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규 읽기: 2차 발제
한기욱,「문학의 새로움과 소설의 정치성 - 황정은 김사과 박민규의 사랑이야기」, 창작과비평 2010년 가을호(통권 149호), 2010.9, page(s): 2-521.
1. 요긴한 물음들 + 어떤 시대, 어떤 존재인가
한기욱은 “소설이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는가를 문학의 새로움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391)을 이 글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는 우선 최근 논의가 된 문학에 대한 정치적 자장을 살피고, 몇 가지 개념들을 가지고 온다.
우선 랑시에르의 개념이다. 랑시에르는 ‘정치’와 ‘치안’을 구분했다. 랑시에르에게 제도권 정치와 기타의 현실정치는 ‘치안’이다. 그리고 ‘정치’는 기성의 ‘김각적인 것의 배분’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살펴보는 것이 사실주의와 리얼리즘이다. 사실주의는 ‘현실의 사실적 재현’을 의미하는데 이는 ‘치안’의 경계를 넘어서기 힘들다. 왜냐하면 사실주의는 단지 ‘현실’로 주어지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말할 수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리얼리즘은 환경과 인물의 ‘전형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실’의 핵심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치안’의 경계를 넘어 ‘정치’의 영역에 개입할 가능성이 열린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즉 ‘감지 가능한 모든 것’ 가운데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판단하고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에 관심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393)
마지막으로 참조하는 것이 들뢰즈와 아감벤의 테제이다. “‘딴사람-되기’를 시도하면서 자기 동일성으로부터 탈주하려는 들뢰즈의 단독자와는 대조적으로 아감벤의 단독자는 ‘딴사람 되지 않기’의 잠재성을 수행하면서 온갖 근대적 정체성에 메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있고자 한다.”(401) 한기욱은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작품에 접근하고자 한다.
2. 정치적인 사랑이야기들
① 황정은,『百의 그림자』(민음사 2010)
한기욱이 우선적으로 호출하는 작품은 황정은의『百의 그림자』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가혹한 폭력과 부당한 불행을 겪고도 ‘원한감정’(resentment)에 매이지 않는 이 존재들이 어디서 출현했는가”(402)를 묻는다. 그리고 “속물주의와는 판이한 이들의 삶의 방식이 ‘윤리적’임을 인식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윤리적인 삶’이 하나의 이상주의적 소망성취에 불과한지 아니면 도래하는 공동체의 실제 싹인지를 묻는 일”(403)이라고 지적한다.
한기욱은 “황정은의 사실성은 사실주의를 초과하여 소설언어 구조의 깊숙한 곳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는 황정은 소설 속 “그림자 분리현상은 현실의 삶에 좌절하고 차라리 죽음을 바라는 상태를 나타내는 하나의 비유적 장치이지 “‘비현실적인 환각’을 뜻하는 환상”이 아니다”(404)라고 주장한다. 또한 상당수의 ‘포스트모던’한 소설가들이 언어와 현실의 자명성을 깨는 것에만 탐닉하는데 반해, 황정은은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미덕을 획득한다고 호평한다.
한기욱은 황정은의 본 작품이 “그 언어를 통해 도래하는 공동체의 새로운 존재의 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 하다”고 평가한다. 이 작품이 “새로운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단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느끼게 해주며, 그런만큼 ‘정치적’”(406)이라는 것이다. 다만,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관계가 너무 ‘윤리적’”이어서, “이질적인 것들과의 대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406)점을 흠으로 본다.
② 김사과,『풀이 눕는다』
한기욱은 김사과의 본 작품을 “황정은의 소설 못지않게 윤리적인 충동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속물주의가 팽배한 현실의 기성체제와 단절을 선언하고 그런 비타협적인 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이다.”(406) 하지만 그러면서 발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자각이다. 한기옥은 “연인들의 공동체가 무너지기까지의 필연적인 과정, 상대와 자기를 가리지 않고 파괴하고자 하는 강렬한 ‘죽음 충동’은 김사과 특유의 무정부주의적 매력과 심리적 호소력을 지니지만 예술적으로 볼 때는 감당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속물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려 하지만 이 막강한 물질과 마음의 체제를 ‘실제적으로’ 극복할 가능성을 어디서도 제시하기 어”(408)렵기 때문이다.
③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한기욱은 “박민규의 사랑이야기가 도전하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에 동반되는 낭만적 분위기를 버리지 않은 채 환상적 통속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아슬아슬 한 길”(409)로 본다.
이 소설은 외모지상주의 세계의 중심인 백화점 지하주차장-“거대한 백화점의 맹장(盲腸)”(102면)-을 소설의 ‘장소’로 설정함으로써, 그리고 백화점 지하주차장의 관리와 안내라는 비정규직 남녀들의 일상을 생생한 사실주의로 그려냄으로써 그후의 모든 미학적 정치적 작업의 바탕을 마련한다. 이런 사실적인 바탕 위에서 잘생긴 청년과 못생긴 여자가 서로를 발견하고 마침내 애절한 사랑을 꽃피우는 과정이 박민규 특유의 변신술의 화법과 곰살맞은 언어로 절묘하게 포착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온갖 이데올로기의 그물망이 외모지상주의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뿐더라 그 한가운데를 통과해서 두 남녀가 존재론적으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말투가 달라지고 발화가 가능해지는 과정이 압권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딴사람-되기’의 과정과 자신의 콤플렉스/편견을 극복하고 자긍심/겸손함을 회복하는 ‘딴사람 되지 않기’의 과정이 동시진행형으로 일어나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 있다. (409)
한기욱은 자신의 본 비평이 “흔히 가장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여겨지기 쉬운 남녀관계와 사랑이야기야말로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어느정도 보여주지 않았을까”라고 자평하고 글을 마친다.
※ 나의 생각
한기욱의 논의는 내가 구상하고 있는 “자본에 반(反)하는 사랑의 구성”이라는 테제에 도움이 될 만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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