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조국·오연호,『진보집권플랜』
* 조국의 이야기: ‘촛불’을 기억하는 당신에게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구호를 내걸었던 이명박 정권은 표현의 자유 보장 수준과 남북관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국가권력은 ‘고소영’과 ‘강부자’1) 집단의 이익을 오골적으로 대변·옹호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그러나 몇 가지 점만큼은 분명히 하고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에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매 순간 정치행위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 ‘탈정치’를 말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정치행위이다. 경제, 문화, 예술 등은 정치만큼 똑같이 중요하지만 정치의 향방과 수준은 시민의 삶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20,30대 청년들이 많이 읽기를 희망한다. 현재 청년들은 현실의 팍팍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등록금 1000만 원, 청년실업자 100만 명이라는 통계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청년들은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각자도생(各自圖生)과 각개약진(各個躍進)으로 자신만의 스펙specification(학력·학점·토익점수 등 취업준비생의 외적 조건)을 쌓을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가지게 된 듯하다. 그러나 법과 제도의 변화 없이 개별적 분투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확률은 낮다. 이 대담집을 통하여 청년들이 한국 사회의 미래와 자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5-10쪽
* 프롤로그: 진보 집권을 디자인하다
진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거칠게 정의하자면, 남북 문제에서는 군축, 평화공존,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경제에서는 자유시장주의,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시장에서 패자를 아우르는 정책을 추구하고, 양심·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시한 각종 정치적 기본권의 확대·강화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입니다. 계급적으로 보면 진보는 강자나 부자의 편이 아니라 약자나 빈자의 편입니다. 특권을 가진 엘리트의 편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편입니다. 아시다시피 법학은 정의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서민과 보통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고 봅니다. 진보의 길이 곧 정의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어디에 가서든 공개적으로 진보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26-27쪽.
저는 ‘영남 좌파’이자 ‘강남 좌파’라고 불릴 이력과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어느 사회나 보수와 진보는 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과 분단, 독재와 권위주의, ‘천민(賤民)자본주의’의 지배로 인하여 진보가 심각한 과소 상태에 있습니다. 게다가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이나 정당의 실체가 수구 또는 기득권 옹호자인 경우가 많죠. 이들이 내세우는 ‘자유주의’는 사실 가진 자의 자유만 중시하는 자유주의,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 북한과의 전쟁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이고요. 지식인으로서 이런 상황을 직시하면 진보의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죠. 27-28쪽.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수시로 친서민, 중도실용, 관용과 화합 등을 강조했습니다. 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행동이죠.(···) 이명박 대통령은 가진 자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고 약한 자에게는 세금을 올리는 정책을 취하고 있습니다. 복지예산은 깎고 비정규직 문제는 방치하고 있습니다. 잠깐 재래시장에 가서 어묵을 사 먹는 ‘쇼’를 하지만,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확실히 규제할 조치는 외면하고 있죠. 교육 문제에서도 친학원 정책을 밀어붙여 교육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어요. 이게 어떻게 친서민 정책입니까? 30쪽.
까다로운 ‘소비자’가 진보·개혁 진영 앞에 있어요. 진보·개혁진영이 내세우는 비전, 가치, 정책 등에 대하여 대중은 현실성은 있느냐, 예산은 어떻게 동원할 것이냐 꼬치꼬치 따집니다. 이에 답하지 못한 채 그냥 이 물건이 좋고 잘 만든 것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비자는 사지 않을 겁니다. 광장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근원적 힘입니다. 그렇지만 광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1982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은밀히 돌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의 사진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저는 일제강점기의 제암리학살사건2)은 실감이 잘 나지 않았어요.(···) 지금의 청소년, 대학생, 청년들은 5·16, 5·18이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5·16, 5·18의 구별보다 “내가 88만 원 세대로 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더 중요할 겁니다. 물론 역사의 중요성을 무시하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산다는 것, 사람은 현재 자신이 닥친 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요컨대, 진보의 가치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는 옛날에 이랬는데······’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현재 자기와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을 안고 있고, 어떠한 꿈을 꾸고 있는지 생각하면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최우선에 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34-36쪽.
선거를 통한 대표자 선출이라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 안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대중의 관심은 밥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밥의 문제라 함은 바로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문제, 즉 보육과 교육, 일자리, 주택, 건강 문제입니다. 진보·개혁 진영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비전, 정책,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밥 문제에서 유능한 진보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대중은 사회 제도가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하면 각자 치열한 무한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도, 내 가족이라도 살고 봐야지’라는 판단을 하는 겁니다. 학생들도 자신들의 미래가 제도적으로 해결될 것 같지 않으면 도서관으로 발길을 재촉하죠. 스펙을 쌓아야 하니까요. 생존이 급하니 다른 얘기를 하는 건 사치스러운 일로 치부됩니다. 37쪽.
현재 대중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자리, 교육, 주택 문제 등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성취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서야 합니다.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래로부터 운동이 일어나고 대중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마지막 ‘꼭지’는 정치가 따줘야 합니다. 어떠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가는 정치인이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에게 그저 맡겨두면 될까요? 물론 아닙니다. 시민들이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참여의식을 가지고 뛰어들지 않으면 정치인은 자신과 자기 정당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게 됩니다.(···) 정치권 바깥에서 정치인과 정당에게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연대가 필요합니다.(···) 달라졌지만 손을 잡아야 합니다.(···) 실권한 소수파는 서로 많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 논쟁을 하면서도 연대해야 합니다. 실권한 소수파가 연대 없이 어떻게 재집권을 할 수 있습니까?(···)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예리한 비판에 능하죠. 그런데 비판을 너무 심하게 하면 비판을 받는 사람에겐 상처가 남습니다. 개인감정이 상하게 되면 상대방 말이 맞아도 같이하기 싫어지죠.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되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살려주면서 합의점을 찾는 식으로 작업해야 합니다. 38-40쪽.
* 플랜1 성찰: 왜 진보가 집권해야 하는가
정치권력을 잡은 뒤 마음만 먹으면 경제권력을 분명히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나라나 브라질, 칠레 등 남미 나라의 경험을 보세요. 정치권력은 시장 참여자가 벌이는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없앨 수는 없죠. 그렇지만 정치권력은 법과 제도를 통하여 경제권력을 ‘규제’하고 ‘조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를 책임지는 주체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 구체적인 세밀한 계획이 있는가입니다.(···) 현 시점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최소한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재벌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은 막아야 한다’, ‘재벌이 민주주의나 헌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재벌의 경영과 부의 상속은 투명해야 한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분리되어야 한다’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54-56쪽.
추상적 모델 논쟁이 아니라 바로 지금 대중이 고통을 느끼고 개선을 원하는 구체적인 생활경제 어젠다를 찾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에 관한 좋은 예가 무상급식입니다. 진보·개혁 진영이 쟁점을 찾아 선점하고 화두와 대안을 던져 선거에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4대강 파고 호화 청사 짓는 데는 돈을 펑펑 쓰면서 왜 무상급식은 안 하느냐, 선진국에서는 무상급식뿐 아니라 학용품도 다 무상으로 주어서 아이는 학교에 몸만 가면 된다더라······. 이런 대안적 의제를 통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대중과 공유해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 개력을 통한 준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일자리 나누기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죠.(···)
꼭 이론이 다 갖춰진 다음에야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무상급식 같은 화두를 자꾸 개발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그 문제의식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중이 피부로 느끼며 공감하는 대안경제모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무상급식 논쟁은 그 자체적인 의미 외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보·개혁 진영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만 했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정책을 이슈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또한 이론적·정책적 차원에서 복지국가를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을 일으키지는 못했고요. 그런데 무상급식 논쟁은 신자유주의 반대, 복지국가 건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중이 바로 알아듣게 만들어주었습니다. 66-67쪽.
* 플랜2 사회·경제 민주화: 특권과 불공정의 시대를 넘어
오연수) 지난 2월에 <오마이뉴스> 취재팀과 함께 프랑스를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2.0명으로 유럽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데, 그 비결을 알아보러 간 거죠.(···) 뭐가 다른가 살펴보니 프랑스에는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국가와 사회가 보육을 책임지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유치원은 대부분 국립이면서 무료이고, 대학 등록금도 한 학기에 단돈 10만 원 수준입니다.
조국)(···)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유럽의 복지국가에서는 교육비까지 포함해서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데 경제적 부담이 없도록 만들어줍니다.(···) 영국이 서유럽에서는 복지 수준이 낮은 편인데도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데 별 걱정거리가 없더군요. 편견도 덜하고요. 편견은 문화적인 문제니까 차치하더라도 그 여학생은 별 다른 직업 없이도 대학 공부를 하고 두 아이를 기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제도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현재 법률상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의 직장은 보육시설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절반 이하로 확 낮춰서 웬만한 직장에는 보육시설이 갖춰지도록 해야해요.(···) 비용은 국가와 기업이 공동 부담해야 합니다. 84-86쪽.
오연수)(···) 프랑스에서 오래 산 어떤 한국인 교포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만드는 데 있다. 대학을 안 가도 직장을 구할 수 있고, 꼭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도 월세든 전세든 일정하게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 아니라 스스로 보통 사람이 되어도 어느 정도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다.”
조국)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기본적인 대접을 받고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죠. 프랑스에는 ‘그랑제콜’이라는 엘리트 교육·배출기관이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 학교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삽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만 나와도 자기 방식의 삶을 즐기며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독일에서도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나와서 소시지 만드는 직업을 택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대학을 가지 않는 사람이 많죠. 그래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성실하게 생활하는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갖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성인이 되어서는 일하면서 돈 벌고, 여가생활 즐기고, 병이 나면 치료비 부담 없이 병원에 가고······ 이런 아주 평범한 욕구 말입니다. 즉, 교육, 일자리, 주거, 보건·의료, 노후보장 등의 문제죠.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스카이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나와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보통의 성실한 한국인의 삶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한국 사회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저는 ‘불안 사회’라고 답하고 싶어요.(···) 사회의 기본 기조에 ‘불안’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불안하고 미래도 불안합니다.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연대나 단결이 어렵죠. 일단 자기부터 살고 봐야 한다는 심리가 강하니까 각자도생하는 데 급급한 거죠.(···) 사실 권력자와 사용자는 ‘불안 사회’를 선호합니다.(···) ‘불안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위’에서 자신을 선택해주길 고대하며 선택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게 되죠.
그래서 앞으로 우리는 ‘불안하지 않게 살기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88-90쪽.
경쟁이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철학에서는 사회에서 재화를 배분할 때 사람의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서 나누는 것이 정의라고 봅니다. 따라서 노동의 양이 많거나 질이 높은 사람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게 정의로운 것입니다. 사회운영 차원에서도 경쟁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경쟁은 너무 격렬하고 살인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쟁이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경쟁과잉, 경쟁중독을 해결하는 제도적 조치가 필요해요. 그리고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려면 사회 구성원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고 같은 출발선에 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뛰라고만 하고 승자에게 결과를 독식하게 하는 것은 불공정 경쟁을 영구화하는 겁니다.(···)
이와 별도로 경쟁과 무관하게 삶의 ‘최저선’을 설정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실직을 했거나 노동력을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것이 최근 강조되는 복지국가의 기본 사상입니다.(···)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설치해 주어야 합니다. 요컨대,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을 권장하면서 동시에 연대의 원리가 사회운영의 원리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91-93쪽.
오연호)(···) 국내 경쟁 구도에서 생각하면 다른 경쟁 회사는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쉴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국외 경쟁력 면에서는 다른 나라와 경쟁할 때 뒤처진다는 것이 그동안 기업의 논리였잖아요.
조국) 과거 문국현 씨가 유한킴벌리에서 실험했던 ‘4조 2교대’를 포스코 계열 철강재 포장업체인 삼정피앤에이P&A 등의 회사가 이어 받았습니다. 주간조, 야간조로 편성하여 3일 근무하고 3일 쉬는 거죠. 처음에는 하루 12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우려가 있었는데, 새로운 근무 형태를 채택하니 휴일, 신규고용, 생산성이 모두 늘어났죠. 직원 만족도도 매우 높아요. 연봉을 더 많이 주는 회사가 있더라도 이직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삼정피앤에이의 경우 직원의 연간 근무일이 317일에서 174.5일로 대폭 줄고, 휴일은 48일에서 190.5일로 껑충 늘어났어요. 직원들은 새로 생긴 여가시간을 회사가 제공하는 컴퓨터, 수영, 요가 등 17개 과정의 다양한 평생학습과 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보내죠. 연간 근로시간이 2324시간에 1920시간으로 줄어든 반면, 직원 1인당 연간 학습시간은 300시간으로 늘어났고요. 그 결과 직원들에 의한 새로운 개발과 공정혁신이 이루어졌어요. 그 회사에서 쓰고 있는 로봇결속기 ‘스트랩마스터StrapMaster'는 직원들이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사회임금을 높임과 동시에 이러한 노동체제를 택하면 우리 삶의 질은 대폭 높아질 거예요. 이제 잔업, 야근, 특근하며 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자는 식의 패러다임을 깨야 합니다. 장시간 노동을 통해 다른 나라와 경쟁한다는 생각도 낡은 생각입니다. 창의성과 자발성이 있는 노동이라야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건 상식입니다.
한편 ‘4조 2교대’나 ‘대체공휴일’을 채택하면 휴일이 늘어나잖아요. 그러면 두 가지 효과가 있어요. 우선, 지금 기업들은 채우지 못한 법정 연차휴가 일수에 따라 직원들에게 대신 돈을 줘야 하니 연차휴가를 다 쓰게 되면 그 돈을 절약할 수 있죠. 둘째로 많은 사람들이 놀게 되면 관광산업이나 여가산업이 살아나게 되죠.(···) 그러면 이 분야에서 새로운 고용 창출이 이루어지겠죠.
오연호)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일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적으로 하거나 노동자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생산을 참여하면 노동 시간이 짧아도 효과는 더 클 수 있죠.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쓴『유러피언 드림』에서는 미국과 프랑스의 노동시간 대비 생산효율성을 비교해놓았는데, 프랑스가 미국에 비해 노동시간이 짧아도 시간당 생산성이 더 높더군요. 우리 기업인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오래 일하는 게 더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양적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95-98쪽.
오연수) 제가 볼 때 우리나라는 가족이 골병드는 사회입니다. 나라와 사회가 받쳐주지 않으니까 가족이, 보모가 힘겨워하면서도 계속 도와주는 건데, 이것이 우리 사회복지 시스템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죠.
프랑스 같은 서구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을 합니다. 일단 등록금 없고, 월세 싸고, 아르바이트가 일상화되어 있으니 독립의 조건이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결혼하고 애 키우는 것까지 부모가 계속 뒷바라지를 해줍니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가족끼리 전부 돈 걷어서 부담하고요. 그러니까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하는 역할을 각 가정이 떠맡고 있는 거죠.(···)
조국) 최근 프랑스 정부가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하려고 하자 전국적인 반대시위가 일어났어요. 연금 받으며 쉬려고 했는데 왜 더 일하게 하느냐고 항의한 겁니다.(···) 프랑스는 노후복지가 제도적으로 해결되어 있으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노동과 복지 문제가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그 부담이 가족에게 갑니다. 제도가 아니라 혈연으로 해결한다는 데 문제가 있죠. 유럽 중에서는 이탈리아가 비슷한데, 우리의 모습을 이탈리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요. 시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고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끼리, 혈연끼리 뭉쳐서 해결하자는 식의 문화를 만든 것입니다. 제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결국 부모가 계속 출혈을 해야 하고 자식이 성인이 된 후에도 돌봐주어야 하는 거죠.(···)
그 핵심 중 하나가 ‘사회임금’을 높이는 것입니다.(···) 직업을 못 구하거나 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잃게 되면, 시장임금은 없어지고 사회임금도 거의 없으니 암담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국가가 제도를 통해서 사회임금을 높여주면 시장임금이 낮아져도 삶이 팍팍해지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국민의 약 70~80퍼센트가 큰 부담 없이 임대 주택에서 살 수 있어요.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희귀한 일이고, 대학등록금도 매우 낮아서 교육비 부담이 적죠. 그리고 무상의료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중병이 들었다고 해서 집안이 의료비로 거덜 나는 일은 없어요. 이들 나라의 시민은 시장임금 외에 사회임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모든 것을 개인이 시장임금을 벌어 해결해야 하니 죽을 노릇이죠. ‘빨갱이 콤플렉스’ 때문에 두려워서, 또는 ‘아직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국가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죠. 99-102쪽.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준(準)무상의료 등은 현재 우리나라 부의 수준에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현재 한국의 부의 규모는 서구에서 ‘복지국가’가 이루어졌을 때 그 나라의 부의 규모보다 훨씬 높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가 외국 관료나 학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반응이 자주 나옵니다. “한국에 그런 복지제도가 없다고? 무슨 얘기냐, 한국에 그게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한국 정도의 부의 규모를 갖춘 나라들 가운데 한국의 복지 수준은 꼴찌에 가깝거든요. 한국은 이미 충분히 ‘부자 나라’입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고, 그것을 실현할 의지가 없는 겁니다. 104쪽.
대중이 ‘다른 길이 있었구나, 다른 식으로 한번 살아보자’라고 판단할 때까지 새로운 가치를 알리고 또 알려야 합니다. 그 속에서 대중과 결합하고 대중의 참여를 일으켜야 합니다. 107쪽.
이명박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펼쳤지만 대기업은 전혀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았잖아요.(···) 2000년 벨기에가 실시한 ‘로제타 플랜Rosetta plan', 즉 민간기업의 3퍼센트 청년의무고용제를 어떻게 한국화할 것인지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민간 기업에 청년의무고용을 관철하기가 어렵다면 공기업에서라도 실시해야죠. 사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제5조에서 법이 정하는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의 장은 “매년 각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정원의 100분의 3 이상씩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이를 의무규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국가는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도록 제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면서 국가는 국가대로 별도의 일자리 창출 작업을 해야 하고요. 국가가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는 주로 사회보장 영역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지진이 일어난 칠레의 전직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의 실천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이 미혼모 출신이어서 보육 문제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2006년 집권 후 0~4세 아동에 대해 무상급식·무상보육·무상의료 지원 정책을 만들었어요. 칠레는 1인당 GDP가 약 1만 5000달러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인데도 말입니다. 당연히 전국적으로 고용 창출이 일어났죠. 연이어서 소비가 진작되어 경기도 좋아졌고, 보육 부담이 없어지니 출산율이 급증했어요. 이 사례는 국가가 복지를 강화함으로써 일석삼조도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입니다. 108-109쪽.
오연호) 사회안전망이 잘돼 있는 덴마크나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노동유연성을 오히려 즐긴다고 합니다. 기존 직장에서 나와도 재취업을 할 때까지 국가가 거의 직장 다닐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책임을 져주고, 다른 직장으로 옮기려고 할 때는 그에 걸맞은 교육을 체계적으로 해주니까요. 해고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겨 반기는 것이죠.
조국) 사회임금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굳이 정규직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노동자가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어요. 그런 나라에서는 사회임금이 높다는 점 외에도 비정규직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관철된다는 점이에요. 한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임금이 반 토막 나거든요.(···) 사회임금을 올리는 것은 시간이 더 걸릴 테니까, 비정규직 문제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단기간에 쟁취해야 할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구현입니다. 112-113쪽.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경제죠. 지금의 재벌도 처음에는 중소기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는 건 몹시 힘들어요. 조금만 성장한다 싶으면 대기업이 빼앗아 먹어버리거나 하청업체로 만들어 쥐어짜니까요. 재벌 대기업 집단이 먹을거리에서부터 첨단산업까지 모두 차지하는 문어발식 확장을 벌이고 있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항상 ‘을’이다 보니, 부당한 요구를 다 들어주어야 하고요.(···)
기억할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이러한 대기업의 비리와 횡포를 근절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 후 철두철미하게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폈죠. 단적인 예로 이명박 정부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대기업이 납품대금을 주지 않아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 사례를 삭제했어요. 당시 이 소식을 듣고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이러한 상황에서 건실한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한편 대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즐기고 있습니다. 성장은 계속되고 이윤도 급증하는데 그에 걸맞은 고용을 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 정부가 대기업을 ‘고용 있는 성장’ 쪽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시가총액 100대 그룹이 지난 5년간 1.5퍼센트밖에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매출 1조 2000억 원을 올린 NHN은 6000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SK텔레콤은 12조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직원은 4500명에 불과해요. 비율로 따지면 SK텔레콤의 직언 수는 6만 명 정도 돼야죠.
이명박 대통령이 청년실업에 대해 언급하면서 청년들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조언을 청년들에게 하려면, 대기업의 시장독점과 불공정거래를 막아 중소기업이 ‘괜찮은 직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말할 자격이 없죠.
대기업은 성장하고 있는데 신규 채용 수는 늘지 않는 것, 중소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정말 큰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 청년의 스펙은 사상 최고 수준이에요. 영어 능력, 컴퓨터 사용 능력, 국제적 안목과 경험, 문화·예능 감각은 저를 포함한 선배들의 청년 시절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도 ‘명함 내놓을 만한 직장’에 취업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 경력이라는 ‘취업 5종 경기’를 뛰느라 정신이 없죠. 115-116쪽.
미국의 ‘엔론Enron' 분식회계 사건에서 분식회계 규모는 우리 돈으로 약 1조 5000억 원에 달했는데, 이 회사의 대표이사에게는 징역 24년 4월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미국 법체제가 반기업적이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걸까요?기업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하고,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기업의 준법경영과 사회책임경영CRS,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요구하는 것이 ’반기업‘이라면,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 모두가 ’반기업‘ 정부일 겁니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에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으로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보고 있어요.(···)
가족기업 자체는 인정할 수 있어요. 기업 소유주가 자신이 키운 기업을 능력이 검증된 자녀에게 넘겨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겠죠. 물론 이는 기업주가 재산과 기업지배권을 자녀에게 넘기는 데 불법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삼성과 같은 재벌을 어떻게 개혁하는 것이 경제적 민주화의 취지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저는 현 시점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의 예를 참조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면 좋겠어요. 발렌베리는 6대째 약 150년 동안 세습경영을 하면서 일렉트로룩스, 엘릭슨, ABB, 사브, 스카니아 등 세계적 기업을 여럿 거느리고 있고, 총 시가총액이 스웨덴 주식시장의 40퍼센트를 넘습니다. 그리고 발렌베리 가문은 ’차등의결권‘을 통하여 자회사의 기업지배권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렌베리는 불법경영이나 불법상속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뿐 아니라 경영에 참가시킵니다. 스웨덴에서 대기업과 집권 사회민주당, 노동조합이 이렇게 ‘빅딜’을 한 겁니다. 세습경영 인정과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동시에 인정한 것이죠.(···)
스웨덴식 빅딜은 산업민주주의를 제도화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영권은 마치 불가침의 성역처럼 인식되고요. 노동자는 노동을 팔아서 임금을 받는 것일 뿐, 그 노동을 산 경영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는 개입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죠.(···)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표적인 기업인 BMW나 벤츠 등은 노조의 경영 참가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노조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있죠. 노동자의 단결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인데 말입니다. 노조가 경영에 참가하면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됨은 물론 최고 경영자의 독단을 막을 수 있어요. 예컨대,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 시계사업 진출 등은 다 실패했고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잖아요. 삼성자동차의 경우 어마어마한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는데도 이건희 회장은 까딱없잖아요.(···)
유럽 사회민주주의 나라의 경험에서 보듯이 노조의 경영 참가는 경영 자체에 도움을 줍니다.(···) 노조의 경영 참가가 인정되는 순간 한국 재벌의 고질적 병폐 중 상당수는 즉각 사라질 것이며, 노사분규도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봅니다. 120-123쪽.
기업 등의 경영권이 자본이나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있는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의 육성이 있습니다. 그 연원은 구소련형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하면서 독자의 길을 걸은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 사회주의 운동입니다. 아르헨티나에는 이러한 노동자자주관리 기업이 100개가 넘어요.
한국에서도 이미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부도가 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을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인수하여 경영하고 있는 인천의 키친아트, 청주의 우진교통, 대구의 달구벌교통과 국일여객, 진주의 삼성교통 등이 그 예입니다. 이 기업들은 주위의 우려를 불식하고 모범적인 경영모델을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키친아트의 건물 안에는 ‘공동소유 공동분배 공동책임’이라는 ‘급진적’ 사훈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이곳은 연간 700억 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해마다 영업이익 20억 원대를 유지하고 있죠. 124-125쪽.
오연호) “진보가 밥 먹여주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밥을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먹게 해준다”고 답해야겠습니다. 125쪽.
한국의 주택 문제는 손낙구 씨의 역작『부동산 계급사회』가 매우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양극화 중 자산의 양극화는 바로 주택 문제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토지 소유의 불평등과 직결되어 있고요. 평범한 시민이 일정 기간 자신의 노동으로 번 소득을 저축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사회는 비정상 사회 아닙니까?(···)
현재의 부동산 가격에 많은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에는 전문가들이 다 동의하고 있습니다. 건설업체 눈치 보지 말고 노무현 장권 때 포기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격을 떨어뜨려야 해요.
그리고 장기임대주책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한국에서 ‘시프트SHift'(장기전세주택)는 전체 주택량의 3퍼센트 남짓입니다. 싱가포르에서는 80퍼센트가 넘죠. 또한 아파트 재건축을 할 때 집값이 오른 만큼 세금을 더 부과하고, 재개발을 할 때 의무적으로 끼워 넣는 소형 아파트 비율을 더 높여야 합니다. 126-127쪽.
원가 공개를 하거나 ‘토지임대부 주택’을 지어서 분양하면 반값 아파트가 현실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기존 아파트 가격도 일정하게 하락할 것이고, 아파트 소유자는 반발하겠죠. 반대파 쪽에서 이 사람들을 부추길 겁니다. ‘막차’를 탄 사람들에게 채무상환기간을 연장하거나 금리를 낮추어준다거나 하는 보완조치가 필요하겠죠. 그러나 원가 공개를 하여 집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현재의 아파트 가격에는 ‘거품’이 너무 많아요. 이를 걷어내지 않으면 일본의 경우에서 드러나듯이 나라 경제 전체를 망칠 수 있습니다. 사회 전체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면 반값 아파트로 가야 합니다. 130쪽.
진보는 무능하지 않습니다. 지금 OECD 국가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동과 복지 정책은 다 진보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제도화한 겁니다.(···) 경제 영역에서 보수가 진보보다 유능하다는 생각이 퍼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저는 대중이 박정희 모델을 벗어난 경제모델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라고 봅니다. 그러니 복지에 대해서도 중산층 이상은 ‘내 세금 빼앗아 게으른 사람 주는 것 아닌가?’라고만 생각하는 거고요. 사회·경제적 민주화 모델, 복지국가 모델의 ‘맛’을 보면 달라집니다. 교육이건 일자리건 의료건, 내가 세금을 내면 그게 반드시 나와 내 자식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일상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진보, 유권자가 이 맛을 봐야 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진한 맛을 못 봤어요.
이런 점에서 <오마이뉴스>가 진행하고 있는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에 가다’ 시리즈는 상당히 좋은 기획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 옆을 보지 못하도록 시야가 가려진 채 마차를 끄는 말과 같은 상태거든요. 우리나라와 경제력이 비슷한 나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을 봐야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생각할 것 아닙니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 다른 전망이 있다는 것을 일단 알아야 합니다. 143-144쪽.
* 플랜3 교육: 청년들의 미래에 투자하라
대학입시 개혁은 지방대학 강화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으로 인재가 골고루 퍼지게 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실시해야 합니다. 지방대가 강해지면 서울 지역 명문대의 우월성이 약해지고, 따라서 졸업생들이 더 공정한 경쟁체제에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채용 정책이 특히 중요합니다. 최근 부산항만공사는 신규 채용에서 지방대 출신을 95퍼센트 이상 뽑았고, 문화콘텐츠진흥원은 지방대 출신을 100퍼센트 뽑았어요. 한국은행은 올해 정기 채용부터 신규 채용 인원의 20퍼센트를 지방대학 출신으로 뽑기로 결정했어요. 사기업은 강제할 수 없지만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지방대 출신을 우대하는 정책을 장기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채용 과정에 학벌주의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정연주 씨가 KBS 사장 시절 신입사원을 뽑을 때 졸업 대학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자 여러 대학 출신이 골고루 뽑혔죠. 이런 채용 제도가 안착되면 누구나 다 서울로 가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 ‘학력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해요. 민간기업의 고용이나 국가자격시험에서 학력차별을 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는 겁니다.(···) 두 번째 개혁은, 국립이건 사립이건, 서울이건 지방이건 ‘명문대’를 자부하는 대학들이 지역균형 선발제와 계층균형 선발제를 실시하는 것입니다. 미국 명문대가 오랫동안 실시하고 있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3)을 실시하자는 거죠. 이것은 대학이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사회통합을 선도해야 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현재 지방의 경우 여건이 서울에 비하여 미흡하므로 우수한 학생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펼치기가 어렵죠.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성적이 조금 모자라도 잠재력이 있는 지방 학생에게 우선권을 주는 거죠.(···)
연세대나 고려대의 경우는 지역균형 선발의 비율이 1퍼센트 이하입니다. 우리나라의 사림대학은 국가로부터 매년 대규모 예산 지원을 받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사립대학은 국가로부터 매년 대규모 예산 지원을 받고 있어요. 이는 바로 국민의 세금이 사립대 운영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거죠. 지방의 납세자는 자신의 세금이 들어가는 명문대에 지역균형 선발제의 채택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방 명문대의 경우에는 신입생의 대다수가 그 지역 출신이므로, 지역균형보다는 계층균형 선발을 해야겠죠. 이상의 두 가지만 이루어져도 대학 서열화나 입시경쟁이 상당히 완화되고, 사회통합도도 높아질 거라고 봅니다. 153-156쪽.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입양아로 자라나서 고교 졸업 후 미국 오리건 주의 작은 대학인 리드 칼리지Reed College를 1년 다니다가 중퇴했어요. 잡스가 한국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처럼 성공했을까요? 세계 최고의 광고상을 휩쓴 세계 광고계의 총아 이제석 씨는 대구에 있는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는데, 대학 시적 국내 대학생 공모전에 꾸준히 응모했지만 상을 하나도 못 탔어요. 졸업 후 수십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취업하지 못하고 동네에서 간판장이 일을 했죠.(···) 한국 사회는 그를 단지 지방대 졸업생으로 분류하고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능력에 의한 차별은 가능하지만 학벌에 의한 차별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157-158쪽.
오연수)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한 대학생에게 등록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1년에 10만 원 정도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도 대학 등록금이 상당히 낮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느끼는 불만의 핵심은 바로 비싼 등록금입니다.(···)
조국)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를 만들고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집권 후에는 이 공약을 철회했지만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고 난 후에는 이 정책 대신 ‘취업후 등록금 상환제’가 실시되고 있는데, 이 정책은 ‘등록금 상한제’와 결합되어 있지 않아서 졸업생은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빚쟁이로 전락할 겁니다.이명박 대통령은 “등록금이 싸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발언했고, 이기수 고려대 총장은 “교육의 질에 비해 대학 등록금이 아주 싼 편”이라고 말했죠. 도무지 동의하기 어려워요.(···)
1년에 대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 총액이 13조 원인데, 장학금 수혜자와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정부가 3~4조원의 예산을 지원하면 등록금을 절반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면서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을 단계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OECD 국가 평균 고등교육 예산이 GDP의 1.2퍼센트인 데 비해, 한국은 6조 원으로 GDP의 0.6퍼센트에 불과합니다. 한국 고등교육 경비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5퍼센트인데, OECD 국가 평균은 25퍼센트입니다. 한구그이 대학 교육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거죠.
이와 별도로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제시했던 방안도 고려할 만합니다. 즉, 사립대에 10만 원 이하의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깎아주고, 입대자들이 군에서 듣는 강좌를 학점으로 인정해 수업료 부담을 덜어준다는 등의 방안이에요.(···) 또는 2010년 4월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참조해야 합니다. 즉, 소득별 등록금 차등책정제를 대학 단위로 실시하는 것인데,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고소득층 학생에게는 등록금을 더 내게 하는 겁니다.
(···) 사립재단의 비리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립대학 운영은 등록금과 정부의 지원금으로 이루어지는데, 재단 비리가 많습니다. 전형적인 예는 학교 건물을 지으면서 돈을 빼돌리는 겁니다. 예컨대, 서류상으로는 100억 원에 짓는다면 실제로는 50억 원에 짓고, 50억 원은 재단 소유자의 비자금으로 남기는 거죠.(···) 아울러 대학이 부를 세습 통로로 쓰이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외국의 사립대학은 설립자나 그 가족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163-166쪽.
한국에서는 교사의 정치 참여가 금지되어 있지만, OECD 국가 대부분에서는 교사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을 인정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요. 그런데 이와 동시에 초·중·고등학교 현장에서 ‘참교육’의 전범(典範)이 되는 모델을 창출하고 전파하는 운동이 펼쳐졌으면 합니다. 교과과정 개편운동, 수업 내용 내실화 운동, 학생 인권 지키기 운동 등등. 물론 지금도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훨씬 더 비중이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176쪽.
* 플랜4 남북문제: 그래, 통일이 밥 먹여준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려고 북한에다 돈을 갖다 바쳤다는 정말 황당하고 저급한 비난도 있더군요. 먼저 북한붕괴론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부터 계속 나왔던 것인데, 이는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모르는 희망사항입니다.(···) 북한은 온갖 내부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나라(베트남, 아프가니스탄)와 비슷한 정도의 체제 유지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강력한 북한 군부, 그리고 ‘혈맹’ 중국의 존재가 핵심이죠. 요컨대, 북한붕괴론에 입각해서 대북정책을 펴다가는 비현실적 강경정책만 쏟아내거나, 아니면 아무 정책 없이 언제 올지 모르는 붕괴만을 마냥 기다리는, 정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정책에 머물게 됩니다. 그 결과는 북한의 중국으로의 경제적 편입, 즉 ‘동북4성화’일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북한을 남한 쪽에 묶어두려고 노력했는데, 이명박 정권은 대놓고 북한을 중국 쪽으로 쫓아 보내고 있어요.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이 남한에서 준 돈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 역시 이데올로기 공세입니다.(···) ‘햇볕정책’ 10년 동안 남북관계 개선과 안보불안 저하에 들어간 돈은 현대아산이 쓴 돈까지 합해서 약 37억 3000달러, 즉 3조 7000억 원이고, 그중 현금은 현대가 준 사업 선수금과 금강산 관광대가, 개성공단 노동 대가를 다 합해서 약 10억 달러, 즉 1조 원입니다. 그런데 2009년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18발, ‘광명서 2호’, 그리고 핵실험 등의 비용이 약 9~10억 달러입니다. 북한은 ‘햇볕정책’ 이전인 1993년 5월과 1988년 8월에도 중거리미사일을 쏘았고, 2005년 이후에도 매년 몇 발씩 쏘았어요.(···) 북한은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 수출 등으로 별도의 돈을 축적해왔습니다.(···) 저는 한반도는 반드시 ‘비핵화’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북한 핵실험에 분명히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북한 핵실험이 햇볕정책 탓이라는 비판은 근거와 인과관계가 결여된 주장이에요.(···)
[햇볕정책을 통한] 남북교류와 경협은 긴장을 완화시켜 전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은 휴전선을 동서에서 북쪽 편으로 각각 밀어 올렸죠. 남측은 지난 10년간 전쟁 위험 없이 안정적 경제발전을 이루었어요. 남북이 서로 적대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수반되는 비용이 현격이 줄어들었으니까요. 사실 남측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개성공단은 ‘수지맞는 장사’였죠.
그리고 ‘햇볕정책’은 통일비용을 줄이는 선(先)투자입니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가 웬만한 수준으로 올라가도록 돕는 것이 결국 남북 모두를 돕는 길이 됩니다.(···) 30년간 총액으로 계산하면 급진적 통일에는 총 2조 1400억 달러, 점진적 통일에는 3220억 달러가 드니, 전자가 약 일곱 배의 비용이 더 드는 겁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퍼주기’를 더 해서 북한의 ‘개방’을 도와야 해요. 돈을 줘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사야죠. 지금 주는 돈은 이후의 통일비용을 생각한다면 결코 많은 게 아닙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추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난생 처음 초코파이를 맛보았을 것 아닙니까.그러니 맛있을 수밖에요. 그래서 노동자들은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챙겨뒀다가 주말에 집에 갈 때 가져가서 가족들에게 주었습니다. 이후 초코파이가 북한 주민 사이에 최고의 선물용품이 되어 노동자들이 순번을 정해 각기 받은 몫을 몰아주는 ‘초코파이 계’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런 ‘초코파이 현상’이야말로 ‘햇볕정책’이 이루어낸 진정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자본과 북의 노동력이 초코파이를 계기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차츰차츰 신뢰를 쌓아나가면서 서로의 장점을 알게 되는 것 말입니다. 저는 개성공단 같은 것들이 북한 지역에 대여섯 개만 더 만들어지면, 남북의 이념 대립도 흐물흐물해 질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남북의 존재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해요. 북한 사회의 존속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만들고, 남한의 경제발전을 위해 북한이라는 시장과 인력이 반드시 필요하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야 ‘평화협정’ 체제도, 통일도 빨리 오겠죠. 185-190쪽.
진보·개혁 진영은 남쪽의 수구·보수 진영, 북쪽의 권력층과는 다른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6·15 선언’을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멸공통일식의 ‘반북(反北)’도, 주체사상파식의 ‘종북(從北)’도 틀린 노선이라고 생각하며, 북한 체제의 억압성을 비판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평화공존과 교류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교류의 끈을 놓지 않는 ‘비북(批北)·연북(蓮北)’노선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197쪽.
항상 민생민주의 문제에 중심을 두면서 통일 문제를 배치해야 합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진보·개혁 진영의 노선은 ‘민족해방’도 ‘민중민주PD’도 아닌 ‘민생민주’로 변화해야 해요. 통일 문제의 제기는 남한 대중의 삶을 중심으로, 그리고 그것과 연결시켜서 해야만 의미와 효과가 있습니다. ‘통일이 밥 먹여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라는 것입니다. 200-202쪽.
지금 필요한 것은 한미동맹의 ‘파기’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평등화’라고 봅니다. 독일과 일본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한미 관계를 독미, 일미 관계 수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5쪽.
이명박 대통령은 콜 총리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6·15 선언이라는 프로젝트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분단된 남과 북이 차근차근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입니다. 219쪽.
분단은 남북 양쪽에서 민생과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주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아니 그 이전에 평화체제만 이루어져도 남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생깁니다. 당장 ‘한반도 리스크’가 사라지죠. 두 체제 간의 경쟁비용도 사라지고요.
예를 들어서 매년 쓰이는 국방비가 어마어마하잖아요. 톨일 이전에 적대 상태만 해소되어도 그 비용을 다른 데 쓸 수 있는 겁니다.(···) 비행기나 미사일 등 무기를 만들고 사는 데 쓰는 예산을 줄이거나 장군 수를 줄이기만 해도 복지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거예요. 210쪽.
‘6·15 선언’은 ‘연방제’ 또는 ‘단일국가’ 방식으로 통일하기 전에 ‘국가연합’ 방식의 통일을 먼저 하자는 것이죠. 국가연합에서 남북은 현재의 독립국가의 권한, 즉 내정, 외교, 국방의 권한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그리고 남북이 합의하여 구성한 연합기구는 평화공존과 평화교류를 실현하면서, 외교와 국방의 권한이 연방정부에 주어지는 연방제로의 전환을 준비합니다. 국가연합 아래에서 남과 북은 상대 정치체제에 대한 간섭권이 없고요. 북한이 어떤 체제를 택할 것인가는 북한 인민에게 맡기는 거죠.
이를 전제로 하면서, 북한은 ‘중국 모델’보다는 ‘베트남 모델’을 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에게 미국은 ‘원수’였지만 지금은 급속히 관계가 개선되고 있죠. 그리고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면서 ‘도이모이’, 즉 ‘쇄신’을 추구하고 있고요. 북한이 베트남 모델을 취하여 상당 기간 내부개혁을 이루고 동시에 남과 북 사이에 대규모 교류와 협력이 진행되면, 통일비용은 획기적으로 줄고 남북 사람에게 통일의 충격도 덜할 것이라고 봅니다. 211-213쪽.
진보·개혁 진영이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한국은 ‘통상국가’라는 점입니다. 한국은 현재 10대 무역대국입니다. 한국 경제는 내수시장만으로 유지될 수 없고, 통상이 있어야만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네덜란드와 비슷하죠.(···) 진보·개혁 진영이 집중해야 할 것은, 세계화 속에서 투기자본이 먹고 튀는 것을 막고,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같은 조항이 나라의 주권을 훼손하는 것을 봉쇄하며, 개방의 이름 아래 교육, 의료, 복지 등에서 공공성이 침해되는 것을 막고, 농업 등 취약산업을 보호하고 혁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합의된 한·미 FTA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자자-국가소송제’의 경우, 우리정부가 외국 자본에 불리한 사회·경제 정책을 추진하면 외국 자본이 소송을 통해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에 특히 염려가 됩니다.(···) 이 밖에도(···) 미국의 모든 서비스 상품을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조항(네거티브 리스트), 개방을 하면 이후 문제가 있더라도 되돌릴 수 없는 ‘역진방지’ 조항 등이 그렇습니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책실장인 이정우 교수도 최근 “한·미 FTA를 통하여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 당시에는 금융, 컨설팅, 보험, 회계 등에서 일자리 창출의 희망을 찾았는데 지나고 보니 신기루였던 것 같다”고 평가하시더군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멕시코에서는 농업이 붕괴하고 고용불안, 빈부격차 문제가 심각해졌잖아요. 우리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와 별도로 FTA 자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물론 앞에서 언급한 보호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테니, 보호장치의 마련이 매우 중요하죠. 이 점에서 저는 FTA에 대하여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FTA 자체의 찬반이 아니라 그 범위, 조건, 시기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유럽과 일본은 자국의 농민을 보호하고 ‘식량주권’을 지키면서 개방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필리핀은 개방을 잘못한 대표적인 경우죠. 필리핀은 원래 쌀 수출 국가였어요. 그런데 개방을 잘못하면서 필리핀의 농업이 몰락하고, 지금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럽과 일본의 모델로 가야 합니다.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농업을 포기하는 것은 ‘식량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이죠. 한국은 현제 세계 5위 곡물수입국이고 식량자급률이 25퍼센트 정도에 불과해요.(···) 당장은 한국 쌀보다 싼 미국 쌀을 사 먹을 수 있겠지만, 한국 농업이 무너진 후 미국 쌀 생산·수출업자가 쌀 가격을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은 바로 심각한 식량위기에 처합니다.(···) FTA 자체가 ‘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농업을 포기하는 개방은 곤란합니다. 213-218쪽.
대한민국 0.01퍼센트를 위한 제도라는 비난이 있겠지만, 세계화 시대에 고급 인력의 유출을 막고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군대 가는 것을 전제로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원정출산’을 통한 이중국적 취득은 금지해야 하고, 이중국적자가 대학 특례입학을 하거나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의료보험 혜택은 챙기는 얌체 짓은 봉쇄해야 하며, 공무원이 되는 것도 당연히 막아야죠. 219쪽.
우리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를 계약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으로 보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 경제는 이들의 노동력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습니다. 특히 ‘3D dirt, dangerous, difficult 업종’이나 중소제조업 분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절대 공장이 굴러가지 않아요.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말도 할 줄 알게 되고, 한국 문화도 알게 되고, 업무도 숙련된 수준이 될 쯤이면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고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죠.(···) 저는 한국이 이민국가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앞에서 현재의 저출산율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여럿 말했는데, 이러한 개선이 빨리 이루어지지는 못할 겁니다. 사회적 활력과 에너지가 떨어지면 나라의 운명도 위태롭죠. 법무부 산하에 이민청을 신설하고 이민국가로 나아갈 비전과 정책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중국, 러시아 등에 있는 동포에게 문을 열어야죠.(···) 다문화를 이해하자는 캠페인을 넘어 이민국가에 대한 전망과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220-221쪽.
* 플랜5 권력: ‘괴물’ 검찰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오연호)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했을 때 추진해야 할 검찰 개혁의 핵심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무엇입니까?
조국)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고비처)를 신설하는 것이고, 둘째는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을 하는 것입니다.(···) 고비처 신설은 검찰 조직 개혁이라는 차원 외에 권력형 부패·범죄를 더욱 단호하게 수사한다는 목적이 있어요. 지금까지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항상 정치적 편향성과 공정성이 문제가 되었죠.
오현호) 고비처를 설립해서 검찰이 독점하는 기소권을 분할하고, 수사권은 결찰과 나눠 갖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조국) 맞습니다.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면 수사와 공소 각각에서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검찰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죠. 특히 검찰 내부의 범죄는 고비처가 담당하여 수사하고 기소하니까 검찰 내부의 비리가 대폭 줄어들겠죠.(···)
국무총리, 장관, 도지사, 시장, 법관, 검사 등 공직자윤리법이 규정하는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고비처가 하는 거죠. 그런데 이 법 제정에 대해 검찰은 자신들의 큰 권한이 사라질 테니 결사반대했어요.(···) 국회의원들은 다른 이유에서 고비처 신설을 꺼렸어요. 공직자윤리법의 적용 대상에 국회의원이 들어가니 고비처의 수사 대상도 되거든요. 고비처는 검찰보다 훨씬 강하게 반부패수사를 할 것으로 예상되니까 마뜩잖았던 거죠.(···)
검찰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조직입니다. 따라서 검찰 개혁의 핵심은 그 힘을 분산시키는 데 있어요. 고비처는 다른 말로 하면 ‘상설적 특별검사’입니다. 지금까지는 사안별로 검찰 수사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국회가 사후적으로 특별검사법을 만들어왔는데, 이 경우는 특별검사가 뒤늦게 사건 수사에 뛰어드는 것이기 때문에 수사성과가 잘 나오기는 힘들어요. 특별검사가 항상 존재하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고비처 신설입니다.(···) 이 조직을 잘 활용하면 권력형 부패·범죄가 줄어들기 때문에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어요.
남은 문제는 고비처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고비처장을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하여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그 사람을 대통령에게 임명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고비처장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리고 고비처장은 임기를 보장하되, 그 임기가 두 정권에 걸쳐 있도록 설계하는 방법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고비처를 만들면, 어느 정권이 들어서건 고위공직자들이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240-243쪽.
‘코드 인사’는 나쁜 게 아닙니다. 정권을 잡았으면 자신의 정책을 펼치기 위해 소신과 배짱이 맞는 사람끼리 호흡과 손발을 맞추는 것이 당연합니다.(···) 참여정부 당시 코드 인사라는 말이 나돈 것은 조·중·동의 프레임이 먹힌 겁니다. 그런데 조·중·동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는 코드인사라고 비난하지 않죠. 자기가 하면 코드 인사가 아니고, 반대파가 하면 코드 인사라고 비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파적 비난이에요.
저는 이명박 정부가 코드 인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코드 인사를 하더라도 법과 상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법상 임기가 보장되어 있는 단체장을 억지로 밀어내는 것은 저급한 일이죠(···) 그리고 특정 학교, 종교, 지역을 기준으로 삼는 ‘고소영’ 인사는 문제가 있죠. 251-252쪽.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은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루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 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253-254쪽.
* 플랜6 사람: 잔치는 다시 시작이다
범야권의 6·2 지방선거 대책이었던 ‘반MB 연대’에서 진보신당은 가장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차별성도 드러내지 못했고, 실속도 챙기지 못했어요.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관되게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의 길을 걸어온 인물들입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개인의 정책 역량과 전투력 역시 발군이었죠.(···) 한국 정치지형과 과잉우편향을 교정하고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루려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같은 진보정치 세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원내 20석을 확보하여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로 커져야 시장권력, 경제권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어요. 사실 현재 정치인 중 노회찬, 심상정만큼 삼성과 대놓고 싸운 사람이 있나요? ‘삼성왕국의 게릴라’ 역할을 하며 정말 고군분투 싸웠잖아요. 이들은 ‘진보의 파수꾼’이란 칭호를 들을 자격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나눠져 있으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두 정당 사이에 노선 차이도 있고 감정대립도 있음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진보신당의 지도자인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당을 진보대통합의 길로 이끌어 가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할 때 보여준 ‘선도탈당파’의 문제의식에 공감 가는 점이 없진 않지만, 진보신당이 ‘선도탈당파’의 당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보신당은 ‘반MB 연대’ 그 자체가 전부가 아니라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MB를 넘는 비전과 대안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선거연대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패착이었어요.(···) 진보신당이 대중민주주의의 작동원리를 직시하면서 다른 정파와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랍니다. 286-287쪽.
저는 대학 다닐 때 나경원이 정치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두환의 철권통치가 이루어지던 1980년대 전반기,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범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할 때 ‘보수의 꽃’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가 중평이었는데,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경원은 과거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BBK 동영상으로 문제가 되었을 때, “주어(主語)가 없다”고 말하여 이 후보를 옹호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 당의 후보라고 하더라도 이는 견강부회식 옹호 아닙니까? 판사 출신이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대폭제한하는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앞장서서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법률가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죠. 탤런트 최진실 자살 사건이 명분이 되었지만, 그 속은 이명박 대통령이나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처벌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씨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되자, 나경원은 “언론계 경험이 풍부한 인사”라고 칭찬했죠.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동구 씨를 KBS 사장에 임명할 때 한나라당은 뭐라고 했죠? 서 씨가 노무현 대선캠프의 언론고문이었으므로 공영방송의 사장이 도리 수 없다고 맹공을 가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나경원이 보수정치인으로 더 커가려면 ‘얼짱 경원’이 아니라 콘텐츠와 일관성을 갖춘 ‘주어 있는 경원’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291-292쪽.
김문수는 대기업 우선, 수도권 우선, 4대강 지지 정책, 대북강경노선 등을 고수하고 있죠. 과거 그가 진보정치운동과 노동운동의 지도자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철두철미 ‘서민풍’을 유지하고 있어요. 골프도 전혀 치지 않고 2008년부터 주말마다 택시를 운전하며 도민들의 의견을 청취했어요.(···) 그의 동지이자 멘토인 이재오도 보세요.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얼마나 몸을 낮춥니까. 이 점만큼은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인, 활동가들이 배워야 합니다. 대중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대중의 말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대중과 찰싹 밀착해서 말입니다. 294쪽.
* 에필로그: 진보의 고속도로를 만들자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인 2008년 서울시 교육청에서 조갑제, 류근일, 유석춘 등으로 ‘극우 드림팀’을 만들어 고등학교를 돌면서 현대사 특강을 했어요.(···) 요약하자면, 고등학생에게 “너희들, 역사니 이념이니 이런 것에 신경 쓰지 마라, 이런 거 해봤자 너희들 직업 가지고 사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황당하고 섬뜩하던지······.
이제 역으로 386세대가 20대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들과 연합하여 진보·개혁 진영을 두텁게 만들어야 해요. 386은 등록금, 취업 등 20대가 당면하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고 같은 제도적 해결을 모색해야 합니다.(···) 진보·개혁 진영 정치인이나 활동가의 상당수는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의 ‘엄숙주의’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조직이 결정하면 나는 몸을 던진다’는 식의 사고가 강해서 개인의 개성과 고민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어요. 그 결과 촛불 세대의 유쾌함, 발랄함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거북해하기까지 합니다.(···) 운동권 출신들은 투사, 지사, 선비 이런 모습을 지향하며 살았어요. 이것이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런 모습만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촛불 세대의 감수성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운동권’의 문화와 많이 다릅니다. 305-307쪽.
정권 빼앗긴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에 분개하면서 “저 나쁜 놈들!”이라고 울분을 토하는 데 그쳐서는 의미가 없어요.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는 다시 권력을 잡더라도 5년 뒤에 다시 망할 수 있어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정치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할 것인지 사전에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집권 1년차에는 무엇을 할지, 2년차에는 무엇을 할지, 그런 식의 5개년 계획을 가지고 있다가 바로 전광석화처럼 실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초기 1~2년 내에 진보를 위한 ‘제도적 말뚝’을 박아야 합니다.(···) 이를 통하여 사회의 판을 바꾸고 지지계층을 결집시켜야죠. ‘제도적 말뚝’의 수혜로 대중이 ‘진보의 맛’을 보게 되면, 그 ‘말뚝’을 뽑기 어려워집니다. 312-313쪽.
* 오연호의 이야기_조국을 찜하다
내가 조국 교수와 7개월의 긴 대화를 즐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긍정적 사고 덕분이었다. 그는 촛불 시민의 힘을 믿었다. 분단사회를 규정하는 힘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시민의 힘을 믿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한계를 분명하게 지적하면서도 왜 그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애정을 가지고 조명했다. 두 민주정권의 한계만을 난도질하듯 냉소적으로 지적하면서 자기는 그 책임과 무관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온 일부 진보 정치인이나 교수들과는 달랐다. 그는 진보·개혁 진행의 과거의 한계에 자신의 한계를 포함시켰고, 그래서 자신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다시 불꽃을 태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의 실천’을 강조했다. 323쪽.
'정치혁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 관련> (오마이뉴스, 2011.9.5) (0) | 2011.09.05 |
---|---|
[인터뷰]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 <삼성 X파일은 19금,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결> (2011.8.30) (0) | 2011.08.31 |
[밑줄] 박상훈,『정치의 발견』 (0) | 2011.08.08 |
[밑줄] 아마미야 카린+우석훈,『성난서울』 (0) | 2011.06.25 |
[밑줄] 조지 레이코프,『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0) | 201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