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김연수,『세계의 끝 여자친구』
“며칠 전에 구청의 노점상 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노점상 한 명이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노점상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바람에 성산대교 부근에서부터 강변북로가 막혔는데, 다들 아십니까?”
앉아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맞아요. 세 시간 동안. 정말 속상했었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혀 몰랐다. 67쪽.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1쪽.
나는 엄마 덕분에 삶과 죽음 사이에는 고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고통. 엄마가 죽던 그 순간까지 나는 정신을 잃은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며 침이 마르도록 사랑하나다고 말했으나,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엄마의 고통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보다는 죽음이 더 이해하기 쉬운 모양인지, 막상 엄마가 숨을 거둔 뒤에는 그간 병상에 누워 있던 엄마와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고통은 분명히 엄마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지만, 죽음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177쪽.
그 노을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가 본 것과 같은 노을을 볼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남편도, 아이도, 오빠도, 여동생도. 끝내 그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낸 내게 그 사실은 얼마나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위안이라고는 말했지만, 그건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순간들, 예컨대 엄마의 죽음과 같은 특정한 순간들을 그 상태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체념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런 탓에 누군가 내가 본 것과 같은 노을을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온 존재가 떨릴 만큼 놀라운 일이었다. 그 사진들은 내게 “쉽게 위안받을 생각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180쪽.
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 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 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 198쪽.
제아무리 인생을 깊이 들여다본다고 해도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불가항력적인 우연의 연속이다. 221쪽.
결국 인생이란 리 선생의 공책들처럼 단 한 번 씌어지는 게 아니라 매순간 고쳐지는 것, 그러니까 인생을 논리적으로 회고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으로 예견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러나 원칙이 있다네.”(···) “그건 바로 평생 그녀를 사랑했다는 점이지.” 224쪽.
* 작가의 말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하지만 쉽게 위로하지 않으면서 쉽게 절망하지 않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건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 때문이다.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피어오른, 하지만 바깥의 불꽃이 없었다면 애당초 타오르지 않았을, 그런 따뜻한 불꽃.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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