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철학

[밑줄] 고미숙,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두괴즐 2011. 6. 25. 10:37

[밑줄긋기] 고미숙,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p.60-61


린 마굴리스 또한 이렇게 말한다. “성적 열정은 플라톤이 그렸듯이 우리의 잃어버린 원초적 반쪽을 찾고자 하는 끝없는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몸을 두 배로 불리고자 했던 절박성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반쪽이를 향한 무한도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짝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시절인연이 아주 중요하다. 시절인연이란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두 사람이 어떤 강한 촉발에 의해 공통의 리듬을 구성하게 된 특정한 시간대를 뜻한다.(···)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다. 어떤 대상을 만나느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면적으로 솟구칠 때 사랑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 욕망이 솟아오르려면 시절을 타야 한다.(···) 사랑의 소멸 또한 마찬가지다. 시절인연이 바뀌면 아무리 불같던 사랑이라도 순식간에 결별을 맞이한다.(···) 사랑에도 엄연히 춘하추동, 사계절이 있는 법이다.


p.126


동안이 아니어도 언제나 젊음을 구가하는 길이 있긴 하다. 어설프게 청년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싱싱하게 만들면 된다. “젊음이란 20대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연령에 걸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말이다.


p.141


욕망이란 관계의 산물이다. 닫힌 공간에선 사랑조차 닫혀 버린다. 거꾸로 사랑이 닫히면 삶을 바꾸는 혁명적 파토스 또한 침묵·봉쇄된다. 에로스란 간단히 말하면, 몸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리듬과 강도를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동일한 것들끼리 마주쳐서는 절대 그런 식의 격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나와 다른 것, 이질적인 것과 마주쳐야 한다.


p.245


사랑은 끝없이 변화하는 흐름이요 운동이라는 것, 그래서 무조건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을 간과하고 어느 한 지점에 머물러 있고자 할 땐 삶도, 사랑도 가차없이 소멸되고 만다


p.263


에로스와 혁명, 사실 이보다 더 매끄러운 결합은 없다둘다 지배적인 코드를 박차고 나가 흐르는 흐름이자 유동성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삶을 창조할 수 있다면, 그 창조활동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바로 혁명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혁명에 대한 열망이야말로 국가와 가족, 학벌, 계층의 벽에 갇혀 질식하기 직전인 에로스적 본능을 살아 숨쉬게 하는 최고의 전략이 아닐까.


p.266


이탁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p. 270-271


 사랑에 관한 지도를 그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똑같았다. 너무 외로워요. 그래서 사랑을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이 너무 두려워요. 거절당할까 봐, 그래서 더 외롭게 될까 봐서요. 외로움은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외로움을 낳고, 대부분 다 이 지독한 사실 안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원점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지도를 그렸다 한들 대체 모슨 소용인가. 길을 나서지 않는 이들에게 지도란 한낱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렇다. 진실한 사랑을 위해 필요한 건 단 ‘한 걸음’이다. 사랑에 관한 오만과 편견, 자의식을 둘러싼 망상의 그물망을 벗어나 한 걸음, 단 한 걸음만 내디딜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백척간두진일보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두려움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