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

[독서감상]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두괴즐 2011. 6. 6. 22:42


삼성을 생각한다(교보문고 30주년 기념 특별도서 양장본)

저자
김용철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0-08-26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 교보문고 30주년 기념 특별도서로 제작된 양장본입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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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 나 역시도 반(反)부패시민혁명을 꿈꾼다.



 나는 부산출신이지만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삼성라이온스 팬이었다. 그래서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막연하게 동경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의 대표선수로 세계를 호령하는 삼성을 보며 자부심을 가졌다. 삼성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또 하나의 가족 삼성”(광고CF). 큰 집의 사촌형이 무수히 많은 경쟁자를 꺾고 삼성 애니콜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 나 역시도 집안의 경사라 여기며 기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형은 5년을 채우지 못한 채 회사를 나왔다. 퇴근을 용납하지 않는 경쟁 시스템 속에서 머리를 함껏 뜯긴 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린 아들을 안으러 퇴사해버렸다. 높은 연봉을 차버리고 공무원이 된 형은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나도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해가면서 ‘삼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마냥 멋지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갔다. 삼성은 불법 비자금, 노조불사, 정경유착 등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리 없는 기업이 어디 있으며, 삼성이 쓰러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진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데 이건희가 돈 좀 쓰면 어떠냐?"라는 사람들의 말 앞에 고개를 끄덕이며 ‘뭐, 현실은 그렇지.’라고 체념하곤 했다. 그런데 김용철이라는 사람이 등장해 내부 고발을 해버렸다. 삼성의 허상과 실상을 노골적으로 까발렸다. ‘그래도 삼성’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전혀 그렇지 않은 삼성’을 선언했다. 나는 나의 순진함에 몸서리를 쳤고, 여전히 허상의 굴레에 있거나 체념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다시 삼성을 이야기 해보고 싶어졌다. 삼성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뒤틀려 있었다. 그리고 그 뒤틀림 자체가 대한민국이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둘러싼 주요언론들의 태도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같았다. "아무 책이나 광고할 순 없지 않느냐"며 버럭한 <조선일보>. "누굴 잡으려고 이러느냐"며 흥분해서 화를 내는 <중앙일보>. 그저 "미안하다"고만 하는 <매일경제>. 뜬금없이 "단가가 맞지 않다"는 <동아일보>. 반응은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삼성에 해가 되는 광고는 실을 수 없다는 거였다.(『삼성을 생각한다』2, 49~50쪽) 삼성은 그저 하나의 회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언론조차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절대권력이 되버렸다. 흔히 언론은 시대의 양심을 발언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삼성의 광고를 싣지 못하면 휘청이게 되는 것이 오늘날 신문사의 현실이다. 삼성에게 광고비를 받아  먹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신문사들이 과연 삼성의 그림자에 대해 소신껏 발언할 수 있겠는가? 입법·사법·행정의 삼권이 삼성에 휘둘릴 때, 언론조차도 이미 포섭되어 있다면 국민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재벌의 비리를 공개해 봤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했다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p.447(강조는 인용자)

 

 김용철은 “역시나”일지라도 계속 양심의 발언이 지속되기를 요청한다. 그는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 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설령 권력이 양심고백한 내용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이런 이들이 늘어나면, 권력이 비리를 덮어버리는 데도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김용철은 “나는 모든 시민이 부패에 맞서는 장면을 꿈꾼다. 반(反)부패시민혁명에 관한 염원이다”라고 말한다.


 김용철은 이 책을 통해 삼성의 갱신을 요구하는 것이지 삼성의 종말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 3부의 타이틀 자체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이다. 이 책에 대한 주요 공격 중 하나가 삼성을 파괴하려는 김용철이라는 허상 만들기인데, 실상 이 책은 삼성을 파괴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비리 없는 기업이 어디 있으며, 삼성이 쓰러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진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데 이건희가 돈 좀 쓰면 어떠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김용철은 철저히 해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관념이 얼마나 헛되고 또 위험한 생각인지를 일깨운다. 삼성은 우리를 먹여 살린다기 보다는 오히려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파괴당해 가면서도 그저 삼성을 사랑한다. 바로 무지하기 때문이다. 삼성과 나의 관계, 삼성과 대한민국의 관계가 진실이란 토대 위에서 다시 세워져야 한다. 그래야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살 수가 있다. 이 책은 그 길의 시발점이 될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김용철은 이건희와 같은 큰 비리만 책망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비리 역시 큰 문제고, 어쩌면 그러한 작은 비리의 용인이 큰 비리를 막지 못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비리와 눈감음의 일상화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한다. 우리는 거대한 삼성의 비리 앞에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김용철의 처절한 양심선언은 막강한 권력에 의해 짓밟혀졌다. 하지만 이미 그 자체로 반(反)부패시민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생각이다. 김용철의 선언이 없었다면 난 여전히 순진하게 삼성을 사랑하며, 애국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허상을 치워내고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반(反)부패시민혁명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의 시작은 이것이다. 삼성의 그림자를 소상히 밝힌 이 책이 많은 독자를 만나게끔 하는 것. 그리고 그 독자들과 더불어 ‘삼성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양심적 지식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삼성’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글을 쓴 책이 나왔다. ‘이건희, 그리고 죽은 정의의 사회와 작별하기’라는 부제가 달린 『굿바이, 삼성』이 그것이다. 나는 이제 이 책을 보러 가도록 하겠다. 당신도 함께 보고 같이 이야기해 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