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정화운동

[밑줄]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두괴즐 2011. 6. 25. 10:37

[밑줄긋기]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부 그들만의 세상


04 삼성과의 첫 만남


 그런데 기업의 이익과 나라의 이익이 같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삼성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공장을 운용하고, 나라 밖에서 협력업체를 구한다. 이런 기업이 내는 이익은 국내 일자리 증가, 국내 중소기업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런 판단은 좌파들이나 하는 것일까. 역시 아니다. 조선일보조차 이런 입장이다. 이 신문 송희영 논설실장은 2009년 10월 24일자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일치하던 시대는 갔다. 글로벌 회사일수록 기업 이익과 국익 사이의 간격은 도리어 멀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을 키울수록 국익이 커진다고 믿으며 온갖 혜택을 제공하는 전략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군사정권 시절의 친기업적 발명품들을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대기업을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은 진보나 보수 등 이념과 관계없는, 그저 상식일 뿐이다.(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p.133


05 “여긴 실입니다”


 구조본 인사팀 노사담당은 노동조합 설립을 막는 게 일이었다. 삼성은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부터 ‘무노조 경영’을 내세웠던 탓에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노하우가 다양했다. 물론, 모두 불법적인 행태였다. 그래서 법무팀에 와서 상의할 일도 없었다. 합법으로 포장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범죄행각이었으니까. p.139


구조본 공식 문서에서 ‘이건희’, ‘회장’ 등의 표현을 직접 쓰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표현을 직접 쓰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이건희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대문자 ‘A’가 쓰였다. 이건희의 부인인 홍라희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A자 옆에 점을 찍은 ‘A`’가 들어갔다. 이건희 일가에 대해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은 ‘JY’, 큰 딸인 이부진은 ‘BJ’, 작은 딸인 이서현은 ‘SH’라고 적곤 했다. 봉건제 시절, 중국에서는 공문서에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함부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21세기 민주사회에서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이건희의 이익이 그것이다. 삼성의 이익과 이건희의 이익이 충돌할 때면, 늘 이건희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구조본 팀장들이 기업 경영자가 아니라 이건희의 가신(家臣)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이건희의 가신들이 모인 회의에서 국가적인 문제가 논의됐다면? 황당한 일이다. 이건희의 이익을 기준으로 내려진 결정이 국민 다수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흔했다. 정부와 삼성 사이의 거리는 늘 가까웠고, 구조본 팀장회의는 이건희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요리했다. p.146


 삼성에서 일하면서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 있다. 부끄러운 짓도 몇 번 하다보면 아무렇지 않아진다는 것. 부정한 돈을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마찬가지다. 재벌이 돈을 주는 게 자신이 권력을 누리고 있는 증거라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돈을 받으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인한다. 자신이 받을 만한 위치에 있으니까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자들도 처음 돈을 받을 때는 망설였을 게다.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을 게다. 하지만, 두 번째 돈을 받을 때부터는 이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주는 쪽 역시 권력을 돈으로 샀다는 느낌에 뿌듯해 한다. 처음 돈을 건넬 때 느꼈던 가슴 떨림은 금세 잊혀진다.

공직자들이 삼성 수뇌부로부터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았던 배경에는 “삼성 돈은 안전하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받아도 탈이 없다는 게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에서 엿보이는 치밀한 이미지가 뇌물을 받는 자들을 안심시켰다.

 다른 이유도 있다. 설령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다 공직에서 쫓겨나도, 삼성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 뇌물받다 잘린 공직자에 대한 보상 성격이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p.179


07. 1999년 삼성 부도 위기


 그러나 중앙일보가 삼성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심고백 이후, 중앙일보의 보도 태도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삼성, 특히 이건희 일가가 기분 나빠할 내용은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왜곡 보도하는 중앙일보의 태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중앙일보가 계열 분리를 선언한 뒤에도, 중앙일보 편집국 내부 정보보고 내용이 하루 두 번씩 삼성 구조본으로 전달됐다. 이걸 보며, ‘중앙일보는 언론이라기보다, 삼성을 위해 일하는 사설 정보기관이구나’싶었다. p.193


10. 이건희 일가, 그들만의 세상


이건희 일가가 사치를 하는 것도, 허영에 들떠 지내는 것도 모두 자유다. 이걸 굳이 규제할 근거는 없다.

 다만, 조건이 있다. 개인적인 사치는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사치를 위해 회사 돈을 빼돌려서는 안 된다. p.226


 이처럼 부모형제에 대해서도 냉랭했던 이건희가 조선일보 사주인 방일영 상가에는 직접 방문해 조문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방일영이 사망한 2003년 8월8일, 이건희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방일영 빈소를 직접 찾았다. ‘어머니 상가에도 가지 않았던 이건희가 언론사주 상가에는 가는구나’ 싶었다. 이건희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다.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묶어주는 끈은 혈육간의 정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을. p.235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나는 삼성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검사들에게 돈을 뿌리고, 재판에 앞서 증거를 조작하던 그 시절 말이다. 로비가 통하는 사회에 합리적 이성이 설 자리는 없다. 사법부를 농락하는 힘이 있는 곳에 정의는 없다. 이런 사회에서 “인위적 실수” 따위의 말장난이 서슴없이 통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회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말장난과 로비로 급한 상황만 넘기면 된다. 삼성 수뇌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특검 수사 이후 ‘계열사 자율경영체제’를 약속했지만, 결국 거짓말이었다.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삼성전자 간판급 경영자들이 “오너 경영체제로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한다. p.277


3부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


16. 문제는 비자금이다


 물론, 삼성이 국세청 관리에 공을 들여야 했던 게 꼭 이재용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비자금 때문이다. 삼성은 비자금 없이 지낸 적이 없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정관계에 돈을 뿌려왔던 게 삼성이다. 이렇게 뿌린 돈은 회사에서 빼돌린 비자금인데, 당연히 회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처럼 회계를 조작하면, 세금을 제대로 물릴 수 없다. 비자금-회계조작-탈세는 한 묶음이며, 삼성의 역사에서 떼어낼 수 없는 부분이다.

 (···) 삼성 비리의 뿌리는 비자금이다. 비자금이 없었다면, 삼성이 권력을 매수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비자금은 결국 삼성 임직원들이 흘린 땀의 대가를 빼돌린 것이다. 여기에 더해 삼성은 생산 현장에서 흘린 땀의 대가를 빼돌려 정치인과 관료, 법관, 언론인, 학자를 매수했다. 자신의 노동으로 벽돌 한 장 생산한 것이 없고, 백 원짜리 하나 벌어본 적 없는 자들이 자자손손 왕처럼 군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지른 비리였다. p.345-346

 

18. 죽은 권력, 살아 있는 권력, 죽지 않을 권력


 신영철 사태는 사법부의 존재 근거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국민들의 냉소다. 사법부가 공정성을 잃고 정권과 재벌의 시녀 노릇에 전념하다는 생각이 워낙 뿌리 깊은 까닭에, 신영철 사태에 대한 판사들의 집단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이 많았다. “법원은 원래 그렇다. 어차피 한통속인 판사들이 왜 뒤늦게 호들갑이냐”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위험하다. 썩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현실 앞에서 체념하고 냉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 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p.386


누가 봐도 비리 정황이 분명하고,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거짓말까지 한 천성관은 호의호식한다. 반면, 김이태 연구원처럼 양심에 따라 진실을 알린 사람들은 권력에 의해 심한 고초를 겪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진짜 두려웠던 것은 이런 질문이었다. p.403


19. 삼성과 한국이 함께 사는 길


 실력도 신통치 않고, 인품이 썩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대단한 실력자 취급 받는 사람을 가끔 본다. 대개는 ‘마당발’인 경우다. 단지 ‘발이 넓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대단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도 흔치 않을게다.

 (···) 하지만 ‘발이 넓다’는 게 최고의 미덕으로 통하는 순간, 원칙이 사라진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친한지’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불이익을 입은 사람은 자신이 권력자에게 밉보였기 때문에 당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에서 법과 제도에 따른 결정에 승복할 리는 없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학습효과가 생긴다. 무턱대고 권력자들에게 끈을 대고 억지 친분을 쌓으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억지로 친한척하는 것은 영혼을 녹슬게 할 뿐이다. p.411-412


 대학 등록금 때문에 사채를 썼다 갚지 못한 여대생이 사채업자로부터 윤락행위를 강요당하다 이를 안 부친의 손에 희생되고 부친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여대생 이모(당시 21세)씨는 2007년 3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다 서울 강남의 한 대부업체를 찾았다.

 이씨와 함께 간 친구 강모(23), 장모(22)씨는 업자 김모(30·구속)씨에게 각각 300만 원씩 빌렸다. 선(先)이자 명목으로 35만 원을 떼고 90일간 매일 4만 원씩 360만 원을 갚는 조건. 이들은 급한 마음에 손을 벌렸지만, 연리 345%의 고리사채를 감당할 길이 없었다.

 이씨가 제때 돈을 갚지 못하자 김씨는 악덕업자의 본색을 드러냈다. 500만 원을 다시 빌려주며 대부분을 미변제금과 선이자, 수수료로 뗀 뒤 100일 동안 6만 원씩 모두 600만 원(연리 430%)을 갚도록 재계약했다. 갚지 못한 원리금을 이율을 높여 재대출하는 ‘꺾기’ 수법이었다. 김씨는 미등록 대부업자 3명과 짜고 채권을 불렸다. 이씨 등의 빚은 1년 새 1,500만 원씩으로 늘었다.

 뒤늦게 사실을 안 장씨의 부친은 딸의 빚을 갚았지만, 이씨와 강씨는 강남의 룸살롱에서 강제로 성매매를 해야만 했다. 김씨는 대출 당시 확보해 둔 두 사람의 휴대폰 속 연락처를 무기 삼아 “돈을 갚지 않으면 사채 썼다가 몸 팔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와 남자친구에게 알리겠다”며 협박하며 이들이 번 돈을 가로챘다.

 강씨는 지난해 2월부터 최근까지 역삼동 S룸살롱과 신사동 V룸살롱을 전전하며 김씨에게 1,800만 원, S룸살롱 마담 최모(41·구속)씨에게 9,700만 원을 고스란히 빼앗겼다.

 지난해 4월부터 대치동 B룸살롱에서 일하게 된 이씨는 결국 부친(당시 52세)에게 도움을 청했다. 부친은 그새 수 천만 원으로 불어난 빚을 갚을 방도가 없다는 막막함과 접대부가 된 자식에 대한 분노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 11월 25일 딸을 찾아가 목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이틀 뒤 평택의 한 저수지 부근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되레 이씨와 대출금 맞보증을 섰던 강씨에게 “이씨 몫까지 갚으라”며 강요했다. 견디다 못한 강씨는 이씨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에게 그간의 사정을 알렸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김씨 등 대부업자 4명과 룸살롱 마담 최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대부업체 종업원 양모(33)씨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구속된 대부업자들은 최고 연 680%의 살인적 이자를 받아 33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고, 피해자를 동영상으로 찍어두거나 성추행하는 등 불법 추심 행위를 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돈을 빌린 212명을 상대로 추가 피해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2009년 4월 10일자 <한국일보>, “천벌 받을 악덕 사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눈을 의심했다. 기사가 아니라 소설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실을 다룬 기사였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사채를 쓴 여대생이 룸살롱에 나가게 되고, 결국 가족이 파탄난 사례다.(···)

 여기서, 다시 삼성 비자금을 떠올렸다. 언론 보도를 보니, 대학 등록금 총액이 10조 원쯤 된다고 한다. 삼성이 불법적으로 관리한 국내 비자금이 딱 이 정도 규모다. 특검이 수사를 제대로 해서 이 돈만 환수했어도, 등록금 문제에 돌파구가 열릴 수 있었다. 적어도 앞서 기사에서 다룬 것과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엉뚱한 해법을 꺼냈다. 등록금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등록금을 나중에 갚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장은 그럴싸한 방법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허점이 보인다.(···) 지금처럼 대졸 취업률이 낮은 상태에서는 대출 회수율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 또한 걱정스런 대목이다. 그런데 정부는 본인이 상환을 하지 못하면 배우자에게 부담을 넘기겠다고 한다. 사채업자라면 모를까, 적어도 정부 당국이 할 이야기는 아는 듯싶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이처럼 어이없는 대책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않는 상황에선 필연적인 결과였다. 재정이 부족한 것을 뻔히 아는 관련 당국은 조삼모사(朝三暮四)식 눈속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서민대책의 핵심은, 그래서 재정 확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세 투명성 강화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삼성비리 수사는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최고 재벌인 삼성의 비자금을 낱낱이 드러냈다면, 사회의 다른 영역에도 높은 투명성을 강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0조 원에 달하는 삼성 비자금을 환수하고, 이를 계기로 재벌과 부유층에게서 세금을 제대로 거둬들이는 기풍을 세웠다면, 정부 재정 역시 탄탄해 질 수 있었다. 가장 부유한 자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물렸으므로 공정성에 대한 불만도 생길 리 없다. “왜 센 놈은 못 건드리면서 약한 놈만 잡느냐”라는 불만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p.416-419



p. 419-420


검사 시절, 나는 “한국 사회의 악의 축은 룸살롱”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수사를 하다 보니, 온갖 나쁜 짓은 다 룸살롱과 연결돼 있었다.(···)

조세 투명성이 낮으니, 지하경제만 번창한다. 대표적인 게 룸살롱이다. 그리고 공권력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으니, 다들 권력층에 줄을 대려고만 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끼리 폭탄주를 주고받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법과 질서는 기득권층에게만 유리해진다. 서민은 기득권층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런데 정부는 서민 대책을 세울 방법이 없다투명성이 낮으므로,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재정이 부족한 정부는 그저 눈속임 대책만 쏟아낼 따름이다.(···) 사회복지가 부실한 사회에서 보통사람들이 기댈 곳은 결국 인맥밖에 없다. 그래서 인맥을 통한 청탁에 관대한 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문화 속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주류 인맥을 장악한 기득권층이다. 이들은 로비를 통해 사법 질서와 언론을 제멋대로 조종한다. 서민은 이들과 경쟁할 수 없다.(···)

 이런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에게도 공정한 법질서를 적용하는 것이다. 재벌이 불법적으로 숨겨둔 비자금을 환수하고, 사회 전체의 투명성을 높여서 탈세를 막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한 재정으로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갖춰서 보통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갖는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다. 교육, 의료, 주거, 실업 보장 등 생활에 필수적인 영역에서 공공성이 대폭 강화되면, 사회 투명성 역시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가 발달한 북유럽 사회에서 투명성 지수가 높은 까닭이기도 하다.


p. 422-423


 나는 오히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게 삼성을 비롯한 재벌이라고 본다. 시장경제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활발한 ‘기업가 정신’이다.(···)

 (···)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재벌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게 된 점을 빠뜨릴 수 없다(···) 갓 창업한 중소기업이 재벌 소속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를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껏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해도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에 시달리다 보면, 기업을 키워가기 힘들어진다. 갓 창업한 중소기업은 불공정한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쉽지 않다. 재벌 기업과 소송을 벌여봤자 이길 가능성도 낮다.(···) ‘기업가 정신’을 짓누르는 게 재벌이라는 이야기다.

 (···) 당시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장 지배적 위치’를 남용해 협력업체들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삼성전자가 얻은 막대한 이익 가운데 상당 부분은 협력업체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챈 것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사례에 대해 공정위가 조사에 나서자 관련 자료를 모조리 수정, 삭제해 버렸다.(···)

“중소기업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재벌 좋은 일만 시켜준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시장경제가 활성화될 리 없다.


p. 423-424


그렇다면 삼성 비리를 고발하면, 국가 안보가 흔들릴까. 나는 그 반대라고 본다.

이재용 등 재벌 집안 자체들은 몸이 건강해도 군대에 안 간다. 또,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국군 장병들이 이런 사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한겨울에 휴전선에서 보초를 서는 젊은이들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민주주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서 젊음을 보내는 것이다. 병역과 납세의 의무조차 외면하고, 법을 우롱하는 특권층 가문이 전횡을 저지르는 사회를 위해 아까운 젊음을 군문에 바친 게 아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병역을 회피하고, 세금을 탈루하는 나라가 튼튼한 안보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건희 집안사람들에게 병역 등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세금 제대로 내고,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래서 국가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p. 425-428


 이건희는 지난 2003년 스웨덴을 방문했다.(···) 당시 이건희는 스웨덴 재벌 가문인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에 관심을 뒀다.(···)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 주식시장 시가총액 4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건희가 관심을 둔 대목은 따로 있다. 발렌베리 가문은 150여년에 걸쳐 5대째 경영권을 세습했다.(···) 게다가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사회에서 평판도 좋은 편이다. 이건희가 부러워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발렌베리 가문과 이건희 집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발렌베리 가문이 지배하는 기업들은 모두 ‘독립 경영’이 원칙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인베스터AB’라는 지주회사를 통해 이 기업들을 지배하는데, 인베스터를 지배하는 것은 공익재단이다. 인베스터가 자회사로부터 받은 배당 이익을 공익재단으로 보내면, 재단은 수익금의 대부분을 스웨덴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학문과 산업, 공공의료 전체에 혜택이 된다. 이 대목에서 삼성과 발렌베리가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문의 후계자를 고르는 방식과 기준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경영하려면 조건이 있다.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마칠 것. 해군 장교로 복무 할 것.” 이게 최소 조건이다. 이런 조건을 갖춘 이들끼리 경쟁을 벌여 후계자를 정한다.(···)

 이게 발렌베리 가문만의 특징일까. 그렇지 않다. 이건희가 흉내내려 하는, 유서 깊은 가문은 다 이런 식이다.(···) 공동회장 가운데 한 명인 라인하프트 진칸(Reinhard Zinkann)은 후계자 선정 방식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수십 명이 경합한다. 가문에서 내려오는 규칙이 있다. 회사를 승계하려면 규칙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내부 경쟁을 거쳐 후보가 되면 4년 이상 다른 회사에서 일하며 경영능력을 검증 받아야 한다. 내 경우, BMW에서 1988년부터 4년간 일했다. 밀레 입사 전 2개 헤드헌터 업체로부터 업계 최고 인재라는 추천장을 받아야 회사에 입사할 수 있다. 또 본사에 입사해 바닥부터 일을 배워야 한다. 나는 1992년 회사에 입사해 차근차근 승진해 1999년 간부(Senior Management)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2002년 6명의 심사위원회가 주체한 최종면접을 통과하고서야 최고 경영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기준이 더 있다. 외국어 능력과 군 복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진칸 회장은 “5개 국어를 구사하며 그중 3개 국어는 능숙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기갑부대 장교 출신이다.

 (···) 앞서 언급한 재벌 가문 후계자들이 반드시 군 복무를 거친 데는 이유가 있다.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는 자로서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봤기 때문이다.


p. 428-431


 이건희나 이재용처럼 태어나면서부터 황태자로 자란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이 사회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봉건 사회에서의 왕족이나 귀족이 자신들의 특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들은 양보를 모른다. 기득권이 조금만 흔들리면 참지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반면, 자신의 기술과 아이디어, 노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다르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누리는 부와 권력이 원래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알고 있다.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어서 교육, 의료 등이 거의 무상으로 제공되는 북유럽 사회에서는 이런 특징이 더욱 두드러진다. 공공부문이 실패에 대한 안전판을 마련해주고, 교육기회를 충분히 제공했으므로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물리기도 쉽다. 소득세율이 50%에 가까운 핀란드에서 가장 큰 부자는 괴란 순드홀름인데, 그는 발명만으로 핀란드 최고 부자가 됐다.(···) 2세 재벌 총수가 주를 이루는 한국과 달리, 핀란드에서는 상속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은 극소수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부자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벌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와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 사이에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골짜기가 패여 있는 한국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핀란드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에 조금 더 민감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게다. 심지어 핀란드에서는 벌금도 누진제다. 벌금 액수가 소득에 비례한다는 뜻이다. IT벤처기업을 창업해 부자가 된 젊은이가 2000년 11월 교통법규를 어겼다는 이유로, 우리 돈 8500만 원 가량의 벌금을 문 사건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얻었으면, 잘못에 대한 책임도 더 강하게 져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반대다.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기는커녕,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처벌마저 면제해 주기 일쑤다.(···)

 핀란드에서는 매년 11월이면 전 국민의 소득과 세금이 공개된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옆자리 동료와 이웃의 소득과 세금을 알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탈세가 쉽지 않은 게 당연하다. 소득 가운데 절반을 세금으로 떼어가도 별 불만이 없는 것 역시 그래서다. “나보다 많이 버는 사람은 나보다 많은 세금을 낸다”는 믿음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율이 높아도, 세금이 공정하게 매겨지고 투명하게 쓰인다면 국민이 불만을 가질 리 없다. 흔히 세율이 높으면 경제에 부담을 준다고 하는데, 세율이 높은 북유럽 국가에서 오히려 경제가 튼튼한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율이 높아도 권력층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횔기를 띠기 마련이다.

 요컨대 문제는 투명성이다.


p. 432-436


 특검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던 날, 어느 경제지는 “삼성특검, 고민 끝 ‘경제’ 선택”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재벌의 잘못을 덮어주는 게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따른 제목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반칙과 특권, 비리를 공권력이 용인하면, 시장질서가 무너진다결국 경제가 망가진다.

 당시 경제지들은 재벌의 성장이 국민 경제 전체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역시 설득력이 없다. 예컨대 삼성의 금융 계열사는 철저하게 국내용이다. 불공정한 보험 약관 등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구조일 뿐, 외화를 벌어들이거나 국가의 부(富) 혹은 경쟁력을 증대시키는 데는 기여하는 바가 없다.

 삼성전자 등 제조업 계열사는 다를까. 그렇지도 않다. 공장이 대부분 해외로 이전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 경제 활성화의 핵심인 일자리 증가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최근 10여 년 동안 삼성 등 재벌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재벌 계열사 일자리 수는 제자리걸음이라는 통계도 있다.

 게다가 현재의 재벌은 중소기업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재벌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중소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 선에서 납품단가를 정해 왔다. 중소기업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 정도로만 활용하는 셈이다. 이런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재벌의 성장이 곧 국민 경제의 성장이라는 주장은 허구다.

 굳이 재벌이 진출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에까지 발을 뻗치는 문어발 식 경영 역시 삼성의 성장과 한국 경제의 성장을 등치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 역시 재벌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이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일자리의 99%를 제공하는 중소기업들이 버티기 힘들다. 근근이 버틴다 해도 직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줄 수 없다. 99%의 일자리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

 <경제개혁리포트>에 따르면, 200대 기업 가운데 설립 이후 지배권 변동을 경험한 회사가 총 71개사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39개사가 공기업 민영화 또는 구조조정기업의 매각 과정에서 재벌 계열사로 편입된 경우다. 그리고 재벌의 급격한 확장은 이런 과정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런데 공기업 민영화나 구조조정기업의 매각 등을 주도한 것은 정부였다. 결국 역대 정부가 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삼성 등 재벌 계열사가 시장에서 진입장벽을 쌓고 기득권을 누려온 게 이들 재벌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역대 정부의 직간접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삼성 등 재벌은 지금과 같은 위상을 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정부의 도움은 결국 국민 세금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이들 재벌이 국민에게 빚을 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삼성 등 재벌은 국민에게 진 빚을 갚기는커녕, 세금 납부라는 기본적인 의무마저 피하려 든다. 그리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재벌 때문에 국민이 먹고사는 것처럼 말이다.


p. 439


삼성에서 기술자와 연구원은 비리 공범들보다 늘 낮은 대우를 받았다삼성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반도체 기술자’, ‘휴대폰 기술자’보다 이건희 일가를 위해 비리를 저지른 ‘비자금 기술자’, 공무원을 타락시키는 ‘로비 기술자’들이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와 인터뷰했던 윤종용 자신이 바로 이런 경우다.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성장에 그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학수에게 늘 무시당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학수가 삼성 비자금을 다뤘기 때문이다.

비자금 조성과 불법 로비에 가담해야 좋은 대우를 받는 현실, 총수 일가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권력이 세지는 현실에서 생산 현장과 연구실을 지키는 기술자와 연구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을 리는 없다.


p. 440


창업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의 노력으로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처럼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종속된 정도가 심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 더 근본적인 대책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이런 안전망이 없다.(···) 한국 사회는 재벌의 경제범죄에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젊은 창업자에게는 지독히 가혹한 곳이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면, 누구나 안정 지향적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결국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서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이를 위한 필수 조건인 조세 투명성에서는 등을 돌린 채, 요즘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업만 선호한다며 개탄하는 언론을 보면 기가 막힌다.


p. 442-423


 2년 터울을 두고 일어난 황우석 사태와 삼성 사태가 어쩌면 이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이들 사태에서 드러난 주요 언론의 입장을 요약하면, “지금돈을 잘 버는자, 혹은 훗날 돈을 잘 벌어들일 가능성이 있는 자에게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매국 행위”라는 것이다.(···)
윤리적인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거짓과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리고 거짓이 난무하는 불투명한 사회에 자본을 투자할 사람은 없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어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기업을 세우고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할 사람 역시 없다. 윤리적인 원칙이 사라지면, 경제 역시 망가진다는 뜻이다.(···)

 (···) 극단적인 빈곤 상황에서 윤리적 원칙을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윤리적 원칙에 대해 냉소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이다. 게다가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했을 때 비웃는 자들은 대개 굶주림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이 법과 원칙을 비웃는 것을 많이 봤다. 이런 사회는 이미 정상이 아니다. 돈과 권력을 많이 누리는 자일수록 윤리적 원칙에 충실한 사회가 정상이다.

 우리 사회는 이와 정반대가 돼버렸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 윤리를 고집하면, ‘좀 모자란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다. 약자에게 피해를 떠넘기고, 권력자에게 줄을 대면서 법을 피해가는 요령이 뛰어날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곤 한다.


p. 443-446


 어떤 이들은 묻는다. “우리 사회가 다 썩었는데, 왜 삼성만 문제 삼느냐”라고. 만약 내가 삼성이 아닌 다른 곳에 근무했고, 거기서 부패 정황을 발견했다면 그걸 공개하는 게 옳았으리라고 본다. 나는 우연히 삼성에서 일하게 됐고, 거기서 부패 정황을 봤기 때문에 그것을 국민 앞에 신고했다. 다른 곳에서 썩은 장면을 본 사람이 있다면 그걸 공개해서 바로잡는 게 옳다고 본다. “어차피 다 썩었다”라면서 부패를 용인하는 태도는 결코 옳지 않다.

 삼성 재벌 핵심부와 검찰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내 마음이 편했을 리는 없다. 둘 다 내 오랜 일터였다. 이 두 곳에서 알게 된 이들이 내 인간관계의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배신자’ 취급을 당하는 것은 사회적 사망 선고와 다름없다.

 하지만 나는 2007년의 양심고백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비리를 공개하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나오리라고 믿는다.(···) 설령 권력이 양심고백한 내용을 덮어버린다고 해도, 비리를 세상에 알리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늘어나면, 권력이 비리를 덮어버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 국세청 등 다른 공직에 있는 이들이 저지른 비리는 규모가 더 크다고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이들 공직자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역을 몰랐기에, 내가 확실히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공개했다.(···)

 언론의 타락은 검찰보다 한참 심각했다. 재벌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와 광고를 바꿔치기하는 언론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깊이 절망했다. 언론이 비리 앞에 침묵하면, 비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 하급 공무원들의 비리도 광범위하게 접했다.(···) 실무를 담당한 하급 공무원들이 깨어 있으면, 진짜 큰 비리도 막을 수 있다. 하급 공무원들의 자정 노력도 절실하다.

 (···)

한 곳이 썩기 시작하면, 전체가 썩는 것은 순식간이다. 부패를 막는 일이 한두 사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 전체가 깨어있지 않으면, 깨끗했던 사회도 금세 썩어버린다. 우리가 깨끗하다고 부러워하는 선진 사회 역시 끊임없는 자정 노력이 없다면, 결국 썩게 돼 있다.

 권력층이 부패한 사회는 힘센 자가 아무런 견제 없이 횡포를 부리는 무법천지일 뿐, 우파의 이상도 좌파의 이상도 될 수 없다.(···) 좌파도, 우파도 끊임없이 감시와 성찰이 없다면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시민이 부패에 맞서는 장면을 꿈꾼다. 반(反)부패시민혁명에 관한 염원이다.


p. 447


정직하게 장사하면,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간신히 생활비를 벌 수 있다는 뜻이다.

 경제가 어렵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이 집 주인 부부가 떠오른다. 경영난에 내몰린 기업은 당장 손쉬운 해법에 유혹을 느낀다. 사람을 자르는 것 말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쫓겨난 직원은 갈 곳이 없다. 사회안전망이 극도로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실업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포다. 마땅한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자영업으로 몰린다. 하지만 자영업은 이미 포화상태. 앞서의 음식점 주인처럼 정직하게 장사하는 사람은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묵묵히 일하다 직장을 잃은 사람이 남을 속이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든 사회, 정직하게 장사하고 세금 제대로 내면 늘 손해 보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사회, 이런 곳에서 내가 변호사 간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권해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본다”는 생각이 현명한 것으로 통하고 “손해 보더라도 정직해야 한다”는 생각은 순진한 어리석음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 아이들이 커져가는 일을 차마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이건희 일가가 저지른 비리를 세상에 알린 뒤, 늘 했던 생각도 이런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재벌의 비리를 공개해 봤자 소용없다고 이야기했다삼성 비리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자, 이런 목소리에 “역시나”하고 힘이 실렸다. 이들은 말한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질 게 뻔한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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