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

[독서감상]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두괴즐 2011. 6. 6. 22:41


엄마를 부탁해

저자
신경숙 지음
출판사
창비 | 2008-1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여자로서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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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엄마를 부탁해』

- 이제 ‘엄마를 부탁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의 부재를 가장 절감했던 때는 군시절이었다. 사실 나 뿐만 아니라 군을 다녀온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럴 것이다. 혹독한 훈련 속에 있노라면 정말 엄마 생각이 난다. 훈련을 가장한 극단적 가혹행위인 유격훈련 중 전투력 증강에 도무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PT체조를 하다보면 조교에 대한 극렬한 공격욕이 생긴다. 간사한 조교는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에 극단적 폭력정신의 오기만이 남은 병사들에게 이 노래를 부르게 한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온갖 분노와 폭력성으로 가득차 있던 훈련장은 폭풍감동의 장이 된다(으허엉~ 엄마~~).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리면서, 엄마를 잊고 있었다는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즉, 엄마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잃어버리게 되었지만, 실은 이미 아주 예전부터 엄마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자식은 이길 수 없는 사랑의 정도 때문에 엄마에 대한 부채를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등을 돌릴 수 있게 하는 건 일상의 습관 때문이다. ‘엄마는 엄마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자식으로 하여금 부채감을 덜어준다. 이 생각은 일상에서 만나는 엄마를 향한 습관의 누적에 의한 것이다. 돌이켜 보자. 효도가 힘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건 습관이 누적되어 형성된 일상 때문이었다. 우리는 모두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엄마의 깊은 사랑을 잘 안다. 하지만 우리의 효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군에 있으면서 효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엄마가 기대하고 계시는 교수라는 직업을 내가 갖게 된다면 그것이 효가 될까? 물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라는 목표가 생기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엄마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효란 무엇일까? 나는 엄마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교수가 되었어도 불행하게 산다면 그것은 효가 될 수 있을까? 자식을 교수로 키웠다는 칭찬이 엄마를 뿌듯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식의 불행을 행복으로 느끼는 엄마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산책을 나가게 하는 그 일상이 효가 아닌가 한다. 효도란 내일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 지금에 있다. 물론 엄마와 산책을 나가지 않던 나는 그 일이 어색하고 민망하다.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일상의 습관을 바꾸는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엄마를 외롭게 내버려 두는 것, 그 보다 더한 불효가 있을까.

 

 다음으로 연기한 효도의 그림은 결코 오늘에 오지 않는다. 도대체 거창한 효도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일상을 함께 하는 우리의 시간 속에서 할 수 있는 실천들을 해나가야 한다. ‘내가 이렇게 돼서 요렇게 효도해야지’라는 태도는 효도가 부재한 오늘을 정당화해주는 핑계일 뿐이다. 습관으로 축척된 일상을 바꾸고자 품는 용기는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이다. 엄마는 “갑자기 얘가 왜 이러니, 남우세스럽게?”하겠지만, 그날 밤 잠자리에서 흐뭇한 미소 속에서 행복한 잠에 들지 않을까.

 

 『엄마를 부탁해』 속에 나온 자식들은 모두 효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엄마와 일상을 함께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엄마를 잃어버리기 이전에 이미 엄마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효도는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거창한 성과를 거둬야지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저 엄마의 곁에 있는 것, 엄마와 일상을 여전히 공유하는 것이다. 군에 있을 때 그렇게나 효도 해야지 마음먹었음에도 막상 전역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새로운 일상의 리듬을 구성하려는 시도는 민망함과 어색함 때문에 매번 흐지부지 됐다. 하지만 오늘은 새빨간 얼굴을 내미는 용기를 갖고서 엄마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야겠다. 그리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야겠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이렇게 말하겠다. “엄마, 사랑해요.” 이제는 누구든 ‘엄마를 부탁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ps.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와는 극대점을 형성하고 있다. 똑같이 ‘엄마’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엄마’를 형상화한다. 신경숙의 ‘엄마’는 전형적인 희생적 사랑의 존재다. 반면 봉준호의 ‘엄마’는 같은 모성적 사랑이지만 더 없이 폭력적일 수도 있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