내치는 것 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스기하라의 아버지가 ‘더 깨끗한 바다에 갈 걸’ 하며 운운했지만 이건 일본사회 안에서 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태도에 분노하지만, 우리 역시 이주자들을 똑같이 타자화하지 않았던가? 스기하라가 ‘재일’이라는 명칭의 폭력성을 고발할 때 우리는 ‘재한’의 폭력성에 식은땀을 흘려야 한다. ‘더 깨끗한 바다’는 있을지 몰라도 그냥 ‘깨끗한 바다’는 없다. 바다는 우리가 깨끗하게 만들어 가야한다. 나의 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조 할아버지와 너의 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증조 할머니는 결국 만나게 되며, 우리 앞바다와 너희 앞바다는 결국 같은 바다다. 스기하라의 친구 정일이는 “우리에게는 원래 국가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국가라는 것 자체가 원래는 없던 것(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스기하라가 그렇기는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된 것처럼, 사회는 그런 곳이다. 조선학교의 선생님이 되어 변화의 비전을 갖고 있던 정일이가 조용히 그리고 무감각하게 죽게 되는 것 같이. 하지만 스기하라는 복수를 하지 않는다. 정일이가 원했던 것이 폭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의 요청을 거부하고 다른 길을 간다. 깜박 잊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연애영화’다.
스기하라는 일본인 여자애 사쿠라이와 사랑에 빠진다. 조금씩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던 그들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된다. 그녀와 첫날밤을 보내며 몸을 섞는 그 때 스기하라는 자신이 재일한국인임을 고백한다. 그 말을 들은 사쿠라이는 충격을 받고 몸을 거부하게 된다. 그녀는 “중국인과 한국인은 피가 더럽다.”고 항상 아빠가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머리는 이해하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다며 ‘미안’을 얘기한다. 전설의 ‘또라이’ 스기하라가 “차별이 무서워졌다”고 고백하는 순간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주며, 또 모든 것을 앗아간다.
자신의 아들에게 조금의 주저도 없이 주먹을 날리는 사람이 스기하라의 아버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자신의 원이 허물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스기하라의 엄마, 즉 자신의 부인에게서이다. 그곳에는 사랑이 있다. 사쿠라이는 스기하라에게 다시 연락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추억이 있는 학교 교정으로 간다. 스기하라는 자신이 ‘재일’로 규정되는 폭력성에 대해 분개를 하며 원을 그린다. 자신은 “나는 나”라고 해도, 이 사회에서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된다. 그런 그에게 사쿠라이는 다가가고 손을 내민다. 스기하라가 뻗은 주먹의 원은 사랑에 의해 붕괴된다. 그는 주먹을 풀어 그녀를 끌어안는다.
한 개인이 자신을 스스로 인식한다 해도, 사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내어놓는다. 정일이가 “국가”를 거부하고, 스기하라가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들먹이며 “증증증…”을 덧붙여도 사회로 부터의 규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규정은 오직 사랑에 의해 붕괴된다. 사랑은 사회가 그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규정할 때, 그 규정에도 불구하고 끌어안는다. 사회의 진보는 사랑에 달렸다.
영화 <고>는 재일한국인을 둘러싼 이념과 사회와 학교와 가족과 편견과 또라이와 폭력과 복싱과 이해관계 따위가 뒤범벅이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연애영화다. 사랑이 경계와 세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스기하라가 자신의 이름이 너무 이국적이어서 밝힐 수 없었던 그 두려움과 사쿠라이가 촌스러워서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이름 사이에는 현격한 무게의 차이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별거 아니었음이 되는 건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이름’이 아닌 ‘향기’의 것이다. 이름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향기’는 사람에게서 난다. 기억나는가? 이 영화의 시작이 어디서 부터였는지.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中 -
(영화 <고>의 시작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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