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김상봉 외,『굿바이 삼성』
* 책을 펴내며 (김상봉)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일은 지난 2월 17일 김용철 변호사의 책『삼성을 생각한다』를 소개했던 나의 칼럼이 <경향신문>에 게재되지 않은 일이었다.(···) 삼성의 이건희가 보수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모로 보나 한국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경향신문> 같은 진보 언론조차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4쪽. (강조는 인용자. 이하동일)
자본은 사물화된 욕망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나의 밖에도 있지만 동시에 내 안에 뿌리박은 적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오류는 자본을 단지 외부의 적으로만 설정했던 데 있다. 하지만 내 속의 욕망과 증오 그리고 공포를 뿌리 뽑지 못하면서 어찌 내 밖의 적을 이길 수 있겠는가? 오직 자기의 내면세계를 혁명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불매운동이 갖는 궁극적인 의미도 여기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비자주권운동이 아니라 안의 혁명과 밖의 혁명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화되는 참된 ‘씨혁명’의 불꽃인 것이다. 8쪽.
* 지금 당장 삼성불매운동을 제안합니다 외 (김상봉)
삼성불매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왜 삼성만 갖고 그러는가? 다른 재벌 기업들이, 아니 다른 중소기업들이 삼성에 비해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물음이다. 그것은 마치 40년 전에 왜 ‘박정희’만이 문제인가, 모든 군인들이 또는 모든 공화당 정치인들이 다같이 나쁘지 않은가 하고 묻는 것이 어리석은 물음이었던 것과 같다. 박정희를 제거하고서야 유신독재가 끝날 수 있었고, 전두환을 권좌에서 추방한 뒤에야 비로소 신군부의 독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역시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그 권력에서 추방하지 않고서는 기업독재를 끝낼 수 없다. 19쪽.
만약 이건희 회장이 빌 게이츠와 같은 자본가였더라면 우리는 그가 아무리 부자라도 단지 그 때문에 그를 비판할 까닭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비판하고 더 나아가 이건희 일가를 삼성으로부터 추방하고 삼성을 종국에는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이건희 회장과 삼성이 단순히 기업 집단도 자본가도 아니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라의 근본인 정의를 파괴하는 독재 권력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기의 분수를 지키면서 나라 경제를 살찌우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한에서 우리 모두는 그런 기업을 사랑하고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그 자본을 이용해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만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온갖 불법을 일삼아 저지르며, 그것도 모자라 공직자들을 매수하여 국가 기구 전체를 부패에 빠뜨리고, 마지막에는 나라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기에 이른다면, 이제 그런 기업, 그런 자본가는 타도되어야 할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0쪽.
3년 전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소속의 배가 인천대교 건설에 투입되었던 해상 크레인을 끌고 가다 가만히 있는 초대형 유조선을 들이받아 충남 서해안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자 삼성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삼성답게 먼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항해 일지를 조작한 일이었다. 지역 해양청이 충돌 위험을 무선으로 알렸는데도 그런 경고를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그리고 수십만 국민이 태안 앞바다에서 손으로 기름을 닦고 있을 때, 삼성은 마치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가 사건 50일이 지난 다음에야 마지못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은 앞으로는 사과하는 시늉을 내면서 뒤로는 배상액을 50억원으로 제안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도 한통속이어서 2010년 서울고등법원은 삼성의 편을 들어 태안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에 대해 삼성이 이미 공탁해 둔 56억여원 이외에는 더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액수는(···) 삼성물산이 지은 서울 강남 타워팰리스의 큰 평수 아프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이다. 21쪽.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모든 독재 권력이 그렇듯이 삼성은 국가 권력과 법질서의 통제 밖에 있다. 삼성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공직자를 매수하고, 이것 역시 불가능할 경우에는 대놓고 법을 무시한다. 분식회계 장부가 법원에 넘어가자 법원 직원을 매수하여 서류를 빼돌려 불태우는가 하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이 확보한 자료를 삼성 직원이 가로채 도망가면서 찢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몇 천만 원 벌금으로 모든 불법을 덮어 버린다.(···) 삼성의 문제는 그것이 탈법과 비리를 일삼아 저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구 자체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삼고, 국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모든 공공적 기능을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22쪽.
삼성 제품 불매는 자본의 독재, 삼성의 독재를 끝내기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이다. 유명무실한 삼성 특검 수사와, 대다수 범죄 행위에 대해 관대한 판결을 내려줌으로써 요식 행위에 그친 재판과, 그 재판을 통해 내려진 법의 심판조차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린 최근의 특별사면을 통해 분명해 진 것처럼, 국가 기구는 더 이상 삼성을 통제하지 못한다. 23쪽.
국가도 노동조합도 삼성의 불법을 바로잡을 수 없으니 이제 남은 것은 소비자들의 직접행동뿐이다. 삼성의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소비자들에게 자기 제품을 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이 모든 자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삼성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그날로 삼성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각하면 이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더 좋은 제품을 사용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소비자의 권리라 생각한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삼성은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기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서비스의 이면에 그만큼 완벽하고 비인간적인 노동 통제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도구화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4-25쪽.
그렇다면 그런 노무현이 그토록 애틋하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까닭이 무엇인가? 이유는 딱 하나다. 그것은 그가 ‘싸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의 악과 싸우는 사람이었으니 사랑받은 만큼 미움 받았던 사람이다. 그가 자기를 모방하는 모든 아류들과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31쪽.
하지만 우리가 노무현이 불행했다고 말한 까닭은, 그가 새로이 설정한 싸움의 대상이 결코 새로운 시대를 근본에서 규정할 만큼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모순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 먹이를 주는 자가 삼성인데, 노무현은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그리도 비타협적으로 싸울 줄 알았으면서, 그 배후에 웅크리고 있는 삼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의 한계였으며, 우리의 불행이었다. 34-35쪽.
정치가 다른 무엇보다 시민적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이라면, 삼성과 싸우는 것은 바로 지금 가장 절박한 정치적 과제이다.(···) 근본적으로 기업에 의한 시민적 자유의 억압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그 기업독재의 정점에 있는 삼성과의 전면적인 싸움에 나서지 않는 한, 우리는 막힌 하수구를 뚫지 못하고 그 위에 소독약만 뿌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9쪽.
* 죽은 정의의 사회 (김용철)
2008년 1월 10일 간판을 내걸었던 ‘삼성 특검’과 이후의 재판 과정 결과를 두고 나는 한마디로 그것들이 대국민 사기극 내지 희대의 코미디였다고 정의한 바 있다. 이들이 한 일이라는 게 이건희 일가와 그의 가신들이 저지른 불법과 비리들에 면죄부를 발급한 것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절차는 단순히 이건희 일가에게 면죄부만 준 것이 아니었다. 이건희 일가가 훔친 장물이 피해자가 아니라 이건의 일가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고, 편법으로 삼성의 경영권을 이재용에게 넘겨준 것이 합법이라고 승인되는 순간 이제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적 수단은 사전적으로도 사후적으로도 사라져버렸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혁명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이건희 일가의 전횡을 막을 길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47쪽.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정의로운 사회에 살기를 갈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전 국민이『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백 번씩, 천 번씩 읽으면 이 나라에 정의가 찾아오는 것일까?(···) 책을 읽고 나서 언젠가 저자[센델]를 만난다면 이렇게 묻고 싶어졌다.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과 당신이 말하는 정의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해 중산층 사람들마저 대거 집에서 쫓겨나는 현실에서도 정부와 의회가 위기의 주범인 월스트리트의 금융 부자들에게 막대한 특별지원금을 안겨주는 나라. 돈이 없으면 병원에서 쫓겨나거나 길거리에 버려지는 나라. 햄버거 가게에서 소년이 총 맞아 죽는 나라. 정의를 독점하고서 다른 나라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해도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나라. 이런 현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여러 가지 한계 상황에서 보다 정의로운 선택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그의 강의는 하버드 대학생들이라는 미래 미국 사회의 메인스트림 집단을 벗어나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정의란 어떤 한계 상황과 맞닥뜨려 자신이 지닌 가치와 이념에 따른 선택이 최선임을 증명함으로써 확인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논쟁이 불필요할 만큼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48-49쪽.
삼성과 관련된 거짓말 중에 사람들이 마치 진리처럼 믿고 있는 것이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삼성이 온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것이고, 둘은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고, 셋은 삼성을 자꾸 때리면 회사를 해외로 이전시킨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현실을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두 번째 것은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는 거짓말이고, 세 번째 것은 노동자나 소비자가 어떤 요구를 할라치면 암암리에 유포되는 상투적인 협박이다. 51쪽.
값싼 노동력을 따라가는 공장 이전을 별개로 한다면 삼성은 결코 해외로 옮겨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누리는 혜택과 지원만이 아니라 삼성생명 상장의 예에서 보듯이 100퍼센트 내수에 의존하는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사업적 이익이 여간 막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 특권과 수익을 포기할 리가 없다. 삼성 금융 계열사들은 국민경제를 살찌우기보다는 철저히 내수 기득권에만 안주해왔는데 그 배경에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보험 약관 등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김대중 정부 시절만 해도 생명보험사의 상호회사적 속성 때문에 상장이익이 주주보다 계약자 몫이 컸던 배당 기준이 노무현 정부에 와서 계약자 몫을 0으로 박탈하고 주주 몫을 10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이명박 정부에 와서 이건희 등 주주들만 횡재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 그 나라 기업이나 정부는 결국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3퍼센트 남짓한 지분을 갖고서도 총수요 오너라고 불리면서 그룹 전체를 주머니 안의 동전처럼 만지작거리며 ‘황제경영’할 수 있는 나라와 국민을 왜 버리고 떠나겠는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노조 설립의 권리를 대대로 박탈하고도 멀쩡히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고, 유사 이래 가장 큰 경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풀려나 도리어 모든 국민이 정직해야 한다고 훈계할 수 있는 이 기막힌 옥토를 버리고 그가 왜 다른 나라를 기웃거리겠냐는 것이다. 52-53쪽.
삼성불매운동은 시민의 의식을 바꾸어 공동체적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계기를 만들어내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이 운동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반부패 시민혁명이라 부르는 이 운동은 프랑스 혁명처럼 인구의 10분의 1의 피를 요구하는 혁명도 아니고, 특정 기업을 근거 없이 비방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경제적 정의와 법질서가 우리 사회에 세워지기를 바라는 희망에서 시작되는 운동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기업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존과 긍지를 회복하는 것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54-55쪽.
내가 거듭 삼성의 금융지배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공동체의 생존 방식과 아울러 우리의 일상적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며, 복지 기반이 취약하고, 위험 사회의 성격이 강할 때 민간 보험의 수요는 커진다.(···) 문제는 이러한 금융기업들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정부의 금융정책을 왜곡시키거나 민생과 직결된 기본적인 복지 정책을 허물어버리려 할 때 생겨난다.(···) 삼성은 비자금으로 관련 국가 기구에 대한 뇌물 공여와 매수 등의 방법을 통해 금융 감독 기능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전적으로 내수에 의존하는 금융 관련 사업에서 조 단위의 수익을 올려왔다.(···) 삼성은 회사가 거둔 수익금만 비자금으로 빼돌리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돈을 갈취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55쪽.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소비자라면 시장에 놓인 상품의 품질이나 화려한 외양만이 아니라 그 상품을 내놓은 기업이 그 사회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가치에 합당한 기업 행위를 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마땅하다. 요컨대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에선 백혈병 같은 암이 안 생기는데 왜 삼성반도체 공장에선 수십 명이 발병하고 20대의 젊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가? 이 사회가 인간다운 공동체라면 소비자는 주요한 선택적 행위에서 이런 질문들이 던져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다. 56-57쪽.
삼성불매운동에 거는 우선적인 기대는 이런 부도덕한 기업이 만든 물건을 쓰는 것을 주저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려는 불매운동은 원리주의 운동이 아니며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에 시간을 소비할 까닭도 없다. 그러나 소비자 접점품족으로서 완제품인 핸드폰,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컴퓨터, 프린터, 복사기, 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MP3 등은 비슷한 수준의 대체 상품들이 있기 때문에 불매운동의 대상이 도리 수 있다. 57쪽.
*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의 비밀은? 외 (황광우)
이날 목격한, 그 하찮은 청첩장 한 장은 나에게 ‘거대한 부패의 거미줄’을 드러낸 징표로 다가왔다. 재벌 체제의 해체를 주장하는 이른바 ‘민중운동진영’의 교수에게마저 삼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들 그 누구 하나 삼성의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 것인가! 65쪽.
* 누가 ‘맘몬’의 목에 고삐를 채울 것인가 (조국)
북한 정권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3대 세습되고 있듯이, 삼성의 권력도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으로 3대 세습되고 있다. 이 혈통에 따른 승계선상에 있는 ‘총수’ 및 그 일가에 대한 내부 비판은 상상할 수 없다. 삼성 내부에서는 삼성을 비판하는 단체의 사이트는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차단되어 있다. 86-87쪽.
헌법은 노동기본권을 명백히 보장하지만, 삼성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된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훈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비판과 부작용을 감수하며 ‘무노조 경영’을 유지한다.(···) 삼성 직원이 노조를 준비하기만 해도 개별 면담과 일대일 감시가 이루어지고 심지어 휴대폰을 불법 복제하여 위치 추적을 하며, 그래도 노조 결성을 추진하면 각종의 인사상의 불이익이 가해지고 마침내는 여러 이유를 들어 해고되고 만다.(···) 삼성의 하청업체의 경우를 보더라도 노조가 생기면 물량을 주지 않겠다는 삼성의 위협 때문에 노조가 와해된다.(···) 헌법과 노동법의 규정은 삼성 앞에서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고, 경찰과 검찰과 노동부는 삼성의 부당노동행위와 범죄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다. 88-89쪽.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탁월한 민주화운동의 지도자가 이끈 두 번의 ‘민주정부’도 이내 시장권력의 논리에 포섭되었다. 두 사람 모두 경제개혁, 재벌개혁을 외쳤으나, 집권 후에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 재벌 중심의 경제 운용, 관료 의존의 정책 판단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대중 경제론’의 주창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끈 ‘국민의 정부’는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IMF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며 대량해고와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을 집행하였다.(···) ‘노동변호사’로 맹활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끈 ‘참여정부’도 경제민주화를 추진하지 못했다. 91쪽.
‘노동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도 삼성에 노조를 만들려다 투옥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의 석방은 외면되었고, 국가기념일이나 취임 몇 주년만 되면 재벌 회장 등 경제사범들은 빈번히 감옥 문을 열고 나오거나 사면장을 받았다. 94쪽.
발렌베리 가문은 ‘차등의결권’을 통하여 자회사의 기업 지배권을 보장받고 있지만, ‘황제경영’을 하지 않는다. 발렌베리의 자회사는 각각의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발렌베리의 자회사에서 ‘발렌베리’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자회사의 경영은 거의 전적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되고, 사주 일가는 투자자로서 구조조정, 인수합병, 최고 경영자 선임 등의 주요 사안에만 관여한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으로 최고 경영자가 되려면 부모 도움없이 명문대를 졸업할 것, 혼자 몸으로 해외유학을 마칠 것, 해군 장교로 복무할 것,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발렌베리는 탈세나 분식회계를 하지 않고 불법적 재산 상속도 하지 않으며, 이익의 85퍼센트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공익 재단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벌인다. 발렌베리는 노동조합을 인정함은 물론 노동조합을 경영 파트너로 인정한다.(···)
핀란드의 '노키아'(Nokia)도 자국에서 삼성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기업 집단이다. 그런데 노키아에는 재벌 일가의 경영권 독점과 불법 세습이 없다. 또한 노키아는 투명한 지배구조와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핀란드 사회는 한국 사회가 부자를 대하는 것과 다르게 부자를 대한다. 예컨대, 핀란드는 소득이 높을수록 벌금을 많이 부과하는 ‘반(反)부자 제도’를 가지고 있다. 2002년 노키아 부사장 안시 반요키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시속 50Km 제한도로에서 75Km로 달리다가 11만 6,000유로(약 1억 6천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부자를 괴롭히는 나라”라고 항의하는 부자는 찾기 힘들다. 핀란드는 기업 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집행을 하여 기업이 ‘접대비’를 비용으로 처리해도 형사처벌하므로 탈세나 분식회계는 상상하기 어렵다. 94-95쪽.
삼성을 발렌베리나 노키아로 만드는 것은 삼성의 ‘자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2003년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이학수 씨 등을 데리고 발렌베리 그룹을 방문했지만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다. 기업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 공정거래질서의 확립, 기업의 준법경영과 사회적 책임경영이 가능하려면 이를 법과 제도와 문화로 구현시킬 수 있는 정치세력·사회세력이 있어야만 한다. 96-97쪽.
* 김연아 연기가 보기 불편했던 이유 외 (홍윤기)
<경향신문>은 삼성 측으로부터 그런 명시적 압박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발 우리 사정도 감안해 달라”는 통사정과 함께 김 교수의 칼럼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제 삼성은 대한민국 시민 전체는 아니더라도 여야와 계층을 막론한 한국 사회의 지배 엘리트와 여론 주도층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최강 권력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102쪽.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라디오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지난 2년간 재벌 기업의 고용자 수가 현격하게 줄었고, 그것을 삼성에서 주도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삼성전자는 작년에 10조 원을 넘어서는 영업 이익을 올렸다. 삼성이 돈을 벌어도 그 이득을 보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110쪽.
* 이건희와 함께 왈츠를: 삼성, 이건희, 그리고 ‘공정사회’를 생각하며 (김재홍)
버핏이 어느 때부터 화제의 중심이 된 것은 그가 후손에게는 300만 달러만 남기고 전 재산 470억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증할 방침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약속을 실천했다.(···) 세 자녀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 자녀 모두가 자선단체에서 일하고 있는데, 각각 조기 아동교육, 안전한 물 마시기, 미국 원주민의 복지에 관한 일이다. 153쪽.
미국에는 ‘상속세야말로 부자가 내야 할 소명’이니 없애선 안 된다고 나서는 부자들이 존재한다.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대표적인 인사들이다. 워렌 버핏의 말이다. “기업인이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선수들이 다음 올림픽에서도 자신들의 장남으로 국가대표 선수단을 꾸리겠다고 우기는 거나 매일반이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호들갑 떠는 자들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버핏은 여지없이 사회주의자나 미친 노인네로 취급당할 터이다. 157쪽.
* 삼성, 김예슬, 그리고「무진기행」외 (이계삼)
홍석현: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뭐 좀 인사들 하세요?
이학수: 할 만한 데는 해야죠.
홍석현: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K1(경기고 출신. 이후 괄호는 모두 인용자)들도.(중략)
홍석현: 갑자기 생각난 게, 목요일 날 김두희(전 법무장관)하고 상희(대검 수사기획관)있잖아요.
이학수: 리스트에 들어있어요.
홍석현: 김상희 들어있어요? 그럼 김상희는 조금만 해서 성의로서, 조금 주시면 엑스트라로 하고, 그 담에 이XX는 그렇고, 줬고. 김두희 전 총장은 한둘 정도는 줘야 될 거예요. 김두희는 2천 정도. 김사희는 거기 들어있으면 5백 정도 주시면은 같이 만나거든요. ······ 석조(광주지검장)한테 한 2천 정도 줘서 아주 주니어들, 회장께서 전에 지시하신 거니까. 작년에 3천 했는데, 올해는 2천만 하죠. 우리 이름 모르는 애들(소장 검사를 지칭)좀 주라고 하고.
‘안기부 X파일’로 불리운 이 사건은 보수 언론들에서는 대개 구석자리에 보일락말락하게 보도되는데, 대개 제목과 몇 줄 글이 전부야. 이런 구체적인 내용들은 절대 보도되지 않아. 우리는 그래서 ‘아, 안기부가 도청한 거를 노회찬 의원이 어떻게 구해서 폭로했구나’ 정도만 알뿐, 거기에 담긴 사실들은 알지 못해. 긍금하긴 하지만, 주류 언론은 우리 사회 권력자들의 치부를 담은 저런 구체적인 내용들은 절대 보도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말야, 또 조금만 노력하면 저 정도는 충분히 알아낼 수도 있는 내용이야. 소수의 양심적인 비주류 언론은 그래도 이런 사안을 성실하게 다루어주니깐 말야.
(···) 검찰은 이렇게 떡값만 맏아먹는 게 아니라, 언젠가 <PD수첩>에서 보도했듯 성접대까지 받고, 집에 갈 때는 제 옷에 묻은 아가씨들의 화장품 냄새를 지우기 위해 돼지갈비를 구워먹고 돌아간다고 하지.(···) 이런 자들이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는 또한 얼마나 무자비하더냐. 174-175쪽.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삼성이 좋다, 나쁘다’에 대한 판단보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주의집중하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초기화면에 뜨는 뉴스의 헤드라인만 보고 지나치면서도 세상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착각들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렇게 대충 듣고, 대충 아는 사람들은 결국 세상 문제를 대충 판단하고 말아. 사람들은 삼성이 국가 권력을 농단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라. 만약 그 내용들을 알고 있다면, ‘우리를 먹여 살려주는 고마운 삼성’이라느니, ‘이런 자랑스러운 기업을 어떻게 함부로 흔들 수 있느냐’는 따위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할 수는 없을 거야. 삼성 수뇌부의 노골적인 범죄행각에 대해 불매운동 같은 상식적인 저항조차 쉽지 않은 것도 여러 요인이 있지만, 사람들이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에 주의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175-176쪽.
내가 담임을 맡은 반에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어.(···) 철없는 남자아이들이 ‘마스크맨’이라고 놀려서 내가 그렇게 못 부르게 하려고 아이들을 다그친 기억이 난다.(···) 큰 병을 앓는 아이를 둔 집안들이 그러하듯 몹시 가난했고, 감기만 걸려도 아이는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고, 무균실에 며칠씩 갇혔다가 회복되면 겨우 집으로 돌아오곤 했어.(···) 병원에 있다가 학교에 돌아오면 그 사이에 늘 뭔가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주곤 했었는데, 자주 외면당했지.(···) 그러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열네 살 소녀의 생에 깃든 슬픈이었다. 이를테면, 그림을 잘 그리던 그 아이가 지갑 속에 넣고 다니던 몇 장의 연필 스케치 그림은 알고 보니, 대학병원 무균실에서 함께 지내다 죽은 친구들의 얼굴이었어.(···)
그때의 경험으로 내가 알게 된 것은, 백혈병이란 드라마에 나오듯 머리에 뒤집어쓴 털모자 하나로 표현되는 외상없는 질병이 아니라, 집안 살림을 결딴내는 어마어마한 치료비와 항암 치료, 구토, 탈모, 응급실과 무균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의 지옥 같은 초조함 따위의 캄캄한 질병이라는 사실이었다. 177쪽.
김동춘 교수가 이야기한 박지연 씨 말고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삼성반도체 노동자가 많단다. 황유미, 이숙영, 황민웅, 이 세 사람의 이름을 혹시 들어본 적이 있니? 이들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였고, 모두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죽은 분들이야. 10만 명에 3.7명 꼴로 발생한다는 이 희귀한 병이 한 기계를 놓고 짝꿍으로 일했던 20대 초반의 황유미, 이숙영 씨에게 찾아왔어. 그리고 그 라인의 유지보수를 담당한 엔지니어였던 황민웅 씨에게 발병했고, 이후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에 접수된 발병 사례만도 22건이라고 해. 그 뒤로 접수된 사례가 더 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재발한 병으로 몸도 못 가누면서도 억대에 가까운 치료비로 노심초사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던 황유미 씨는 결국 스물셋에 죽었어. 투병 중이던 황민웅 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기어코 둘째의 출생신고를 했고, 얼마 뒤 죽었다. 2009년 5월, 이들 세 사람을 포함한 삼성 백혈병 피해 노동자와 유가족들이 집단으로 제출한 산업재해 신청은 전원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억대의 치료비도, 죽음 앞에 선 자의 산더미 같은 고통도 슬픔도 결국 각자의 몫이었고, 산재 신청을 하겠다는 황유미 씨의 아버지에게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 “아버님, 삼성을 이기려고 하십니까? 이길 수 있으면 이겨보세요”라고.(···) 얼마 전, 박지연 씨의 가족들이 양심고백을 했어. 박지연 씨가 죽고 나서 삼성이 회사를 상대로 낸 산업재해 인정 소송을 취하하고, 민주노총이나 언론과 접촉하지 않고 멀리 이사갈 것을 요구하면서 4억 원을 주었다고 말야.
내가 삼성반도체 백혈병 관련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남았던 말은 황유미 씨의 아버지 항상기 씨가 ‘삼성에 노동조합만 있었어도 우리 딸이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말씀하신 대목이야. 알다시피 삼성에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해 주는 노조가 없어. 아예 만들 수조차 없도록 구조화되어 있어. 178-179쪽.
그들은 휘발유를 뿌리며 회사에 의한 집요한 선거 개입과 일부 노동자들의 회사 측과의 치졸한 야합에 항의하면서 “이제는 삼성 노동자가 깨어나야 한다”고 연설한 뒤 자기 몸에 불을 지르려 했어.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회사 측의 선거 개입은 밝혀지지 않았고, 이들은 모두 징계·해고되고 말았어. 삼성SDI의 현직 과장인 박용민 씨는 왜 그랬을까? 그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평범한 ‘삼성맨’이었다고 해. 그는 현장 파트장일 때 같이 일하던 송수근 씨가 노조를 설립하려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회사 앞에서 처절한 1인 시위를 벌일 때 회사 측의 지시로 그를 감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었대. 송수근 씨가 자신의 차에 확성기를 달고 회사 앞에서 호소할 때, 회사 측이 서너 배의 용량을 가진 앰프로 맞방송을 하면서 이를 방해하는 모습도, 결국 송수근 씨가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는 것도 지켜보았고, 그리고 이 억울함을 풀 길이 없던 송수근 씨의 아내 박미경 씨가 자살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면서 송수근 씨의 팔순 노모와 회사 앞에서 1인 시위하는 모습도 지켜보았고.
그는 IMF 사태를 빌미삼아 동료들이 퇴출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낀 거야. 이 모든 일들 속에서도 죄책감을 견디며 살아왔건만, 이용당했다는 생각,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각성을 하게 된 거야. 그는 노사협의회 위원에 출마하여 동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했는데, 그를 회사 측에서는 이유 없이 간부사원인 과장으로 승진시켜 버렸고, 그는 안팎에서 애매한 처지가 된 거지. 과장이 되고 난 이후에도 그는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수없이 사진을 찍히고 감시당했다고 해. 문제가 된 그 노사협의회 선거에서도 그는 노동자 측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몸부림쳤지만, 회사 측의 집요한 방해로 결국 그 시도도 좌절되고 말았고. 그 당시에 그는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을 만큼 괴로웠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런 무서운 일을 결행하게 된 것이겠지. 그리고, 그와 함께 해고된 동료들은 지금 막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180-181쪽.
너는 혹시 삼성일반노조라는 조직과 김성환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삼성조합을 만드는 일로 십수 년간 싸워온 분이야. 물론 그 일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억울한 옥살이도 했었고.(···)
제가 삼성을 두고 ‘물신’이라고 말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은 삼성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신이 다 장악하고 있는데, 못하는 게 없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노동조합을 하나 만드는 차원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이다, 물신에 맞선 인간성의 회복이라 생각합니다.(···) 저들이 가진 가치관이란 것이 죄를 지어도 돈을 들이밀면서 이 땅 사람들을 속물화시키는 거 아닙니까.(···) 돈으로 다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으로 온 국민을 교육시켜요. ······ 지금은 내가 힘이 없지만, 다음을 위해서는 저 막강한 권력과 싸워야 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지더라도 바위에 계란을 집어 던져서 바위가 깨지진 않지만 바위에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다시 할 수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87-188쪽.
* ‘성공주의’에 잠식된 우리의 빈 영혼에 대하여 (김진호)
과연 ‘이건희 제국’이라는 표현이 걸맞아 보인다. 거대한 기업군을 거느린 삼성의 운영체계는 군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 사람에게 권력이 독점되어 있고, 가신 집단의 절대적인 충성심이 그의 권력을 철옹성처럼 비호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그이의 권력이 삼성그룹의 범위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까지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고, 심지어 불법과 탈법조차도 공적 법률기관과 언론에 의해서 정당화되고 있다. 신문 매체나 방송은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를 특별히 자제하는 편이고, 김용철 씨의 책을 펴내려는 출판사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사정에 있었다고 한다. 삼성의 위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최근 이 책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서평이 비판적 신문에서조차 게재되지 못했다는 사연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의구현사제단의 대표적 신부들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했다고 하니 종교계 역시 삼성의 영향망에서 멀지 않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14쪽.
군부 권위주의 체제는 ‘빨갱이’라는 악마가 필요했다. 그리고 민주화 시대에는 ‘반민주세력’이라는 악마가 있었다. 그런데 기업의 시대인 포스트 민주화 체제에 와서 이 악마는 사라졌다. 대신 낙오자, 탈락자, 무능력자와 같은 ‘성가신’ 존재들이 폐차더미처럼 사회의 한켠에 쌓여가고 있다. 오직 성공한 자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 성공의 정점에 삼성이란 제국의 신화가 있다. 227쪽.
* 이건희 가라사대: 국민이 삼성이다 (이택광)
삼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기본적으로 ‘동일시’(identification)를 통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에서 핵심적인 것은 삼성의 이해관계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메커니즘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라고 부르는 심리상태이다. 공공을 위해서 양심선언을 한 행위를 배신이라고 판단하는 이런 정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양심선언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237쪽.
이런 도착증이 더욱 깊어지는 지점에서 2007년 11월 6일자 <머니투데이>에 실린 다음과 같은 발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로비 증거라고 제시한 이건희 회장의 내부 지시사항 문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로비 의혹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제시된 것인데 정작 로비를 입증하기보다 이 회장의 세심한 경영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졌다. ‘모든 것을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이나 창조경영 등 거창한 화두만 던지는 경영 스타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서 이 회장은 세심한 경영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현장을 중시하고 작은 일까지 배려하는 모습이 새롭다. 또 인재 육성에 대한 관심과 먼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 한 가지 문제를 끝까지 확인할 만큼 철두철미한 모습 등도 인상적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이건희 회장에게 타격을 입혔다기보다 오히려 경영 스타일의 진정성을 재발견하게 했다는 논리가 작렬하는 기사이다. 친위대도 아니고, 이렇게 온몸을 던져서 이건희 회장을 옹호하는 모습은 ‘총폭탄’ 운운하면서 ‘중군님에 대한 보위’를 다짐하는 북한의 선전방송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242-243쪽.
김용철 변호사의 문제제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지적한 것이 그의 양심선언이다. 경제민주주의는 삼성을 살리는 길이지 죽이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로는 삼성이 ‘변화’를 주창했지만, 정작 변하기를 거부하는 이가 이건희 회장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김용철 변호사의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삼성의 전근대성을 비판해서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양심선언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244-245쪽.
* ‘포함된 자’의 운동과 포퓰리즘을 넘어: 지젝으로 삼성 읽기 (류동민)
최근 번역 출간된『완벽한 가격』(Cheap-The High Cost of Discount Culture)의 지은이 엘렌 레펠 셸은 미국에서 대형할인점의 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 “소비자는 노동자나 유권자와는 전적으로 다른 종족인 것처럼 유지되었다”(109쪽)라고 주장한다. 즉, 자본주의적 대량생산-대량판매의 구조가 확립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는 상품들은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싼 임금이나 열악한 노동계약조건 등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월마트에서 값싼 물건을 잔뜩 사는 서민 노동자들은 따지고 보면 같은 계급에 속하는 동료들의 희생을 딛고 서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이쪽(사는 쪽)에 선 노동자는 저 쪽에 선 노동자(파는 쪽)와 자신이 같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기 싶다. 적어도 돈을 지불하는 그 순간에는.
그런데 거꾸로 이는 그러한 구조가 유지되는 상태에서 값싼 상품을 소비함으로써만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열악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에 관한 상황 묘사로도 읽어야 한다.(···) ‘포함된 자’가 ‘배제된 자’를 위해 스스로의 자리를 내어 놓을 수 없는 현실과 때로는 ‘배제된 자’조차도 다른 ‘배제된 자’의 희생을 딛고 살아가야 한다는 모순은 절묘하게 얽히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261-262쪽.
* 왜 ‘삼성과 싸우는 기자’가 됐느냐고요? (성현석)
최인철 씨는 타고난 혁신가다.(···) 그는 삼성전자 재직 시절, 삼성 휴대폰에 쓰이는 ‘천지인’ 자판을 발명했다. 이런 발명으로 인해 삼성전자가 거둔 이익은 수조 원대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최 씨는 회사 안에서 보배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을 법하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회사는 발명에 대한 대가로 십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줬다.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 기여에 비해 적은 보상을 받았다면, 다른 누군가는 기여 이상의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삼성을 생각한다』에는 구조본 임원들이 후자에 속한다고 돼 있다. 총수의 사적 이익을 위해 충성하는 이들에게 보상이 집중되는 구조라는 말이다.(···) 총수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구조가 만들어지면, 실제로 회사에 기여한 이들이 억울한 대접을 받는 것은 필연이다.
(···) 회사에서 몇 차례 부당한 대우를 받고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그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직무발명 보상에 대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이다. 결과적으로 이 소송은 합의로 끝났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승진 탈락은 물론이고 고과 점수는 늘 바닥이었다. 업무도 주어지지 않았고, 회사 안에서 따돌림을 당해야 했다.(···) 결국 최 씨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275-276쪽.
* ‘블루오션’ 위에서 좌초할 삼성 (이득재)
삼성이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이건희 회장 일가, 가벌과 자본의 본질을 은폐하는 데에는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광고만 동원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 사이의 관계를 사수 언니와 신입 동생의 가족 관계로 바꿔치기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불만을 가족 간의 대화로 해소하고 불만이 공적으로 표출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민국가를 가족으로 둔갑시켜 노동자 착취를 가족이라는 판타지를 통해 소멸시키고, 더 나아가 베트남, 인도, 중국 등 아시아 전체에 삼성 가족의 이미지를 덮어 씌워 아시아 노동자의 저임금 착취 방식을 은폐하는 데 도가 튼 것이 삼성의 본질이다. 297쪽.
* 정신 차려, 삼성! (하승우)
더구나 이런 족벌들은 서로 끈끈하게 뒤엉켜 있다. 예를 들어 삼성 그룹의 가계도를 살펴보면, CJ그룹, 새한그룹, 한솔그룹, 신세계그룹이 한 가족이고, 사돈까지 따지면 대상그룹, LG그룹,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한가족이거나 가족이었다. 이처럼 한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들이 한가족이다. 315쪽.
그런데 오랫동안 지배해 왔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매우 강하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우리가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매우 강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니 그냥 참고 살아야 할까?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인류 역사가 남겨 놓은 최후의 무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불매운동이다. 나 혼자의 힘은 약하지만 우리들이 뭉치면 그 힘은 강해진다. 한국에서는 지금껏 이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무기이기에 한국의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재벌들은 불매운동을 어떻게든 막으려 든다. 316-317쪽.
죄를 지은 재벌가의 최고 경영자들은 제법 많다.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배임과 횡령 혐의로,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와 부당내부거래 혐의로, 두산그룹의 박용성 회장은 분식회계와 횡령 혐의로, 성원그룹의 전윤수 대표이사는 분식회계와 사기대출 혐의로, 환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은 보복폭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조세포탈과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은 형을 받자마자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회사’로 복귀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거의 뉘우치지 않는다.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여론이 들끓으면 반성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선심을 쓰듯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설레발을 친다. 그러다가 여론이 좀 잠잠해 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복귀를 준비한다.(···)
이런 재벌 회장님들의 복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되고 서글픈 코미디를 재현한다. 이건희의 경우, 말도 안 되는 재판으로 떼어낼 수 있는 죄를 다 떼어내고도 ‘징역 3년형’을 받은 범죄자가 아무런 사회적 논의나 합의 없이 사면되고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경영 과정에서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세금을 몰래 빼돌린 사람이 경제 위기와 경영 리더십을 핑계삼아 복귀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걸린 심각한 경제 위기가 그들에게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있게 복귀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반성 없는 용서와 거짓된 약속이 반복되고 있다.(···) 범죄자들이 기업을 운영하고 국가는 이를 사면하고 시민들은 이를 묵인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 2010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건희가 범죄를 저질러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며 공개 문책하고 5년 동안 분과위원회에 참여할 권리를 정지시켰다. 나라 밖에서는 그 범죄를 비판하며 징계하는데, 나라 안에서는 그동안 나라 경제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해 죄를 사면하고 경제와 나라를 살리는 중책을 맡겨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세금을 빼돌리고 부당거래를 한 사람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다는 이 무슨 헛소리일까? 재벌의 말뜻처럼 그들은 자기 배를 불리려고 하는데, 순진한 시민들은 그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317-318쪽.
캐나다 언론인 나오미 클라인은『쇼크 독트린』이란 책에서 IMF 당시 한국 정부가 벌인 금모으기 운동을 ‘저질 게임쇼’라고 지적했다. 1997년 한국 정부는 경제정책을 바꿔 다국적기업들이 한국 경제를 마음껏 유린하도록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실업률은 2년 동안 3배나 늘었고 많은 산업 시살과 노동력, 자원이 외국 회사로 넘어갔으며 자살률도 2배나 증가했다. 뼈 빠지게 일해 세금을 내고 어렵게 장만한 금붙이까지 바친 사람들은 회사에서 쫓겨났고, 그들의 세금과 피땀으로 만든 공적 자금은 재벌들의 배를 불렀다. 그러니 그것을 저질 사기극이라 부르지 않으면 다른 무엇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이런 사기극의 꼭지점에 바로 삼성이 있다. 319쪽.
정상적이라면 삼성전자의 노동자들이 부패한 경영자의 복귀를 반대해야 옳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불매운동은 이런 새 역사를 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공개적으로 특정 상품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그 상품을 사지 말자는 운동을 벌이는 불매운동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벌들을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벨기에 브뤼셀의 학생들은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스포츠용품 회사들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으로 제3세계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깨끗한 옷 입기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6천 켤레의 신발을 모아 회사에 반납했고, 이 소식을 들은 교회와 시민단체, 심지어 정당들까지 운동에 동참했다. 결국 이 회사들은 더 나은 노동조건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경제활동의 주체는 노동자와 자본가라고 알려져 왔지만 생산된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중요한 주체이다. 하나하나 떨어진 소비자는 힘이 없지만 소비자들이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면 그것은 경제를 바꾸는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한다. 323-324쪽.
삼성에 대한 불매운동은 그룹의 해체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바로잡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건희 회장과 그의 가신들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삼성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 326쪽.
* 제왕적 경영에서 시민 경영으로 (김상봉)
삼성불매운동이 삼성의 노동자들과 모든 관련된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는 운동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군부독재가 무너져도 군대는 멀쩡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으니 염려 마시라는 말도 보태고 싶다.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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