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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 탈근대가 쫓아낸 ‘진리’를 다시 불러오다 (한겨레)

두괴즐 2011. 6. 7. 11:36

*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6072.html

 

탈근대가 쫓아낸 ‘진리’를 다시 불러오다
한겨레

 

21세기 진보 지식인 지도 / ②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

 

알랭 바디우는 1937년 모로코 라바에서 태어나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1968년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식인이었고, 1970년대에는 마오주의 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며 옛 스승이었던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70년대 말 마오주의 운동의 쇠퇴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집합이론과 여러 탈근대 철학의 조류를 비판적으로 수용해 1988년 <존재와 사건>을 집필했다. 이는 새로운 진리 이론을 수립함으로써 철학을 복권시키려는 시도였다. 이후 <철학을 위한 선언> <윤리학> <조건들> <메타정치 소론> 등에 이어 2005년에는 <존재와 사건>의 2권인 <세계의 논리>를 출간한다. 이 밖에도 바디우는 현실의 정치적 이슈에 개입하는 <정황>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고, 옛 동지들과 결성한 ‘정치 조직’(Organisation Politique)을 통해 ‘당 없는 정캄를 기치로 활발한 정치 활동을 펴고 있다.

 

바디우는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거부한다. 진리는 복수로 존재하며, 항상 불투명한 성격을 가진 ‘사건’에서 출현한다. 그가 원하는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는 것이다. 이전의 철학은 진리의 생산을 한 영역에 가뒀고, 그것을 전능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진리들을 억압했다.


»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

■ 사르트르·알튀세르·마오를 거쳐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요일 저녁. 이미 일흔을 넘긴 노교수의 강의가 파리고등사범학교의 쥘 페리 대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에서부터 현직 교수, 교사들,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젊은 학생들까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강의 시작 30분 전부터 강의실을 채우고 있다. 시간이 되자 백발의 노교수가 천천히 강의실로 들어온다. 곧이어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200여명의 청중은 정적 속에서 강의에 집중한다. 매달 한 차례 진행되는 이 강의의 주인공은 알랭 바디우(72)라는 프랑스 철학자다.


바디우는 그의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에 견줘 국내에서 그다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1988년 대표작인 <존재와 사건>을 프랑스에서 출간한 이래 끊임없이 문제작들을 내놓았다. 프랑스 철학의 많은 거장들이 타계한 지금, 바디우는 오늘날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력은 복잡다단하다. 장폴 사르트르를 추종하던 젊은이였던 그는 파리고등사범학교 시절 루이 알튀세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이후 1968년 혁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다. 70년대 마오주의 운동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80년대에 들어와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나 독자적인 사유를 추구하게 된다. 그 결실이 바로 <존재와 사건>이다. 이 저작에서 바디우는 집합이론을 통하여 존재론을 재조명하고, 퇴장당한 것으로 간주된 ‘진리’를 다시 철학 속으로 끌어들인다.

 

 

■ 진리의 부활과 철학의 복권

 

프랑스를 중심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에 대한 비판은 실로 강력한 것이었다. 이른바 탈근대 철학은 전통 철학이 추구했던 진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허구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진리에 대한 맹목적 숭배는 모든 비(非)진리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자크 데리다, 프랑수아 리오타르와 같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비판이었다. 탈근대 철학은 이를 통하여 철학이 더는 진리를 욕망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한다. 철학은 이제 진리 없는 상대주의의 길,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추구했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떤 진리도, 어떤 유토피아도 사유할 수 없다는 우울한 승인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이던 80년대 후반, 바디우는 그에 반대하여 철학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야심찬 시도를 감행한다.


이는 무척 독특하고 흥미로운 시도이다. 바디우는 철학을 복권시키기 위해 기존의 철학을 넘어선다. 그의 시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진리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그에게 진리는 여러 영역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진리란 복수(複數)의 절차 속에서 생산되는 복수의 진리이다. 그러한 진리는 예술·정칟과학·사랑 같은 철학 외부의 영역에서 생산된다. 철학의 할일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생산된 진리를 ‘사유’하는 것이다. ‘진리는 없다’고 말하는 탈근대 철학에 맞서 바디우는 ‘진리는 있다’고 응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탈근대 철학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진지한 문제제기를 수용하는 가운데 전통 철학의 진리와는 전혀 다른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진리는 복수로 존재하며, 항상 불투명한 성격을 지닌 ‘사건’으로부터 출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는 과거의 철학이 말하고 있는 진리가 아닌 혁신된 진리이다.


이렇게 바디우는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완전히 거부하고 진리를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철학을 구원하고자 한다. 이전의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철학은 진리의 생산을 어느 한 영역에 가두었고, 그것을 전능한 것으로 간주하여 다른 진리들을 억압하였다. 그리하여 진리는 폭압적인 형상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맹종하는 실증적 철학과 정치적 진리를 특권화하는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디우는 이렇게 어느 특권적 영역에만 갇혀 있는 철학을 원하지 않는다. 정치를 특권화하는 철학은 예술·과학·사랑 같은 영역을 모두 정치에 종속시키고, 과학을 특권화하는 철학은 다른 영역을 도외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철학은 여러 진리를 동시에 사유하는 철학이다.


바디우는 그렇게 혁신된 철학을 통해 진리에 대한 사유를 전개한다. 진리에 대한 사유는 진리를 생산하는 ‘사건’에 대한 사유이고, 사건 이후에 생산된 ‘진리’에 대한 사유이며, 그 진리에 충실한 ‘주체’들의 실천에 대한 사유이다. 그는 사뮈엘 베케트의 산문과, 파울 첼란, 페소아의 시학에 집중하고, 현대 집합이론의 혁신에 천착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정치에 대한 그의 사유이다.

 

 

■ 오늘의 현실과 19세기의 유사성

 

그는 오늘의 현실을 19세기와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광범위한 빈곤층의 증가, 젊은이들의 허무주의, 불평등의 확대 등은 모두 19세기를 지배했던 현상들이다. 그에 따르면 ‘파리 코뮌’이라는 19세기의 마지막 정치적 사건 이후 혁명의 기운은 쇠퇴하였고, 다시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제국주의적 세계질서가 위기를 맞이하기까지 50년에 가까운 휴지기가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는 확실히 신자유주의의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68년 혁명 이후 모든 해방의 가능성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이 노동을 지배한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 아니다. 그 관계는 분명 역전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했던 공산주의는 끝났고, 우리에게 실현해야 할 해방의 가설이 더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오늘날 중요한 것은 당장 무엇인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의 가설을 일신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보편적인 것의 사유를 통해 가능하다. 그것이 우리가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 ‘평등의 선언’을 포기할 수 없다

 

바디우가 말하는 평등은 결코 객관적인 평등, 실현해야 할 목표로서의 평등이 아니다. 임금이나 기회의 평등, 계약에서의 평등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평등하다’는 선언이 문제시되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의 지배관계를 실질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평등의 선언이다. 이를 포기하는 것은 해방을 포기하고 주어진 지배질서에 투항하는 일일 뿐이다. 모든 의미 있는 정치적 선언은 항상 평등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이를 통해 보편적 정치로 나아간다. ‘역전의 정캄의 동력은 항상 이러한 평등의 선언에 있는 것이다.


바디우에 따르면 이러한 해방적 정치의 길을 걷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용기’이다. 분명 오늘날을 지배하는 것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최근 세계를 압도하는 경제 위기의 확산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 공포라는 괴물은 객관적인 데이터보다 훨씬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잠식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강박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모든 시련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지키며 인내하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그러한 인내를 통해 우리는 용기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해방을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용기인 것이다. 바디우는 우리에게 진리를 말한다. 그 진리는 지켜내야 하는 진리이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내는 무명용사들은 어디에나 있다. 바디우는 말한다. 당신이 두 번 믿지 않을 것을 사랑하라고. 그리하여 진리 속에서 영원하라고.

 

서용순/세종대 초빙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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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순 교수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귀국해 철학아카데미와 한국외국어대 철학과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세종대 초빙교수로 있다. 현대철학 중에서도 존재론과 정치철학에 관심을 품고 꾸준히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