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영화감상] 호우시절

두괴즐 2011. 6. 6. 22:53


호우시절 (2009)

7.7
감독
허진호
출연
정우성, 고원원, 김상호, 마소화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00 분 | 2009-10-08
글쓴이 평점  


<호우시절>

-허진호의 (사랑의) 조각 맞추기


 언젠가 나의 어깨에 꽃을 심던 소녀가 있었다. 그 땐 나도 시라는 걸 쓰고 있었고 소녀는 그 시에 향기를 머금게 해주었다. 우리가 만나던 곳엔 비가 오기도 했고 눈이 오기도 했고 때론 너무 덥기도 했다. 하지만 날씨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만 하늘의 섭리는 ‘때’가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때’는 우리조차도 집어 삼키고 말았다. 내게 소녀는 이제 조각난 기억의 파편으로 남아있다.


 <호우시절>의 두 주인공은 유학시절의 조각난 기억을 맞춰본다. 하지만 그 조각은 딱 맞춰지지 않는다. 그 엇갈림이 그 때를 간절하게 만들고 마음의 기억까지 불러내게 한다. 박동하(정우성)는 건설중장비 회사 팀장으로 청두에 출장을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미국 유학시절 친구였던 메이(고원원)를 만난다. 둘은 공유되는 기억과 어긋나는 기억 사이에서 그 때의 감정을 오늘에 가져온다.


 하지만 메이는 이미 결혼한 후였고 동하를 허락할 수 없었다. 그렇다. 동하는 낚였던 것이다. 이 순간이 영화의 최대 갈등지점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설득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메이가 동하를 만나고 그에게 하는 멘트는 상당히 유혹적이다. 내 입술이 키스를 기억하고 있는지 키스를 해보라고 하질 않나, 예전에 우리가 키스를 하고 자전거를 탔던 것을 증명한다면 같이 자자고 하질 않나(게다가 그것들은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던가!). 청춘 남녀의 농담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유혹해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저는 결혼한 몸이라 아니되요, 훌쩍’ 해버리면 완전 낚시질이 아닌가? 물론 사람의 감정(게다가 사랑이 아니던가)이란 게 이성적으로 조절이 용이한 것은 아니기에(심지어 남자는 정우성이었다. 나도 넘어갈지도 모른다) 이해를 할 수는 있다. 다만 메이라는 캐릭터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어쨌거나 낚인 동하는 분노했고 절망했고 소주를 마시게 된다. 그런데 메이의 남편이 1년 전 지진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꽃이 핀다. 사랑은 타이밍이고 그것을 지배하는 환경은 기적을 지휘한다. 물론 남편이 죽은 지 1년 밖에 안됐고 그런 남편이 불쌍할 수도 있겠지만 죽었는데 별 수 있나. 죽으면 놓아줘야 한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붙잡아서도 안 되고,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잡아서도 안 된다. 소중한 추억이 있고 죽음의 안타까움과 억울함, 슬픔과 괴로움을 삼키곤 귀신이 되어 냉장고 안에서 연신 울게 된다 할지라도, 그래도 산 사람은 다시 행복해져야 한다.


 사랑은 진짜를 바라보는 것이며 알아가는 것이다. 그 속의 상처를 알게 되는 것이며, 그 상처 때문에 자신도 찢겨지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눈물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메이에게 동하가 그러했고, 동하에게 메이가 또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동하는 다시 시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시는 연봉이나 승진, 진급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바로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니깐.


 <호우시절>은 허진호 감독답지 않은 훈훈한 해피엔딩이었지만, 내게 남은 기억의 파편은 다시 맞춰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환경의 지휘는 사랑의 타이밍을 만들어 기적을 만들지만, 실은 사랑이 타이밍을 제고 환경을 지휘하는 법이다. 큐피트의 화살은 난사(亂射)에 가깝지 않던가. 가을을 타고 K-PAX에 가고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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