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민규 읽기
진정석,「사회적 상상력과 상상력의 사회학- 2000년대 젊은 소설을 보는 한 시각」,『창작과비평』, 2006.
1. 사회적 상상력의 귀환?
진정석은 “2000년대의 젊은 소설가들에게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적 상상력의 편린이 명시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208)라고 인정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적 상상력의 퇴조”로 본다. 하지만 “상상은 현실의 결핍을 보상하는 문화적 장치이며, 사회적 상상력의 결여 역시 사회적으로 결정된 문화적 징후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특정 세대의 문학에 사회적 상상력의 결여가 집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 상상의 존재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현실적 조건에 대한 성찰로 나아갈 수 있”(209)다는 것이 진정석의 견해이다.
2. 신세기 에반게리온
진정석은 박민규의『핑퐁』을 분석하면서 그 의의를 찾는다.
작가는 학원폭력의 실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신, 그것을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폭력성 또는 세계 자체의 근본적인 상태로 일반화하는 데 주력한다. 치수 패거리의 직접적인 폭행만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의 간접적인 묵인과 조장도 그에 못지않은 폭력이다. 박민규는 이것을 “다수결”의 원리로 명료하게 정의하고, 인간은 누구나 “다수인척”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결론을 내린다.(213)
진정석은 본 소설을 “원초적 폭력에 맞서 자아의 각성과 성숙을 이룩”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불운한 왕따인 ‘나’는 끊임없이 “나는 왜 사는가”라고 자문하는데, 이 질문은 언제나 “인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단숨에 비약하는 경향이 있다”(213)고 지적한다. 또한 이 작품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정조는 여전히 세계의 부정성에 대한 도저한 환멸과 분노라고” 규정하면서 “이런 근본주의적 태도는 존중할 만한 사회관일 수 있지만 그다지 효과적인 소설전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3. 마니아와 회사원 사이
진정석은 김중혁의 주인공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로 형상화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수집가의 애착과 경배를 통해 사물은 자본주의적 기능성의 악순환에서 해방되며, 수집가는 사물과의 교감을 통해 ‘자동화’된 감각과 상상력을 해방”시킨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 ‘해방’은 해방된 사물과 인간이 속해 있는 현실세계의 해방이 아니며, 어떤 측면에서는 현실적 해방에 대한 전망을 유보한 댓가이기도 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수집가나 마니아, 발명가 등 자본주의의 규격화된 씨스템에서 자발적인 소외를 선택한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에게 직접적인 현실 비판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처사일 것”이라며 끝내 옹호해 준다. 진정석이 볼 때 김중혁의 주인공들은 “시대의 과제에 투신하는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라 감각의 향유에 전념하는 자율적 예술가이며, 자본주의적 기능성의 논리에 대항하는 문화적 전선에서 그 나름의 싸움을 치열하고 있기 때문이다.”(216)
4. 나는 어떤 인간인가,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진정석은 마지막으로 김애란을 살펴본다. 김애란은 “‘나’의 기원이나 세계의 의미, 타자와의 소통처럼 고전적이라 부를 만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성이 있다. 김애란은 ‘가족로망스’와 ‘도시의 생태학’이라는 두 계열의 작품을 써왔다. 특히 전자의 경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대체하고, 아버지와의 상상적 관계를 통해 ‘나’라는 자립적 주체를 만들어”갔다. 물론 IMF세대답게 아버지를 무능력자로 그려낸다. 하지만 “달갑지 않은 ‘아비’를 의식에서 배제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진정석은 김애란의 서사적 자아가 “원초적 기원을 충만한 상태로 가정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라, 상상된 기원의 가공적 성격을 냉철히 의식하는 사실주의에 가깝다”(218)고 말한다.
진정석은 김애란의 최근작인「침이 고인다」는 두 계열의 작품 세계가 통합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낯선 타인으로 만난 선후배가 ‘부탁’에서 ‘농담’을 거쳐 대화와 공감에까지 이르는 친밀성의 정치학을 세심하게 그려낸다”(220)고 평가한다.
5. 상상력의 사회학을 위하여
진정석은 “사회문제에 대한 구조적 인식이나 적극적인 개선의지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상상력을 말한다면, 2000년대 젊은 소설들에게 그것은 아주 드물게만 발견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모든 상상은 현실을 우회적으로 호명하고 간접적으로 환기한다는 의미에서 상상력을 말한다면, 2000년대 젊은 소설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목록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지구를 언인스톨한다는 박민규의 황당한 공상은 가시적·비가시적 폭력이 일상화된 세계에 대한 도저한 절망과 분노를 함축하고 있으며, 소수자를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다수자의 논리에 대한 급진적 항의의 한 부분이다. 쓸모없는 잡동사니를 부지런히 수집하고 유희적 퍼포먼스를 일삼는 김중혁의 주인공들은 모든 사물과 인간을 교환가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는 자본주의의 거대 씨스템에 치열하게 맞서는 중이다. 한편, 상처를 윤색하고 변형하는 김애란의 거짓말과 판타지는 주체의 결핍을 보상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이며, 낯선 타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유대와 공감의 매개이기도 하다.(221)
진정석은 “그들의 작품에 현실이 있다면, 그것은 환상, 망상, 거짓말을 통해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겨우 드러나는 어떤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경험한 절실한 현실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가공하고 재현한 현실”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제는 “사회적 상상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사회학을 본격적으로 논해야”(222)한다고 말하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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