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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서유정,「여성의 미(美)와 추(醜)에 대한 문학적 재고(再考) - 슈티프터와 박민규를 중심으로」

두괴즐 2011. 7. 25. 13:24


* 박민규 읽기: 2차 발제


서유정,「여성의 미(美)와 추(醜)에 대한 문학적 재고(再考) - 슈티프터와 박민규를 중심으로」, 세계문학비교연구 제30집, 2010.3, page(s): 5-409.



1. 여성과 미/추 담론


 서유정은 슈니프터와 박민규의 작품 분석1)에 앞서 미와 추에 대한 담론을 역사적으로 조망한다. “예술사에서 미의 결핍에 대한 개념이자 미를 더욱 돋보이기 위한 것으로 기능했던 추는 18세기 근대를 거쳐 20세기에 이르면서, 적어도 예술에서는 하나의 자율적인 미적 범주로 발전했다.”(131) “그러나 이와 같은 예술사적 추개념의 발달은 실생활과 문화에서는 똑같은 과정을 겪지 않는다.”(131) “특히 여성의 몸은, 여성미의 기준이 시대와 문화와 유행에 따라 늘 변모하더라도 이러한 미/추의 대립적 구조가 가장 정체되어 있는 영역”이다.(132)



2.『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추의 사회학


 서유정은 “이 소설의 화두는 여성의 미/추 담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자본주의의 폐해”(142)라고 말한다.


“미와 추의 속성은 종종 미학적 기준이 아닌 정치적, 사회적 기준에서 기인한다.”(에코, 12)라는 에코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나’와 ‘그녀’의 만남이 상품으로 가득한 백화점에서 이루어진 것은 상품화 된 인간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암시한다 할 수 있겠다.(···) 한 여자가 추녀라는 이유로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박민규, 268)과 같은 존재가 된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타인과 사회의 시선 때문이다. 그 시선은 자본주의 원리로 물들어 있다. 142-143


 서유정은 “인간이 추를 혐오하고 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미에 대한 욕망뿐 아니라 미가 곧 권력이 되는 사회구조에도 그 책임이 있다”(143)는 점을 박민규가 “여성을 둘러싼 미/추 담론의 사회적 의미를 부각시키”(143)면서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외부의 차가운 시선으로 인한 상처는 외부의 따뜻한 시선에 의해 치유”(145)된다는 점을 본 소설에서 발견한다.



※ 나의 생각


 나는 이 소설을 무척 좋아한다. 왜냐하면 돈의 논리가 아닌 인간의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美)’와 ‘추(醜)’의 경계를 만든 것이 자본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극대화 하여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자본이다. 사랑은 이러한 자본의 윤리를 뭉개버린다. 상품이 아닌, 인간의 존재를 떠오르게 한다.

 박민규는 “부와 아름다움은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박민규, 416)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데올로기는 원래 숭고한 대상이었던 것이 아니다. 숭고하지 않았던 것이 숭고해진 것이다. 부와 아름다움(육체적)은 인간의 본래적 욕망과 닿아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 존재의 근원인가? 부와 아름다움은 관계에 의해서 의미화 된다. 따라서 그 의미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타인의 빈함 위에 세워진 나의 부함이 나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나? 그 사람의 내면적 위태로움 위에 핀 육체적 아름다움이 순전한 사랑의 동력이 될 수 있나?

 그리고 무엇보다, 부와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한 우리가 이를 부러워하고, 또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행복’할 수가 있나?

 나는 박민규의 본 작품에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에 포섭된 아름다움을 해체하는 지점을 본 듯하다. 그것은 모든 (경제적)<손해>를 감내하여, (마음의)<천문학적 이익>을 얻는 ‘사랑’을 통해서였다. 자본과 자신의 이해에 앞서 타인을 통해 자신을 마음을 구축하는 사랑이 우리의 세상을 바꿀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1) 나는 박민규 작품 분석만 정리하겠다.


서유정,「여성의 미와 추에 대한 문학적 재.hwp


서유정,「여성의 미와 추에 대한 문학적 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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