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보서적을 추모하는 동시에, 동보서적의 부활을 꿈꾼다.
(제 2의 동보서적 사태를 막기 위한 고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차례
1. 동보서적의 사망(폐점)
2. 동보서적 폐점의 원동력이 된 나의 “합리적 선택”
3. 조지 리처의 합리성의 비합리성과 나의 합리적 도서 구매에 의한 동보서적의 사망
4. 그래서 어쩌라고 vs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동보서적의 사망(폐점)
그 날은 기상일보의 예상과는 달리, 하늘은 맑았고 빛을 받은 빌딩의 유리창은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는 매번 그러던 것처럼 서면 동보서적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터였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한 나는 하나의 습관처럼 동보서적에 들어가 사회과학 코너와 문학코너, 그리고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던 책들 중 ‘구매확정’을 할 만할 책들을 솎아냈다.
그러던 사이에 하나, 둘씩 친구들이 동보서적 베스트셀러 코너로 모여들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를 반겼고, 우리는 늘 그렇듯 빈손으로 동보서적을 나왔다.
동보서적에서 솎아내어 ‘구매확정’을 했던 책들이 집으로 속속들이 들어오던 그 때, 나는 동보서적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부산 최대 서점 중 하나이자 30년 전통의 향토문화기업이었던 동보서적(서면본점)이 2010년 9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1). 동보서적은 1980년 12월 3일 문을 연 이래로 부산 시민들에게 지식의 곳간이자 문화적 쉼터 구실을 해왔었다.(···)”
거실의 한 모퉁이에 먼지를 머금고 고이 쌓여있던 <국제신문>의 9월 25일자 편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동보서적의 폐업은 누적된 적자로 인한 경영상의 압박이 가장 큰 원인으로 풀이된다. 동보서적 측은 "지난 수년에 걸쳐 계속해서 매출이 줄었고 회복되지 않았다"며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서점들이 강력한 할인정책을 펴는 바람에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는 시민들이 크게 줄어든 점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고 말했다.2)
내가 첫사랑을 하게 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간이 ‘동보서적’이었기에 ‘중매쟁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곳이기도 했는데, 이제 회생불능이 되어 넘어서는 안 되는 강을 지났다고 하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기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았던가. “인터넷 기반의 온라인 서점들이 강력한 할인정책을 펴는 바람에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는 시민들이 크게 줄어든 점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라고. <국제신문>이 쌓여있는 모퉁이 옆에는 소포로 날아왔었던 인터넷 서점의 빈 박스가 뒹굴고 있었다.
2. 동보서적 폐점의 원동력이 된 나의 “합리적 선택”
동보서적의 폐점을 매체를 통해 접한 이후 서면에 나간 적이 있다. 그곳은 ‘중매쟁이’ 역할을 하던 공간을 빠르게 지워가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났던 그 날이 나에겐 마지막이었다. 나는 그 날 생일을 맞이한 두 친구에게 책을 선물했었다. 박민규의『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우석훈의『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그것이다. 그 책은 나의 클릭에 의해 날아왔던 책들이었다. 나는 동보서적의 숨통을 조이던 ‘시민’ 중 하나였던 셈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심정도 든다. 나는 온라인 시장이 자리를 잡은 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보서적을 애용했다. 직접 나의 손에 의해 만져지는 책을 구매하는 것은 훨씬 체감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동보서적’에 대한 애착이 그런 구매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더없이 “비합리적”인 구매였다. 왜냐하면 사실상 같은 상품을 훨씬 비싼 가격에 구매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책을 사야했고, 그에 비해 나의 궁핍함은 가시지를 않았기에 ‘심정적인 선택’보다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전향은 나에게 경제적 부담의 많은 부분을 덜어주었기에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합리적인 구매”를 하기 시작한 많은 “시민”들에 의해서 동보서적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부산시민들에게 너무나 상징적은 공간이었고, “지식의 곳간이자 문화적 쉼터 구실”을 한 이곳은 그렇게 끝장이 났다. 나는 동보서적의 무덤 앞에서 “나는 그저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라고 중얼거렸고, 구겨진 채 바닥을 뒹굴던 책장을 보고 ‘동보서적을 추모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3. 조지 리처의 합리성의 비합리성과 나의 합리적 도서 구매에 의한 동보서적의 사망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화에 대한 테제를 세우고 그에 대한 보완적 요소로 “합리성의 비합리성”에 대해 논의했다. 그에게 맥도날드화는 “효율성,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 그리고 인간기술의 무인기술로의 대체를 통한” 합리성의 증대를 말한다. 이러한 합리성의 추구는 단순히 패스트푸드에만 접목되는 것이 아니다. 관료화된 모든 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합리성의 추구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합리성의 추구(맥도날드화)는 “여러 환경에서 더 많은 이점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동보서적에서의 구매를 기피하고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더 많은 이점들” 때문이었다. 그 핵심은 바로 ‘가격 경쟁력’에 있었는데, 이는 “효율성,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 그리고 인간기술의 무인기술로의 대체”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실상 같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라면 가격이 싼 곳에 소비자는 매료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리처는 합리성의 증대로 인한 “이점들”의 이면에는 다른 측면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합리적 체계는 합리성을 제한하고 훼손하며, 심지어는 파괴하기까지 하는 비합리성을 낳을 수밖에 없다.”3)라고. 이러한 ‘합리성의 비합리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 것일까? 그러니깐 나의 합리적 선택에 의한 인터넷 서점 이용으로 인한 동보서적의 폐점을 어떻게 봐야할까.
우선 동보서적의 폐점이 비합리성의 산물인지를 봐야한다. 이를 테면 “동보서적의 폐점은 아쉽지만, 결국 시대에 뒤쳐졌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라는 식의 반응이라던가 혹은 “동보서적이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인터넷 서점에서 싸게 사니깐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답은 일리가 있고 또 사실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어차피 인터넷 서점에서 싸게 사는 1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보서적이 폐점되었음에도 도서를 구입하는데 있어서는 별다른 차질이 없다. 하지만 동보서적은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월 초만 되면 특별히 시간을 내어 동보서적을 들렸던 기억이 있다. 동보서적에서 발행하는 서평잡지인 ‘책소식’4)(과 북새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책소식’은 현실적으로 모든 신간을 일일이 파악하기 힘든 나에게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5) 그리고 동보서적은 이 외에도 지역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일들을 해왔었다. 부산청소년연극제를 주최하거나, 어린이 글쓰기 공모전대회를 했고, 그 당선작들을 발간해왔다. 그리고 요산문학제 독후감 현상공모와 독자와 함께하는 문학기행 등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직접 펼치거나 후원해왔다. 부산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한 사례도 많았다. 저자와 독자의 만남의 장을 마련해준 것 역시 빠질 수 없는 주요한 활약이었다. 동보서적의 폐점은 이러한 지역문화의 소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역문화의 가꿈이로서의 동보서적의 중요성은 책을 구입할 때마다 파격적인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인터넷 서점에 비해 시민들에게 느껴지는 임팩트는 약할 것이다. 동보서적이 지원하는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시민들보다 인터넷 서점에서 제공하는 할인혜택이 더 균질적으로 시민들에게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토문화기업이었던 동보서적의 폐점에 대한 애도는 이 정도에서 마쳐도 되는 것일까. 법학자 조국은 동보서적의 폐점을 보면서 ‘지역경제’에 대한 우려를 한다.
[동보서적은] 서울 초대형 서점의 부산 공략, 인터넷 서점 및 이마트, 홈플러스 대형할인매장 서적 코너의 가격할인 정책 앞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나 보다.(···) 소비자 입장에서 어느 서점에서건 책을 싸게 사면 족하지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이 예상된다. 다시 생각해 보자.(···) 지역 단위의 산업구조가 무너지면 지역 주민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소비주체가 아니라, 서울 대기업의 판매대상 또는 피고용인이 될 뿐이다. 경쟁에서 패배한 중소자영업자는 사회 전체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일찍이 강준만 교수는 지방은 수도권의 '내부 식민지'라고 갈파했다. 실제 지방 영업을 하는 서울 대기업은 기본운영비를 제외한 수익금을 서울 본사로 올려 보낸다. 지방 소비자가 같은 물건을 싸게 산다고 좋아하는 순간, 지방경제는 뿌리가 뽑히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결국 주민은 고향을 떠나야 하는 미래가 준비되고 있다.6)
조국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같은 물건을 싸게 산다고 좋아하는 순간” 동보서적만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지방경제는 뿌리가 뽑히고 일자리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보스턴대학교의 엘렌 레펠 셸 교수도 그의 저서『완벽한 가격』에서 이러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미국에서 대형할인점의 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 “소비자는 노동자나 유권자와는 다른 종족인 것처럼 유지되었다”라고 주장한다. 즉,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는 상품들은 노동자들의 싼 임금이나 열악한 노동계약조건 등의 기반위에 있는 것임에도 노동자가 소비자가 되는 순간 그것을 깡그리 잊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렇게 싼 가격을 쫓는 소비자들이야 말로 “싼 임금”과 “열악한 노동계약조건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이번 동보서적의 폐점은 대자본의 지방 식민화와 시민의 노예화의 한 장면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합리성의 비합리성은 아주 폭넓게 이 사회에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4. 그래서 어쩌라고 vs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통찰이 있더라도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응을 맞을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싼 값에 책을 사는 유혹은 너무나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 현실적 가능성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조국교수는 지방의 생존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먼저 지방 중소서점들은 자구노력으로 유통과 판매의 혁신을 위한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특히 도매상에 의한 유통구조의 왜곡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혁신의 요청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인터넷서점이나 “초대형서점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사람 냄새' 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길 권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한국서점연합회가 개최한 ‘2010 서점 포럼’의 논의가 살펴볼만 하다. ‘미래 서점’이 주제였던 이 포럼은 “미래 서점은 판매 중심의 기능적 서점에서 소통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서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모토로 삼고 대안적 모델들을 몇 가지 제시했다.
‘대화하는 서점’이라는 모델을 제시한 이연호(책이있는글터 대표)는 서점을 단순한 도서 판매장소가 아닌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7). 그리고 양수열 광동서점 대표는 학교 앞 서점의 새로운 형태로 ‘영어 북스토아 모델서점’을 제안했다.8) 한편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소비자의 관심사가 다원화, 개성화되고 디지털 매체가 주도하는 시대에 서점은 더 이상 종이책만 파는 재래식 전문 소매점으로 존립하기 어렵다”며 “책과 독서에 연관된 문화 교육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공간으로 거듭나야한다”고 밝혔다.9)
조국교수는 이러한 모델구상과 함께 “지방 정부와 의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다른 나라의 예를 따라 대형서점 신규입점시 여러 요건과 절차를 통하여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일본의 경우 “법규에 의해 일정 평수 이상의 서점을 짓지 못하여 대형 서점의 독과점을 막고 중소서점의 '생태계'를 보호해주고 있”는 경우를 그 예로 들었다.
또한 조국교수는 “더 근본적으로는 지방 유권자가 중앙 정부의 수도권집중정책, 서울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에 대해서 '립 서비스' 수준의 비판만 하는 지역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끌어내려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강 교수의 야유처럼 수도권과 지방에 양다리를 걸친 '이중국적자들'에 의해 지방분권이 껍데기만 남지 않도록 지방 유권자가 눈을 부릅떠야 한다. 지방 문제는 서울의 시혜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방 주민과 유권자의 연대와 행동만이 해결책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서울의 시혜”가 아닌 부산시회에 촉구할 수 있는 내용에는 무엇이 있을까? 국제신문에 칼럼을 기고한 김찬석은 동보서적 폐업의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만 있고 되살리기 위한 실질적 대책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부산시가 과연 향토기업의 유지를 위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는다. “부산의 국립대나 공공도서관 공공기관 등에서 구입하는 서적의 일정 부분을 지역서점에서 의무 구입하도록 하는 조례 제정 등 의지만 있다면 방안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해마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불꽃축제’를 이야기 한다. “부산시는 올해 불꽃축제를 사흘간 실시한다. 예산도 지난해보다 배가량 늘려 22억 원이다. 불꽃축제도 시민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하지만 불꽃 쏘아 올리는 열정과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지역서점을 위해 할애한다면 제2의 동보서적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10)라고.
이러한 차원에서의 노력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자. 사실상 향토서점의 위기는 서울 초대형 서점의 진출과 인터넷 서점의 공세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업계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명백하다. 나 역시 결국 대자본의 물량공세에 유혹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 서점의 불법 경품활인 행사 같은 것을 못하게 하고, 법에 규정된 도서 정가제를 더욱 엄격히 지켜지도록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다. 향토서점살리기 시민연합 대표인 박인호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이것을 막기 위해선 프랑스와 같이 도서정가제를 입법화시켜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역의 서점들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중소형 서점의 폐점과 관련한 재미난 문제제기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저자와 문학계(더불어 출판계)를 향한 것이다. 비평가 조영일은 작가와 문학계에 윤리적 책임을 묻는다.
이번에 출간된 그(황석영)의 신작 장편『바리데기』는 출간 전부터 인터넷서점에서 10%할인 + 15% 마일리지(그리고 2천원 쿠폰)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예약판매를 시작했다.(···) 정가가 1만원이니까 무려 45% 할인으로 예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 출판사는 싸게 공급하여 판매를 늘리고, 서점은 ‘되는 상품’ 밀어주는 전략을 사용함으로 윈윈을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술이 결국은 문학시장을 크게 왜곡시킬 것이라는 것쯤은 동네꼬마들도 알 것이다. 즉 『창작과비평』이 아무리 신자유주의(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싣고 FTA가 가진 문제성을 꼬집는다 하더라도, 창비에서 이런 식의 울트라-신자유주의적 행태를 보인다면(다시 말해, 자본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면), 그런 겉과 속이 다른 비판은 딴나라당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자존심이 있는 작가라면 자신의 책이 덤핑으로 팔리는 것을, 그런 방식이 아무리 인세수입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11)
그리고 황석영이 비난했던 일본의 문학계와 출판계를 해명하며 오히려 되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소출판사를 가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며, 그들은 대형출판사가 놓치고 외면하는 분야를 훌륭히 커버하고 있다.(···) 일본에서 사재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시스템 자체가 애초에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힘으로 더티-플레이를 하는 것은 일본출판계가 아니라 한국출판계이다. 일본에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책 할인을 절대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경우, 책 내용이 좋아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아니라 자본의 힘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돈이 없는 중소출판사의 경우 이런 마케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 역으로 보면, 일본에서 책이 할인 될 수 없는 것은 영향력 있는 대형출판사들이 할인시스템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중소 출판사들은 우리보다 나은 환경에서 책을 만들고 있으며, 동네마다 서점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12)
조영일은 소외와 약자를 이야기하고, 대자본,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저자 그리고 문학계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고발한 것이다. 향토문화기업(중소형서점)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들의 노력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지금까지 제 2의 동보서적 사태를 막기 위한 방안들을 폭넓게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사람들을 넘을 수 있게 된 것일까? 그러니깐, “동보서적이 있든, 없든 나는 어차피 인터넷 서점에서 싸게 사니깐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납득시킬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이를테면 나는 과연 인터넷 서점의 파격적인 세일을 외면하고 영광도서에서 책을 구매할 수 있을까? 클릭하나면 집까지 날아와 주는 그 편의를 거절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외출을 감행할까? 솔직히 나 스스로도 자신이 없다.
언젠가 인터넷 서점을 비판하는 칼럼기사 밑으로 댓글로 논쟁이 벌어진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실 논쟁이라고 할 것도 없고, 일방적으로 인터넷 서점 구매의 정당성이 옹호되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소비자에게는 합리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그로인해 파생되는 비합리성을 보지는 못했다.
결국 서로가 조금씩 노력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중소서점은 그 자체적인 혁신들을 해야 하고,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은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소비자들 역시 대의적 차원에서의 구매를 생각해봐야 한다. 엘렌 레펠 셸 교수가 제공한 통찰에 대한 응답을 내려야 한다. 우리가 싼 가격을 쫓을 때, 그 저렴한 가격은 어떠한 노동자들의 싼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비롯된 상품을 쫓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열악함은 나의 궁핍함에서 비롯된 부득이함 때문에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바로 그 어떠한 노동자가 곧 나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합리적인 선택으로 판단되는 저렴한 상품에 대한 소비는 다른 한편으로는 비합리성의 극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나는 전적으로 중소서점만을 이용할 자신은 없다. 의식을 하게 되긴 했지만, 궁핍한 나의 현실의 혹독함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노력해보겠다. 먼저 인문교양서적은 되도록 향토문화기업이나 동네서점에서 구매하도록 노력해보겠다. 그리고 제도적 측면의 개선을 위한 발언도 지속적으로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합리성의 비합리성의 측면을 이야기해 주어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권해보겠다.
‘동보서적을 추모하는 것’이 기만의 한 형태가 되지 않으려면 제 2의 동보서적 사태를 막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실천은 미미한 것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작은 의지들이 모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제 2의 동보서적 사태가 아닌, 동보서적의 부활을 꿈꾸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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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보서적이 폐점 된지 불과 한 달 뒤(2010년 10월 31일)에는 55년 전통의 문우당 서점도 문을 닫았다. 문우당의 김용근 대표는 “평생을 함께 한 서점인지라 어떻게든 운영을 해보려 했으나 오랫동안 누적된 적자 규모로 볼 때 더 이상 운영한다는 것은 우리 직원들에게마저 피해가 갈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놓으려 한다”고 밝혔다.
2) 국제신문, <부산사람 30년 추억묻고 동보서적 내달 문닫는다>(조봉권 기자), 2010.9.25.
3) 조지 리처,「2 합리성의 비합리성」,『소비사회학의 탐색』, 일신사, 2007. 참조.
4) '책소식‘은 서울을 제외한 지역서점으로는 유일하게 독자적으로 발행하는 서평잡지이다. 1986년부터 발행되었고 2009년에는 웹진으로 전환됐다.
5) 물론 이러한 서평잡지의 영향력이 현저히 둔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인터넷의 활성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인 ‘알라딘’이나 ‘예스24’만 보더라도 고정 서평자 외에 블로거들의 활약으로 양질의 서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6) 부산일보, <동보서적 폐업 소식을 듣고>(조국 칼럼), 2010.9.28.
7) 이연호는 ‘책이있는글터 서점’의 사례를 들면서,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공간으로서의 모델을 제시했다. 벽 공간을 이용해 다양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한 경우가 있고, 카페식 서점(차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한 경우도 있다. 또한 아이들의 책 공간인 ‘다락방’이 있고, ‘문화공간숨’이라는 강좌와 문화행사를 위한 공간의 제공을 이야기 했다. ‘착한도서코너’와 ‘책읽어주는 마녀’와 같은 새로운 기획도 지역주민과의 친밀감과 유대감을 갖게 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8) 양 대표는 그 동안 참고서 위주의 영업으로 이루어져 온 학교 앞 서점은 소비자와 판매자가 교육현장의 지근거리에 밀착돼 있어서 신뢰감이 형성돼있다는 데 큰 장점이 있다고 전제한 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영어마을의 북스토어 개념을 소형서점에 적용하면 문화와 교육공간으로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9) 백원근 연구원이 제시하는 모델들은 테마형 전문서점, 생필품을 파는 생활편의서점, 어린이 청소년 전문서점, 독서교육 등 평생학습센터 서점 등이다. 그리고 백 연구원은 이러한 모델구축과 동시에 서점 육성을 위한 최소한의 법 제도적 기반과 정부차원의 정책적 관심이 촉구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한편, 토론에 나선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온라인 보다 현재 서점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서점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전자사전, 단어학습기 등 디지털제품의 유통망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럴드경제, <동네서점 살리기 대안은 없나>(이윤미 기자), 2010.11.22. 참조.
10) 국제신문, <동보서적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중성>(김찬석), 2010.10.5.
11)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도서출반b, 2008. 157~159쪽.
12) 위의 책, 211-212쪽.
* 참고문헌
조지 리처,『소비사회학의 탐색』, 일신사, 2007.
조지 리처,『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시유시, 2004.
엘렌 러펠 셸,『완벽한 가격』, 랜덤하우스코리아, 2010.
조영일,『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도서출반b, 2008.
서울경제, <대한서련 23일 '2010 서점 포럼'-동네서점 살리기 모색>(정승양 기자), 2010.11.22
해럴드경제, <동네서점 살리기 대안은 없나>(이윤미 기자), 2010.11.22.
부산일보, <동보서적 폐업 소식을 듣고>(조국 칼럼), 2010.9.28.
국제신문, <부산사람 30년 추억묻고 동보서적 내달 문닫는다>(조봉권 기자), 2010.9.25.
국제신문, <동보서적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중성>(김찬석), 2010.10.5.
YTN, <향토서점 줄줄이 폐업...대책을 찾아라!>, 20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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