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영화감상] 왕의 남자

두괴즐 2011. 6. 6. 23:03


왕의 남자 (2005)

King and the Clown 
9.2
감독
이준익
출연
감우성, 정진영, 이준기, 강성연, 유해진
정보
시대극, 드라마 | 한국 | 119 분 | 200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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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

-우리 함께 한 판 아니, 계속해서 놀아보세



 이 영화는 광대와 왕, 예술과 권력이 나란히 놓여 전개된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광대가 오히려 ‘자유’로워 보이고, 왕은 속박되어 있는 듯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광대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듯하나 자유를 가진 듯 보이고, 왕은 모든 것을 가진듯하나 자유를 가지지 못한 듯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독해는 비약과 오독의 산물이다. 광대라고 마냥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왕이라고 마냥 구속당해 있는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이분법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할 말 하겠다. 나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정제된, 정합적 글쓰기를 해야 하는) 왕이라기 보단 그저 얼치기 광대(잡글예찬자)이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에서는 광대가 곧 광대다. 그리고 왕이 곧 왕이다. 그리고 자유는 이들이 사회적 위치에 따라 각기 부여된다. 가진 것 없이 떠도는 광대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는 왕을 조롱하는 무대를 열수 있고 그 판 위에선 자신이 자유로운 왕이 된다. 반면 궁궐의 왕은 온갖 율법 속에 갇혀 있다. 뭐만 하려고 하면 “아니되옵니다. 그것은 선왕의 뜻과 어긋나며”라거나 “망극하오나 법도에서 벗어나는”이라는 소리를 듣기 일수다. 만약 그 딴지(따니)들을 무시하면 왕은 하늘이란 이름 앞에서 제거된다.


 그렇다면 오늘 날 광대는 누구이며, 왕은 누구일까? 예술인이 광대이고, 대통령이 왕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예술인은 자본의 유혹을 이길 수만 있다면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 대통령은 일단 그 시작부터가 굽신굽신에서 시작된다. 표 구걸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좌에 앉고 나서도 참모진과 여당, 야당의 잔소리에 휩싸여 지내게 된다. 물론 권력을 가진 자신에게 굽신굽신하는 자들 위에서 거드름을 피울 수 있고, 잔머리를 굴려 돈을 꼼칠 수도 있다. 만약 국민들이 말 안 듣고 개긴다(개개다)면 물대포를 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위태로워지고 스스로 자유를 옥죄게 된다.


 그런데 사실 내가 여기서 하고픈 얘기는 그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날 모두가 광대 혹은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헌법적으로 보장된 시민으로서의 권리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태도의 문제에서 말이다. 그러니깐 이 시대가 주입하는 논리-이를테면 무한경쟁과 자본의 추구 혹은 권력의 추구에 포섭되는 순간 그는 왕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매혹되어 자유의 포기에 이르게 된다. 세습으로서 달성되는 권좌의 시스템이 붕괴된 오늘 날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주체적 의지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중요한 것은 개인이 가지게 되는 직업이 아니다. 예술가도 자유를 잃은 왕이 될 수 있고 대통령도 자유로운 광대가 될 수 있다. 물론 직업군 자체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제약은 존재할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의지이다. ‘가지지 않을수록-자발적 가난’을 감당할수록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온전한 자유 앞에서 도피하지 않으려는 굳은 용기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물론 그렇다고 ‘거지야 말로 자유인이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주린 배 앞에 자유는 사치가 된다. 우리는 결국 아슬아슬 한 줄타기 위에서 광대적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체적 걸음인 광대적 삶은 권력(왕)을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권력을 유도할 수 있을까? 그러니깐 광대의 놀이판에 초대하여 함께 춤을 출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때는 광대와 왕의 경계가 무너질 수 있을지 모른다. 줄타기 위에 군림하는 왕과 권력의 왕이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면, 아침에는 모를 심고 점심때는 정책을 입안하고 저녁에는 막걸리를 마시며 시를 읊는 것이 가능한 사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놀이와 일의 구분이 애매모호해 지고, 광대와 왕의 구분이 애매모호해 지고, 가난과 부의 구분이 애매모호해 지는 자유의 세계. 그곳에서 그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생산하고 또 그것을 먹으며 한판 즐기고 놀다 가는 인생-멋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촛불을 들고 한 판 놀다가 물대포를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대포는 율법이 쏠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광대와 왕이 함께 까뒹구는 그 때, 세상은 바뀔 텐데.

-아니라고? 그렇다면 바뀔 때 까지 한번 계속 놀아보자. 겁(무서움/두려움)은 개나 줘버리고.



* 추신.

-분명 대한민국에서 <왕의 남자>를 보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화성, 목성, 천왕성을 지나 태양계를 안녕하고 결국 안드로메다에 도착해 버렸다. 달에서 토끼가 손을 내밀 때 잡았어야 했는데, 이런. 이제 나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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