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

[영화감상]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두괴즐 2011. 6. 6. 23:0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4)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8.7
감독
이누도 잇신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우에노 주리, 아라이 히로후미, 신야 에이코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일본 | 116 분 | 2004-10-29
글쓴이 평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다시 조제를 만나게 돼서 너무 다행이다



 이 영화는 이누도 잇신의 2003년도 작품이다. 나는 사람들이 찬양하는 작품은 대게 챙겨보려고 하는 타입이라 이 영화도 예전에 봤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감명 깊게 보진 않았기에 별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내 측근들의 찬양과 그런 내 기억의 거리 때문이다. 그러니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좋게 봤던 영환데 나는 심드렁했었기에 ‘도대체가 뭣 때문이지’라는 심정이 들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난 이 영화가 너무나 좋아졌다.


 일단 이 영화는 제목부터가 가관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니. ‘이건 뭐 어쩌라고’라는 심정이 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조제’는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가명)이다. 물론 본명은 아니고 『1년 후』의 작가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조제는 선천적으로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다. 그녀는 할머니와 둘이 사는데, 할머니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감추려 든다. 할머니는 그녀에게 “너는 아프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처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 조제는 자신의 골방에서 할머니가 주워 온 책을 읽으며 세상을 그린다. 그리고 사람이 다니지 않는 새벽녘에 할머니에게 떼를 써 산책을 나간다. 세상을 향해 뛰쳐나가고 싶지만, 육체적 연약함과 할머니의 억압이 그녀를 골방에 가둔다. 후에 그녀의 연인이 된 츠네오가 말한다. 외로웠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뿐” 그녀는 자신을 물고기라고 상정하고 유유자적 헤엄치는 모습을 골방에서 꿈을 꾸며 그 시간을 견뎠다.


 호랑이는 조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호랑이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던 츠네오와 몸을 섞은 후 그와 함께 호랑이를 보러갔다. 역시 호랑이는 무서웠다. 하지만 츠네오가 있었기에 괜찮을 수 있었다. 나는 이들의 사랑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조제는 이제 호랑이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게 됐다. 가장 무서워하던 호랑이를 말이다. 하지만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의 그녀는 이제 전적으로 의존하고 기대는 그가 생기고 말았다. ‘이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이 사랑의 죽음, 이별이 된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조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츠네오와의 의미심장한 첫 여행의 조개껍질 위에서 몸을 섞은 후 이렇게 말한다. “난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일(섹스)을 하려고 물속에서 올라온 인어(물고기)야”라고. 그리고 잠든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조제는 나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에 이미 츠네오의 자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디유는 사랑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그가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찬가지로 나를 떠날 자유 역시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디유는 사랑을 “두 사람의 경험”으로 보았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자유에서 비롯된 사랑의 시작을 망각한 채 영원이라는 허상을 쫓게 된다. 바로 내가 그런 허상을 쫓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제는 사랑의 시작을 기억하고 있었다. 자유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흘러간 1년의 세월”이 될 그 순간들을 몸에 새기고 있었다.


 밴드 넬은 이런 사랑의 존재론적 의미를 음악에 담은 적이 있다. “지쳐 버려서, 놓아버리면, 우린 스쳐가는 사람처럼.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죠. 수많았던 웃음과 눈물은 모두 그저 추억이라는 제목을 지닌 한 편의 수필 되어, 기억의 책장 그 어딘가 남게 될 테고 시간이 흘러 갈 수록 그 위엔 먼지만 쌓여가겠죠.” 너무나 사랑했던 그 뜨거웠던 삶이, ‘그저 흘러간 1년의 세월’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지점은 한 편의 수필이 된 기억의 책 위에 먼지가 쌓이게 되는 순간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조제는 수필이 쓰여 지고 있던 그 때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제가 강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오롯이 자신의 삶에 서 있었다. ‘자유로부터 도피1)’하지 않는 그녀는 매번 자유로부터 도피해 사랑이란 이름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던 나를 부끄럽게 했다. 그녀는 자신을 물고기로 비유했다. 그런데 제목을 다시보라.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들’이다. 조제가 하반신 마비라서 물고기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심해의 기억을, 외롭던 시간들을 흠뻑 갖고 있다. 우리가 바로 ‘물고기들’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작가 박민규는 인간은 일상을 살아간다고 한다. 다만 그 일상이 삶이 되는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이 바로 사랑을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존재론적으로 시작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 더욱 깊어져 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이 이미 죽음의 확정을 판정받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서로의 ‘자유’가 존중될 수 있다. 박민규의 파반느 역시 ‘신체적 죽음’을 통해서 삶과 일상의 위태로움을 견뎌낼 수 있지 않았던가.

 

 


 조제는 그가 없는 시간으로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삶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요리를 하고 ‘쿵!’하며 바닥을 내려온다. 사랑의 종결은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조제는 성장이라 말한다. 내가 이 영화를 지금에 봤을 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울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사랑을 향한 ‘자유로 부터의 도피’가 내 사랑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조제는 이런 나를 무심히 쳐다보며 “그럼 너도 다리를 잘라”라고 말한다. 내가 얼마나 나를, 그리고 너를 인정하지 못했는지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리를 자를 수 있을 만큼 강한 존재도 아니고, 매번 불안해하며 사랑의 둥지를 도피처로 삼으려 드는 나의 유약함이 단박에 해결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조제를 만나게 돼서

‘너무나 다행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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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란 존재는 온전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불안해하기 때문에 자꾸만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 도피처는 국가일 수도 있고, 파시즘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온전한 자유는 인간이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프롬은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 도피는 항상 자신의 제거와 대상과의 권력적 관계화가 관철되기 때문이다. 나느 조제가 그 자유를 오롯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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