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

[독서감상] 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두괴즐 2011. 6. 6. 22:48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저자
장하준 지음
출판사
부키 | 2010-11-08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전문 지식 없이도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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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 장하준,『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세상에! 자유 시장주의의 절대적 우월성이 뻥이었다니!



 매번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나날이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그러니깐 조·중·동이 ‘경제적 무능’을 외치며 그렇게나 까대던 노무현 정부조차도 그 어떤 국가 남부럽지 않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었는데도-성장률은 그러거나 말거나, 서민들은 절망의 거리로 내몰리고 있었다. 왜일까? 경제가 성장했다는 말은, 그만큼 국가가 부유해졌다는 말이 아니던가?


 ‘양극화’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신자유주의’가 배설한 숭고한 대상이라고 했다. 그러니깐 ‘양극화’자체는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대승적으로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전지구화 시대였고,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자본의 자유를 막는 순간 국가는 파산이 된다는 것이었다. IMF 세대인 나에게 그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이던가! 자본은 의심의 여지없이 너무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양극화’는 ‘악’이라기 보단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러니깐 비정규직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부자감세, 기업감세는 바람직한 것이었으며, 내가 88만원 세대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게을러서 명문대에 가지 못한’, 그러니깐 명문대에 간 친구들이 3시간 10분만의 잠을 자고 문제집에 코피를 젖힐 때 무려 4시간 반이나 쳐 자며 문제집에 침을 흘리던 나의 게으름 탓이었던 것이다. 게으른 루저인 나는 88만원도 감사해야 하고 더 허리띠를 졸라매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기업의 이윤과 경쟁력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받쳐 자발적 착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자에게, 국가대표 기업에게 더 많은 돈을 몰아주어, 그들의 파이가 더욱더 커져 언젠가 내게도 한 조각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길이었다. 21세기는 “안녕하세요, 전지구적 시대입니다” 였고 “어라? 어라? 내 자유를 방해하는 거냐? 나 딴 나라로 가버린다? 친구들한테도 여기 물 안 좋다고 말해줘?”라고 하면 그나마 있는 ‘88만원’조차도 빼앗기기 때문에 “자본님, 죄송합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하며 연신 굽신굽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건희 아저씨가 10조를 빼돌려도 우리는 의심 없이 그분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했다. 그분의 호통 앞에 고개를 숙이고 경청하며 죄를 뉘우쳐야 했다. 왜냐하면 그분은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신 대자본의 사제이시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타령을 하는 야당, 특히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대한민국을 망국으로 가게 할 주동자들이었다. 숙청해야 할 빨갱이들이었다. 노회찬과 심상정은 감히 삼성(이건희)의 비리를 파헤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야말로 너무나도 낯뜨거운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다가 자본이 다 빠져나가 나라가 망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다! 대(大)를 위해 사소한 범죄들(그러니깐 세금을 안내고, 국민들의 보험금을 떼어먹고, 불법상속을 하고, 사법부, 행정부, 집행부의 주요 권력자들에게 돈을 먹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노조를 만들려는 노동자들을 자르고 광고자본을 가지고 언론 조작을 유도하는 등)은 눈감아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경제성장을 했음에도 나와 나의 친구들, 그러니깐 서민들이 불안과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들어왔고 배워왔고 믿어왔다. 양극화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무한경쟁이 자본주의의 동력 그 자체이라고, 복지는 나라 망하게 하는 짓이라고-소련이나 북한 꼴 나지 않으려면 이를 의심 없이 믿고 맘몬의 신앙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믿어왔는데, 장하준은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이야기 해왔다. 장하준은 자유 시장 지상주의는 “허상”이라고 단언했다(“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신자유주의’는 ‘양극화’를 대승적으로도 해결할 수 없고, 끊임없이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아! 나의 파이조각!).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금융의 무한 자유는 경제성장을 보장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부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여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큰 정부는 경제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 왔다. 부자들은 부를 창출하려는 의욕을 잃고,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유혹이 강해진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작은 정부가 성장에 이롭다면 그런 정부를 가진 상당수의 개발도상국들은 잘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거대한 복지 국가와 높은 경제 성장률이 공존하고 있는데(복지 국가가 경제 성장을 촉진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이는 작은 정부가 항상 성장에 이롭다는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잘 드러내 주는 예들이다. 338쪽.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진 것을 보았다. 부자에게 돈을 몰아주는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강하게 휘청였다. 아직도 그 후유증이 심각한 형편이다. 금융 천국이었던 두바이는 그야말로 망했다. 자본이 가장 자유로웠던 국가들이 가장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훨씬 튼튼한 힘을 보여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과 높은 복지 수준으로 악명(?) 높은 이곳의 국가들이 말이다. 자본의 무한 자유가 심각한 양극화의 원인이고 또 해소도 못해주는 것이라면, 게다가 더 심각하게는 경제 성장도 못시켜주는 것이라면 나는 도무지 이것을 지지할 필요가 없다. 자발적 착취의 대상이 될 필요도 없고, 폭력을 일삼는 자본과 불법을 일삼는 재벌을 숭고한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상위 1퍼센트의 부자가 아니며, 지구와 인간들의 파괴를 즐기는 악당 외계인도 아니다.


 장하준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자유 시장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서 눈을 떠”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부가 가진 한계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지금까지 고안된 제도 중에서는 민주주의 정부가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상충된 요구들을 조정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사회 전체적으로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 가장 우수한 장치”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정부는 풍요롭고 평등하며 안정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듣고 들어서 믿을 수밖에 없게끔 느껴지는 ‘자유 시장주의’의 방법론이 허상임을 알게 되어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왜 자본이 자유로운 국가가 더 치명상을 입고, 복지국가가 더 잘 버텼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소간 해소되었다. 그것은 ‘자유 시장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서 눈을 뜨기만 하면 아주 당연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양극화’가 문제임에도 ‘부자에게 돈을 더 몰아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짓말임을 너무나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말로는 친서민이지만 행동은 한결같은 친부자인 이명박 정부의 집권 시기 때 왜 장하준의 책이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혔는지를 알게 되었다. 장하준은 부당하게 부를 축적하고 서민들을 착취하는 자들, 부자 국가들, 기업들의 거짓말을 논증을 통해 증명해냈다.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살펴야만 한다. 우리는 오히려 자본을 통제하여 더 역동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실패한 국가를 쫓는 어리석은 짓을 멈춰야 한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유통하는 이데올로기를 부수고, 서민이 잘 사는 행복한 국민의 나라-대한민국이 되기 위해 나가야 한다. 금융과 자본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게끔 하고, 복지국가를 지향(그러한 정당을 지지하고)하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비롯한 ‘복지’와 ‘규제’에 강한 국가로부터 배우고, 우리나라에 맞게 변형해서 이식해야 한다.


 나는 이제 ‘삼성’교에서 받은 세례명을 폐기할 것이고, 빨갱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욕설이 아닌, 좌파의 진짜 소리를 들어볼 것이다. 패배주의적이고, 체념적이었던 나와도 안녕을 고하고, 이제는 희망을 가지고 작은 손을 들어 보겠다. 이젠 ‘내가 말해야 하는 23가지’를 위해 노력하겠다. 상위 1퍼센트와 하위 1퍼센트가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그 날을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