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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양진오,「당대의 발견과 현존하는 리얼- 박민규, 오수연 소설을 읽으며」

두괴즐 2011. 7. 8. 14:40


* 박민규 읽기


양진오,「당대의 발견과 현존하는 리얼- 박민규, 오수연 소설을 읽으며」, 실천문학 2005년 겨울호(통권 80호), pp.111~123.



0. 요약


 양진오는 “리얼리즘의 존속은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성격과 근본적으로 관련되는 문제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결여 등 민중과 지식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강제하는 갈등이 격돌하는 한국사회에서 리얼리즘의 소멸은 가능한 게 아니다.”(112)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 시대의 진보적 가치들을 회의하고 불신하는 젊은 비평가들의 조로현상”(112)에 대해 개탄한다. 그는 “비평가를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작품의 대목 대목에서 사회의 당대적 실상을 읽어내고 그 당대적 실상에 영향 받는 주인공들의 행위와 내면을 읽어내는 전체적 시야의 확보가 필요하다”(112)고 역설한다. 그리고 “좋은 소설일수록 우리들 삶의 착잡한 리얼리티나 전망의 현현을 당대성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복합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높은 수준의 리얼리즘 독법은 작가, 독자 모두에게 필요하리라”(113)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양진오는 리얼리즘 독법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삼는 작가가 박민규와 오수연이다. 여기서는 박민규만 살펴보겠다.

 양진오는 박민규의『카스테라』를 읽으면서 “인간들을 한낱 소모품으로 배치하고 처리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작동을 읽을 수 있었고, 이 경제의 작동이 당대성의 한 표정이라고 판단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제라는 이름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소모되어버리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슬픈 자화상을 볼 수 있었으며, 이런 독서체험은 명징한 아픔을 주는 것이었다”(114)고 고백한다. 양진오가 여기서 보는 것이 바로 ‘치욕’이다. “이들의 눈물은 치욕의 눈물이며 동시에 그 치욕을 감수하는 데서 오는 체념의 눈물이다.”(116)

 하지만 양진오는 박민규가 “치욕이 고조되는 순간” “비약적으로 낯설어진다”(116)고 말한다.


 동물을 등장시켜 환상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결국 균열하던 세상과 그 세상 속에서 균열되던 ‘나’의 갈등, 즉 당대성의 갈등을 소실시키고 만다.(···) 이 결말은 그의 유쾌한 유머와 은근한 풍자, 절대적 고독 등등을 무화시키고 그의 소설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제기한 긴장과 갈등을 소실시킨다. 문제가 되는 건 이런 방식의 반복이며 이 반복 속에 내포된 세상에 대한 체념이다.(···)

 진정 박민규의 소설이 좀더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소설에 부여한 갈등, 긴장, 고독, 분노를 예기치 않게 출현한 오리배 안에 넣고 어디론가 보내버리는 초월의 구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117)


 양진오는 박민규가 당대의 아픔을 잘 포착하고 드러내고 있지만, “비약적인 소실의 결말을 반복하는 한 자기균열에 봉착할 수 없다”(118)고 경고한다.



※ 나의 생각


 나도 양진오의 견해처럼 리얼리즘 독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대를 읽어 내는 방식의 차이가 다양한 형식과 문체로 다양화 되었지만 결국 그 기반이 되는 것은 현실이 아니던가. 따라서 환상의 기원이 되는 리얼한 현실을 포착하는 작업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초월’의 결말이라고 할 때, 그러한 해소를 비판하는 것과 함께 왜 ‘초월’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있었으면 좋겠다.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놓인 현실을 타계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도달하는 지점이 ‘비약’이라면 결국 구조적 문제가 폭로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구조적 변화와 해소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면 너무 비약인가? (웃음)



양진오,「당대의 발견과 현존하는 리얼- 박.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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