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

[앨범리뷰] 장기하와 얼굴들 - 장기하와 얼굴들 [2011]

두괴즐 2011. 6. 26. 18:08


[앨범리뷰] 장기하와 얼굴들 - 장기하와 얼굴들 [2011]



* 출처: http://bo-da.net/entry/1085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2011/붕가붕가레코드)
8.0 

01. 뭘 그렇게 놀래 
02. 그렇고 그런 사이 
03.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 
04. TV를 봤네
05.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06. 깊은 밤 전화번호부 
07. 우리 지금 만나 
08. 그 때 그 노래
09. 마냥 걷는다
10.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11. TV를 봤네 (다시)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 <싸구려 커피>를 발표한 이후 공전의 히트를 거듭했다. 하지만 2009년에 발표한 1집까지 아우른다 해도 그들의 음악을 온전히 상찬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의 인기는 온전한 음악적인 완성도보다는 키치적인 유머가 선사하는 쾌감과 독특함에 기인하는 측면이 더 강했다. 1집 [별일 없이 산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은 복고적인 록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지만 오마주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분명 가능성이 보이기는 했지만 찬사를 보낼 정도는 아니었다. 밴드의 사운드 역시 단일한 밴드라기보다는 장기하의 보컬을 받쳐주는 것 이상의 독창적인 매력을 창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2년 뒤인 6월 9일 정식 출시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은 1집과는 사뭇 다른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음반의 첫 곡 <뭘 그렇게 놀래>에서 장기하가 호언장담하듯 '진짜로 멋지게 해'낸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의 가장 큰 변화는 밴드가 밴드다워졌다는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지향하는 1960-70년대의 록 사운드를 명쾌하게 구사하는 밴드는 각자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주의 맛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사운드의 합을 구사하고 있다. 음반의 초반 <뭘 그렇게 놀래>, <그렇고 그런 사이>, <모질게 말하지 말라며>로 이어지는 세 곡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건반이 멋지게 주도하는 사운드는 단순하게 이어지는 구성을 배격하고 펑키하고 현란하며 유쾌한 구성을 이어간다. 그 결과 틈에서 장기하의 또렷한 보컬과 복고적인 사운드는 서로 매끄럽게 몸을 섞으며 리드미컬하게 흘러간다. 음반 후반부의 <마냥 걷는다>와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에서도 밴드의 사운드는 촘촘하고 강력하다. 특히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의 사이키델릭하게 폭발하는 후반부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더 이상 기존의 키치적 이미지에 기반한 밴드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연주력이 빛나는 곡들, 특히 건반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곡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은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떼창이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밴드의 코러스도 충분히 어울린다.

전작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이 1960~70년대의 록 사운드를 내려고 시도하는 정도에서 멈췄다면 이번 음반에서는 과거의 복제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분명히 정립해내고 있다. 고고와 로큰롤에 기반한 곡들부터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이르기까지 장기하와 얼굴들은 능수능란한 호흡으로 과거의 질감을 오늘로 가져오고 있다. 그 노래들 속에서 과거의 밴드들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그 순간은 지극히 짧다.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의 패는 그리 가볍게 엿볼 수 없다. 2000년대 중반 한국 록을 함께 선도한 새로운 복고가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함께 프로듀서를 맡은 장기하와 하세가와 요헤이가 잘 맞아 떨어진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록 사운드의 곡들과 함께 실려 있는 <TV를 봤네>와 <그때 그 노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적 여백을 더 여유롭게 확대하고 있다. 물론 전반적인 가사와 어조에서는 장기하 특유의 능청과 으름장, 의뭉스러움이 여전하고 가사의 운율감도 한결같다. 하지만 코믹함은 확실히 줄었다. 게다가 꽉 채워져 단단하게 받쳐지면서도 다채로운 사운드로 인해 가사의 설정과 후렴구의 독특함이라는 캐릭터로 즐거움을 주던 장기하와 얼굴들 1집에서는 완전히 환골탈태했다. 수록된 개별 곡들의 완성도가 높고 밴드로서 완전히 제자리를 잡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은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단지 '좆나게 웃'기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너무 잘'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만든다. 두 번째 음반으로 비로소 장기하와 얼굴들은 진짜 밴드가 되고 인기가 당연한 뮤지션이 되었다. (서정민갑/보다)



* 출처: http://www.weiv.co.kr/review_view.html?code=album&num=3005


워프 항법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음반은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음반'이다. 좋기만 해서는 잘해야 본전이다. 데뷔작이 거둔 성공과 그 성공에 대한 냉소도 뛰어넘어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음반이 맴도는 시공간의 큰 축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한국 록이다. 이는 밴드의 데뷔작뿐 아니라 미미 시스터즈의 데뷔작과도 같은 이미지를 공유한다. '[곱창전골]에 앉아 술을 마시며 옛 음악을 듣는 젊은 뮤지션들'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하세가와 요헤이가 장기하와 함께 프로듀서를 맡은 사실 또한 이런 맥락 하에서 고려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사랑과 평화를 끌어들이며 호기롭게 문을 여는 "뭘 그렇게 놀래"나 신중현의 "미인"의 패러디에 가까운 "우리 지금 만나" 같은 곡들은 여전히 밴드가 복고와 키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이 줄타기가 사람들이 그렇게들 좋아했던 밴드의 데뷔작 [별일 없이 산다](2009)를 개인적으로 미심쩍어했던 이유다. 여전히 나는 그 음반이 (이 레이블의 몇몇 결과물이 그렇듯) '음악'보다는 '스타일'과 '말'이 앞선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신보가 전작의 한계를 훌쩍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리고 그건 위에 언급한 곡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 키보드와 기타, 보컬이 쉴 새 없이 '깐죽거리는' "그렇고 그런 사이"와 훵키하게 내달리는 "깊은 밤 전화번호부", 변화무쌍한 싸이키델릭 "날 보고 뭐라 그러는 것도 아닌데"에서 밴드는 옛 스타일을 창조적으로 취하는 법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이 과정에서 건반 주자의 활약은 따로 언급할 가치가 충분하다). 음반의 시간축과 공간축도 확장되었다. "TV를 봤네"와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는 둘 다 '비틀즈 스타일(beatlesque)'에 속하지만 전자는 그걸 '얼터너티브'하게, 후자는 1970년대 아트 록처럼 '튜닝'한다. "마냥 걷는다"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행복하게 만난다. 

밴드는, 그리고 장기하는, 자신들을 유명하게 만든 키치적인 위트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있다. 물론 장기하는 스포큰 워드(spoken word, 가수가 노래 대신 얘기를 들려주는 음악 장르)와 노래를 적절히 섞어 가며 리듬 위에서 덩실거린다. 위트와 독설은 줄고 어휘와 내용은 보다 단정하게 다듬어졌다. 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렇게 발음이 좋은데 안 들릴 수가 없지 않나? 

어떤 이들은 장기하도, 얼굴들도, 이 음반도 어딘지 모르게 '성실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음반에서 밴드가 보인 성실함은 잠깐씩 반짝일 뿐인 나태한 재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장기하와 얼굴들]에 또 다른 '시대의 송가'는 없다. 그러나 장기하와 얼굴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멋지게 해냈다는'("뭘 그렇게 놀래") 데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건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음반을 만들어낸 밴드의 당연한 권리다.  20110609 


최민우 daftsounds@gmail.com | chief editor

 album rating




* 출처: http://music.daum.net/playzone/talkBoard.do?boardId=1893&nil_profile=mediatmusic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2011)

모질게 말할 수가, 없다

처음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를 접했을 때 지적인 육각수라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따라 부르기엔 호흡이 힘들지만 그의 입에 착착 붙고 우리의 귀에 쏙쏙 붙는 시시콜콜하면서도 구수한 가사가 그랬고, 제대로 웃기는 노래를 만들어 춤까지 붙여 무대로 올라갔는데도 싼티가 전혀 안 나서 그랬다. 좌우간 오래 잊고 있던 어느 유쾌한 가수가 문득 떠올랐을 만큼 큰 웃음 줬던 퍼포먼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해 사용자가 제작한 이런저런 2차 콘텐츠들이 광장급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넷심을 움직인 핫이슈가 됐는데, 최근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면서 무려 고현정한테 인터뷰를 당하는 정도로 사회적 계급이 상승했으니 이제는 과연 뮤지션계의 슈퍼스타라 말해도 허언이 아닐 것 같다. 게다가 그런 번영에 충분히 수긍할 만한 준수한 작품으로 복귀했고 합당한 반응이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지칠 줄 모르고 주단위로 한 다발씩 쏟아내는 리메이크 곡의 폭격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래는 섞인다. 부상하던 순간은 그야말로 벼락과 같았지만 막상 첫 번째 정규앨범 앞에서 좀 미적지근한 평가를 얻었던 몇 해 전과 달리, 그들은 지금 다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앨범 발표 이전의 정황. 1집까지 함께 활동하던 미미 시스터즈와 결별한 상황을 그들은 참 그들다운 용어로 정리했다. 합의이혼. 이혼 후 감당하게 되는 마음의 파동을 다만 짐작하기를, 일단 가볍지 않은 혼란을 겪었거나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누렸을 것이고, 이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며, 그 변화는 무언가에 깊게 집중하면서 마침내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인데, 실제 미혼이라 쳐도 이 모든 과정을 해치웠을 것으로 사료되는 장얼과 미미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혼의 발전적인 후일담을 들려주고 있다. 부부사이라 말하긴 좀 느끼하지만 어쨌든 장얼과 미미는 함께 활동하던 시절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는 차원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였을 것이고, 결별 후 각각 어떻게 이력을 관리해야 할지를 생산적으로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둘은 때때로 일치하고(하세가와) 때때로 완전히 다른 뮤지션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미미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음악 그리고 장얼처럼 기대 이상의 음악을 차차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이혼 또한 여유와 재치의 그들 무리에게 흥미로운 미션이라 말하는 것처럼.

좌우간 공식 이혼 발표 후에 앨범이 나왔다. 전작이 장기하가 주도하는 1인 송라이팅 중심의 음악이었다면, 공연멤버로 활동하던 얼굴들의 지분을 넓혀 완전한 밴드 구성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하는 앨범이다. 그러나 기획 차원에서 새 앨범을 드러낸 전략은 홍보의 1타 콘텐츠인 15초짜리 티저만 없었다 뿐이지 사실상 주류 아이돌의 매뉴얼에 가까웠다. 1집 시절에는 뮤직 비디오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장기하는 2집을 앞두고 감독 데뷔라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첨부했고, 처음이라 소개하면서도 전혀 엉성하지 않은 작품을 먼저 공개했다. 멍하니 TV를 바라보다 웃다가 졸다가 하는 'TV를 봤네'의 뮤직비디오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장기하도 똑같다는 일상기반의 연출로 우울한 군상들을 위로하면서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고, 그 기대가 팽배해져 있을 타이밍에 바로 앨범을 풀었다. 그리고 일각에서 손짓이 참 은근히 야하다고 평가되는 또 다른 장기하 감독작 '그렇고 그런 사이'의 뮤직 비디오를 열었고, 공연장은 원래 밴드니까 그렇다 쳐도 마치 막 새 노래 발표한 아이돌처럼 녹화장으로 곧장 가서 청중을 만났다. 수많은 밴드 사이에서 '선영상 후앨범', 그리고 출반과 함께 TV 출연이 즉시 이루어진 사례가 또 있을까.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호응이 따른 전례는 애석하게도 몹시 드물 것이다. 어쨌든 장얼은 여기서도 새로운 기록을 남긴 게 분명하다.


그리고 노래들. 가사와 멜로디보다 사운드 차원의 재치가 보다 두드러지는 편이다. 일부분에선 트랙리스트 순서를 따라 제목과 제목을 이으면 문장이 완성될 만큼 배열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다만 첫 곡 '뭘 그렇게 놀래'의 경우 수록곡들 틈에서 예고의 역할을 하기에는 좀 약하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곡들이 훨씬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랬는데, 거듭해서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앨범의 방향을 예고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 그리고 감상에 있어 점층효과를 노린 결정으로 보인다. 반대로 앨범에서 가장 튀는, 시종일관 뿅뿅대는 '그렇고 그런 사이'는 정신없이 소리를 쏟아내지만 다행히 마냥 성급하고 요란한 게 아니라 세대불문으로 사람의 기분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리쌍의 앨범에서 미리 접해 친숙한, 그리고 특히 도입부에서 어쩐지 쨍하고 해가 뜰 것 같은 '우리 지금 만나', 잽싸게 전환에 전환을 거듭하는 즐거운 격변의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한참 달리고 난 뒤 서글픈 듯 아름다운 전개로 휴식을 주는 '그때 그 노래'와 '마냥 걷는다' 등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들 음악의 줄기가 한탄이자 불만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잊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인가 때문에 자신이 한심했고, 무엇인가 때문에 자신이 억울했던 상황을 보컬 장기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또렷한 발음과 랩에 가까운 내레이션으로 전달하지만, 건반 중심의 편곡이라는 일관된 흐름 안에서 입체적으로 또 다각적으로 궁리한 풍성한 사운드에 어느 순간 이야기 이상으로 취해버리고 만다.


그러다 막판에 이르러 장얼은 그동안 무엇을 꾸준히 좋아했고 연구했으며 그러다 어떻게 이루었는가를 강도 높게 말한다. 8분에 달하는 서사 구성의 야심작, 혹은 장얼 버전의 '보헤미안 랩소디'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복합적인 전개를 펼치는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의 이야기다. 방송3사의 심의와 싸우기를 이미 포기한 가사 속의 몇몇 수식어가 일러주는 것처럼, 노래는 밴드가 만끽하는 가장 자유롭고(또 비타협적이고) 가장 진지한(또 싸이키한) 순간을 다룬다. 아울러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 곁에 있는 산울림, 송골매, 신중현 같은 영웅의 이름들이 가장 선명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 당시엔 1970년대 국내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고,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건반악기를 많이 쓴 옛 영미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레퍼런스를 넓히는 이 같은 작업이 되려 EP와 1집에서 들려주었던 초기의 작품들을 보다 명료하고 명쾌하게 부각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훌륭하다고 인정하지만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랬을까, 교본으로 삼기에 그리 빈번하지도 수월하지도 않았던 선배들을 소환하는 순간은 퍽 낭만적이고 또 인간적이다.


복고를 꽤 세련된 방식이라 여길 때가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닌가 한다. 장얼과 장얼을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장얼의 우상들이 먼 존재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직관과 추상의 빈티지보다는 훨씬 가깝고 친숙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구체적이고 살가운 과거지향을 세고 강하게 드러내려는 장얼의 음악은 끊임없이 말을 토해내고 다채로운 소리를 입히는 것으로 빈틈을 아낀다. 아마도 재생이 지속되는 동안 상념이 개입되는 순간은 '그때 그 노래'와 '마낭 걷는다' 정도일 것이고, 또 다른 느슨한 노래 'TV를 봤네'는 주기적으로 안정의 코러스를 싣는 것으로 바쁘게 진행된다. 재치는 물론 유지되지만 그 이상의 무게에 골몰했고, 아직 여물지 못했던 전작의 허점을 적극적인 연주와 충원된 인력으로 보완했으며, 모처럼 친숙한 듯 신선한 사운드가 의욕적으로 쏟아지는 이 의기양양한 앨범에 균형 차원에서 덧붙여야 할 자질이 있다면 그건 겸양인데, 그건 변함없이 자조적인 가사가 담당하고 있다. 허세와 진중함, 향상과 매너가 이렇게 명백한 앨범 앞에서 모질게 말하기도 칭찬을 망설이기도 좀 어렵다.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음반"이라고 돌려서 말하는 재주가 나는 별로 없다. 이건 그냥 좋은 앨범이다.

[글: 이민희 음악칼럼니스트]




* 출처: http://music.naver.com/todayMusic/index.nhn?startDate=20110623


<전문가 리뷰> 더 감칠맛이 생긴 '입말'의 힘과 더 여유로워진 '능청'의 힘

<이 리뷰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김학선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앨범의 첫 곡 '뭘 그렇게 놀래'의 연주를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사랑과 평화의 음악이 떠올랐다. '한동안 뜸했었지' 같다가도 또 중간중간 '저 바람'이 생각나기도 했다. 첫 앨범 [별 일 없이 산다]에서 그가 참조했던 목록이 신중현, 송창식, 배철수(송골매) 정도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레퍼런스가 더 늘어난 셈이다. 앨범의 첫 곡에서부터 선배 밴드의 영향력이 강하게 풍기는 노래를 들려준다는 것은, 그럼에도 자신의 것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복고'라는 자신의 색깔을 더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어느 앨범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이 두 번째 앨범 [장기하와 얼굴들]은 특히 중요했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가 인터넷의 '플짤'과 '합성' 때문에 뜬 것이 아니라는 것, 어쩌다 보니 그냥 얻어 걸린 스타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보통 이런 임무는 첫 앨범이 갖기 마련이지만 [별 일 없이 산다]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다. [별 일 없이 산다]가 나쁜 앨범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좋다고 '하기에는 뭔가' 애매한 앨범이었다. 한 마디로 여전히 장기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모자란 작품이었다. 이 두 번째 앨범에서마저 '하기에는 뭔가' 싶은 애매한 결과물을 들고 나왔다면 그는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가 아니라 '오래된 애매함'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앨범의 제목 [장기하와 얼굴들]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첫 앨범에 부여하는 '셀프 타이틀'을 이례적으로 두 번째 앨범에 썼다는 것은, 이번 앨범의 중요성에 대한 결연함의 표시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더 이상 '장기하와 아이들'이나 '장기하와 그 악단'이 아닌 하나의 밴드로서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음악 외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미미 시스터즈와 합의이혼하고, 새롭게 건반 연주자 이종민을 영입하며 내실 있는 변화를 꾀한 것도 그 이유에서일 것이다. 밴드 내에서 멤버 교체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종민의 영입은 특별히 언급이 필요할 정도로 밴드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종민의 건반은 전체적인 사운드를 주도하며 과거와 현재를 무리 없이 이어주고 있고, 그토록 배철수가 되고자 했던 장기하의 옆에서 기꺼이 이봉환(송골매의 키보디스트)이 돼주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런 안정감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8분이 넘는 사이키델릭 대곡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까지 만들어내며 밴드로서의 욕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화룡정점, 또는 힙합 듀오 다 크루의 가사를 빌리자면 "호랑이 등짝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용이나 호랑이가 아니라 뱀이나 삵이어도 좋다. 중요한 건, 그들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이제 확실하게 그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송라이터, 혹은 리더 장기하 개인이 가장 칭찬 받을 점은 자기의 것을 가지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하세가와 요헤이가 프로듀싱과 편곡에 참여했지만 장기하는 여전히 자기만의 색을 지키고 있다. 하세가와가 프로듀싱한 또 다른 작품인 미미 시스터즈의 앨범이 마치 하세가와의 앨범 같았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에선 말 그대로 조력자로서 장기하의 색깔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에만 충실하고 있다. 이건 이미 장기하가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장기하는 여전히 쉬운 멜로디를 만들어 거기에 예스런 사운드를 입히고 그것을 능청스럽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입말'의 맛은 더욱 맛깔스러워졌고 반면에 언어는 더 정제됐다. 그저 '키치'일 뿐이라는 의심 앞에선 자기만의 언어로 '그때 그 노래'와 '마냥 걷는다'를 부르며 정색하고 근사한 무드를 만들어낸다. 이걸 '발전'이라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네티즌 리뷰> 정의란 무엇인가

<이 리뷰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 홍재완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장기하다. 
아닌 척 하지만, 인디음악 씬(+α) 전체가 시간이 멈춘 듯 주시한다. (너무 큰) 기대에 못 미친 1집 [별일 없이 산다] 발표 이후 제기된 과대평가 및 과잉반응에 대한 우려도 '장기하인데 중간 이상은 할 것'이란 예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별일 없이 산다]에서 얼굴들은 장기하가 구상한 큰 틀을 수월하게 실현시키기 위한 조력자로서 기능했다면, 장기하가 밝힌 대로 이번 앨범에선 장기하와 얼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작업했다. '무엇이' 다를까 보다 '어떻게' 다를까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다.

가사와 감정이 달라지긴 했지만 리쌍의 앨범을 통해 선보인 적 있는 '우리 지금 만나'와 타이틀곡인 'TV를 봤네'의 재현·반복부(reprise)인 'TV를 봤네(다시)'를 제외하면 9개인 새로운 트랙들, 그리고 30여분의 짧은 러닝타임.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녹여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음악적 근간이라 할 수 있는 6-70년대 한국 록의 유산에 대한 리바이벌과 유들유들한 정서는 흔들리지 않고 지키면서, 그 안을 채우는 방법론은 고민의 흔적이 또렷이 느껴질 정도로 다채롭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산다]에서 최고의 악기는 누가 뭐래도 장기하의 '보컬'이었다. 무관심하게 밀고 당기는 읊조림은 신선한 충격임에 분명했고, 장기하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노래 형식의 새 지평으로 연구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음악의 절정을 계속 유예하거나 절(verse)-후렴(chorus)의 구조를 형해화해 기다리던 한방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듣는 이를 감질나게 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보컬에 더해 미미 시스터즈와의 퍼포먼스가 주목받았지만, 쇼크 인플레이션에 잠식된 저간의 당장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주류 시장에 시간만 벌어 줄 해프닝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했고, 무엇보다 미미 시스터즈가 보컬로 참여한 곡들에서 그들의 무감각한 컨셉이 노래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장기하에게 있어 그의 보컬 스타일은 '패션'이기 이전에 '옷'이었다. 또한 그가 구사하는 단어 및 스토리텔링을 실어내기에 그만한 보컬 스타일은 없다. [별일 없이 산다]의 화자를 그대로 이어가는 대신, 노래로서의 감흥을 살려내는 방법은 '밴드사운드'의 보강이었다. 미미 시스터즈가 빠진 자리엔 키보디스트 이종민과 김창완 밴드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가 가담했다. 이 조합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공동 타이틀곡인 '그렇고 그런 사이'다. 작정하고 재기 발랄한 분위기 속에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데서 오는 쾌감은 그야말로 한 번에 꽂히는 힘이 된다. 

특히나 거의 전곡에 등장하는 건반은 장기하와 얼굴들 하면 떠오르는 고전적이라는 선입관에 현대적인 느낌을 제공할 뿐 아니라, 현악기에 비해 음계의 변화가 쉽게 감지되는 건반악기의 특성에 따라 선연하면서도 (6-70년대 영미권 음악을 연상시키는 빈티지한 건반의 사용에 의한) 생경한 이미지를 곡에 부여한다. 'TV를 봤네'에 사용된 피아노는 재즈적인 감각으로 멜로디 라인을 이끌고, 윤대녕의 소설 '그를 만나는 깊은 봄날 저녁'의 스토리가 겹쳐지는 '깊은 밤 전화번호부'에 사용된 다양한 건반은 분방하고 흥겨운 리듬을 주도해 나간다. 

밴드 조합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건반의 활용률이 높아진 것이 미시적 측면이라면, 수록곡들의 색깔이 전부 다른 것에서 보듯 록에 대한 하위 장르의 다양한 운용은 거시적 측면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별일 없이 산다]가 미니멀한 구성을 통한 여백의 미를 강조했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러데이션을 통해서라도 공간을 다채롭게 채워나가는 것이다. '듣는 재미'가 한층 높아졌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뒷받침이 되는 지점이다. 

한편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곡인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와 '그 때 그 노래'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전자가 수시로 변칙과 변주를 구사하면서도 무리수에 대한 사혐을 유연하게 벗어내면서 프로그레시브와 사이키델릭의 환영을 잡아낸다면, 후자는 여느 장기하와 얼굴들의 곡들이 현실에 츤착한 단어를 통해 투박하고 자조적이지만 진심에 기댄 가사를 담아낸 것과 달리,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 설정과 당장이라도 코드를 따로 싶은 감성적인 기타 멜로디를 통해 장기하와 얼굴들에게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서정성을 느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나아가 두 곡 사이에 나머지 곡들이 위치하면서 각각의 곡들이 주는 쾌감은 수위와 지속에 있어 다양한 층위를 형성하게 된다. 

책과 음악은 유독, (몇몇 작가에 집중된) 한 번의 히트가 차기작에 있어 작품성에 상관없이 흥행을 보장하는 경향이 강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이번 앨범은 분명 완성도를 떠나 (인디앨범의 평균 판매량을 훨씬 웃도는) 높은 판매고를 기록할 것이다. 무엇보다 장기하와 얼굴들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인디 씬 전체를 짊어지게 된 것에 대한 책임감과 한국 록의 고전적 미래라는 찬사에 대한 부담감 등 한 번의 성공은 많은 것을 약속해야만 하는 위치에 그들을 올려놓았다. 성공의 동력이 되어 준 대상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건 비단 기업에게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선택은 놀랍게도 그들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었다. 쎄씨봉에 대한 재조명을 일종의 안갚음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고전 음악에 대한 소환은 향수 차원에서 머무는 것은 아니지 않았던가. 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데 노력하면 잘할 수 있는 것.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 세 가지를 바탕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정의는 최선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로써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궁한 만큼 불안했던 가능성은, 정확한 만큼 확실한 가능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잘빠진 앨범을 통해 역으로, 인디음악을 알린 동시에 인디음악을 장기하와 얼굴들로만 한정짓게 만들었다는 지탄은, 무수하고 다양한 인디밴드들이 스스로 충분히 반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됐다.



※ 이 음반은 '오늘의 뮤직'의 2011년 6월 4주 '이 주의 발견 - 국내'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정위원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단] 
김학선 - ★★★★ 다 맛깔스러워진 '입말'의 맛과 사운드의 조화. 이런 게 '발전'이다. 
서정민 - ★★★★ 진짜 밴드 음악으로의 도약. 하세가와와 건반의 가세는 날개를 단 격. 
신정수 - ★★★★ 관심과 표현의 지속성, 연속성은 인정하지만... 새로움이란 기대엔 미흡, 아쉬움. 
이동연 - ★★★☆ 펑키와 포크 사운드의 공존, 복고적 양식들을 개성있게 잘 풀어냈다. 
이민희 - ★★★★☆ 재치 < 깊이 < 낭만 < 감동, 백프로 올해의 앨범.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단] 
노준영 - ★★★★☆ 21C에 재현된 가장 완벽한 클래식 뮤직. 
홍재완 - ★★★☆ 작정하고 다채로워진 방법론이 주는 쾌감. 나아가 쾌감을 밀당하는 고단수. 
이주영 - ★★★★ 억지로 자극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들리고 잘 보이는 편리함과 통쾌함. 
성윤규 - ★★★★ 장기하식 올드가요 해석은 옛스럽다기 보단 새로운 창조에 가깝다. 




** 두괴즐


사실 장기하와 얼굴들 신보가 나왔다길래 바로 들어봤다가 그렇게 좋다는 생각이 안들어서 뒤로 밀쳐 놓았었는데, 워낙 한결같은 호평 때문에 최근 다시 듣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전작에 비해 연주가 좋아졌더군요. 음악적 스펙트럼도 넓어졌고.  하지만 그렇게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큰 감동을 못받아서 그런 것이겠지요. 더 들어 보면 좀 달라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