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세대

[밑줄]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두괴즐 2011. 6. 21. 15:31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저자
우석훈 지음
출판사
레디앙 | 2009-09-3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석훈이 제안하는 88만원 세대를 위한 그들의 혁명, 그들의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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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우석훈,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프롤로그


p. 23-24


 시대마다 그 시대에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약한 고리’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달랐다. 예수 시대의 약한 고리는 과부와 고아들이었다. 가부장이 중심인 농경 시대에 ‘아버지’라는 것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 시대도 비슷했다. 초기 불교 경전인 <<중아함경>>에서 부처도 과부와 고아를 잘 챙기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한국에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약한 고리는 20대, 여성 그리고 지방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65세 이상의 노인들 역시 약한 고리겠지만, 그래도 노인들은 투표할 때는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집단이고, 이런 이유로 자신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어느 정도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힘을 쥐고 있는 건 은퇴자 집단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높은 투표율로 자신들의 힘을 증명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지금 한국의 20대는 적어도 투표로 무언가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도력이 약할뿐더러, 자신들의 리더를 내세울 수 있는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p. 24


 북유럽에서는 노동에 관한 한 법보다 앞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의 원칙’을 사회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이 같으면 임금이 같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 원칙대로 움직이는 스웨덴 같은 나라를 우리 현실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p. 26


 나는 한국의 20대가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는 한국에 비하면 훨씬 합리적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한국보다 더 민감하게 느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하는 일본의 20대들에겐 자신들만의 노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죽겠다.”며 길에서 소리치고 외치는 것은 일본의 20대다. 일본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서 책을 출간한 아마미야 카린이나 마쓰모토 하지메 같은 20대 대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특히, 5월 1일 노동절에 인디 메이데이라는 형식으로 이들이 이끄는 20대 수천 명이 동경 거리에서 행진을 하면서 ‘프레카리아트1) 운동’의 저변을 넓혀 나가고 있다. 그 바람에 경제관료를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이 일본이 종신고용제를 철회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소견을 밝히기도 한다. 비정규직 사람들이 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하면서 총리 관저로 직접 찾아가는 일도 있었다.

 이런 흐름에 비하면, 한국은 조용한 편이다. 대부분 20대 특히 대학생들은 아직까지 ‘침묵하는 다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답답하지만, 가장 답답한 것은 아마 본인들일 것이다. 구조 앞에서 개인은 늘 나약하다. 그러므로, 구조에는 구조로 맞서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그들이 움직이거나 기댈 구조가 없다.


p. 28


 그보다 지금 20대는 한번도 운동이 사회활동의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못하고,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p. 31


 혁명에는 두 종류가 있다. 러시아 혁명처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혁명이 한 종류고, 68로 상징되는 세계를 뒤엎었던 상상력의 혁명이 또 한 종류다. 물론 그 어느 쪽이라도 ‘혁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상의 클라이맥스다. 만약 최고의 혁명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꼽으시겠는가? 레닌인가, 체 게바라인가, 모택동인가. 혹은 비운에 쓰러져 간 녹두장군 전봉준을 꼽으시겠는가.

나라면 주저 없이 1971년에 죽은, ‘코코'라는 애칭으로 불린 가브리엘 샤넬을 꼽겠다. 최고의 명품 브랜드 샤넬을 만든 바로 그 샤넬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샤넬은 제조 원가와 상관없이 터무니없이 고가로 팔리는 브랜드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샤넬은 여성을 해방시킨 전사였다. 그녀는 여성들의 몸을 옥죄던 속치마 페티코트와 코르셋에서 여성들을 해방시켰고, 샤넬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장식을 배제한 활동성 높은 옷을 여성들이 입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남자들의 정치적 혁명은 역사 속에서 아픔만을 남겨 준 채 사라졌지만, 샤넬이 이뤄 낸 혁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샤넬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지 지금 우리는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여성용 바지 정장을 비롯해서 카디건에 이르기까지, 이런 의상 양식들은 샤넬이 혁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창조해 낸 일종의 문화 운동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성이 재산상속권을 갖게 된 지 1세기도 안 되고, 투표권을 갖게 된 건 50년도 안 된다. 스위스에서는 1971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바로 샤넬이 죽은 그해, 비로소 스위스 여성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직접민주주의의 투표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샤넬이 얼마나 선구적으로 여성들을 해방시킨 존재인가.

 우리는 그냥 명품이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맨 앞에 서서 패션 디자인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혁명가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위계에서 개인을 풀어 주려고 했고, 물질에서 표상을, 남성에게서 여성을 독립시키고 싶어 했다. 그리고 성적 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운동의 맨 앞에 서 있기도 했다.(···)

 나는 한국의 여성들 혹은 디자이너 중에서 샤넬 같은 이가 나오기를 고대한다. 샤넬의 옷을 사 입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옷을, 그 새로운 양식을 디자인했던 샤넬 같은 사람이 나오기를 아주 간절히 바란다. 샤넬 복제품이 아니라 스스로 샤넬이 되는 디자이너가 등장하기를, 여성들이 페티코트를 벗고, 바지를 입고, 간편한 슈트 정장을 입게 새로운 변화를 창조해 낸 그런 혁명가들이 나오기를 말이다.


p. 33


 <<88만원 세대>> 상징은 두 가지였다. 바리케이드와 짱돌. 조금이라도 역사를 공부한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바리케이드는 프랑스혁명을, 짱돌은 87년을 상징한다. 기계적으로는, 지금 한국의 20대가 자신들을 지켜 줄 바리케이드와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전진’하는 데 필요한 짱돌을 가지기 바란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실제 담고 싶었던 내용은 세계사에서 근대국가를 형성할 때 출발점이었던 프랑스의 바리케이드와, 한국에서 80년대에 ‘반봉건’ 국가를 변화시키는 상징 수단으로 등장했던 ‘짱돌’을 결합해, 세계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의식의 68혁명이 되면 좋으리라 생각했다.


p. 34


 책을 읽은 많은 대학생이 나에게 ‘짱돌’을 누구에게 던져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대상을 제대로 지목하지 못하면, 나에게라도 던질 기세였다. 물론 나에게 던져 봐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의 질문과 분노는 정당하고, 당연하다.

 (···) 결국 내가 발견한 것은 ‘혁명의 파토스’가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아직 없다는 것이다. ‘혁명’은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 낸 말 중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많은 상상력을 집약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지금 20대는 그 말을 감당해 낼 힘이 없다. 그들은 지나치게 겁에 질려 있고, ‘쫄아 있다.’(···)

 지금 한국 대학생을 딱 두 부류로 나눈다면, ‘절망하는 존재’와 절망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존재’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절망하는 존재’들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가 지금 절망적이어서 이해가 된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절망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다. 그러나 절망도 하지 않는다면, 상황 인식 능력이 지나치게 떨어진, 그야말로 ‘절망적인’ 존재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대학생들이 이렇게 절망도 하지 않는 절망적인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대부분 무엇이 문제인지는 안다. 다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뿐이다.


1장 신자유주의의 자식들


p.39


 이 시기를 경제학자들은 ‘케인스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 목표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었다. 그러다 보니 국가가 시장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내세워 예산을 조정하고, 복지 장치들을 만들었다. 즉 국가가 경제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했으며, 각 국은 서로 다른 형태로 국민들에게 어떻게 ‘퍼 줄’ 것인지를 고민했다. 박노자의 설명을 빌리면, 풍요로운 시대였는데도 많은 국민은 사회주의를 선호했고, 이 때문에 당시 북유럽의 우파들은 국민들이 정말로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더 많은 복지 정책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 시대 영웅들은 이런 일들을 해낸 관료와 정치인들이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칭송받는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대표적이다.


p. 42


 그러나 군인에서 법조인으로 이어진 케인스 시대는 한국에서도 90년대 후반부터 해체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90년대 초· 중반, 미국 정가에서 유행했던 일련의 시장 근본주의가 시대적 대세가 되었다.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의 89년 저서에서 처음 등장한 워싱턴 컨센서스란 말은 이후 세계화와 금융화를 중심으로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데, 이러한 흐름을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한다.(···)

 위싱턴 컨센서스로 인한 시장 근본주의, 세계화 그리고 금융화라는 서로 다르게 전개되는 이 세 가지 흐름이 90년대 초반, ‘세계화 4거리’에서 합류해서 한 방향으로 진군한다. 그리고 그 길 위로 다국적기업들이 달려간다. 이렇게 해서 90년대 중·후반을 거쳐 다국적기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p. 46


 신자유주의를 경제 운용 방식으로, 그러니까 거시적으로 분석하면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조금은 다른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 케인스 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경제에 개입해서라도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그리고 코민테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썼다.(···)

 흔히 케인스의 경제 체계를 ‘수정 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 주기 위해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본주의에는 없던 많은 복지와 후생 장치들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복지와 후생 장치들의 탄생 배경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복지 제도,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틈만 나면 해체하려고 하는 의료보험 제도만 해도 박정희 때 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확대 실시되었다. 한국 우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이런 복지 제도들은 실은 대부분 군사정권이 민중들에게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 특별한 시장 근본주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90년대 초·중반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로서는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약자들에겐 잔인한 경제 시스템이다. 그들이 탈출구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무너져, 국가로서는 굳이 그들에게 뭘 더 해 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집회, 시위 등 내부 약자들의 저항만 해결하면 되는 것이다.


p. 47-48


 지금의 20대가 처음으로 만난 사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시장 근본주의가 절정기로 치닫던 시기였다.(···) 이런 현상을 한마디로 보여 주는 것이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다.

 (···) 미시적으로 상황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지난 10여 년간 자본주의 역사에서 어떤 선진국도 겪지 못했을 정도로 지독하게 신자유주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교육이 낳은 승자독식 체계와 학벌주의 같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p. 49


 실제로 국민경제가 신자유주의적이었는가와는 상관없이 지난 10여 년간 한국인들은 충분히 신자유주의적인 질서에 순응하며, 시잔 근본주의를 세상의 근본 원칙으로 내면화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이 마음도 신자유주의, 몸도 신자유주의인 시대를 보냈다.

 이렇게 신자유주의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은 원인이 모두 ‘교육’에 있다고 누가 말한다면 정말로 그렇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의 실제 시장은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이다. ‘지대추구이론2)’도 아주 잘 먹힌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선 자신의 사업을 넓혀 나가려면 힘깨나 쓰는 사람을 친구로 두면 된다. 시장의 공정한 질서와 아무런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나 아무도 세상이 이렇다고 설명하지는 않는다. 사교육을 통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체득한 사람들이 ‘더 많은 학원비’가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 누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어?

 (···) 불공정한 경쟁을 받아들이고 그 경쟁의 수혜자가 되려던 것이 한국에서 진행된 ‘마이크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지금 20대의 맨 앞에 서 있는 이른바 엘리트들, 스카이 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먼저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이들이다.(···) “경쟁해서 친구를 이기면 천국이 펼쳐진다.”는 단 한마디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 명씩 걸어가는 육화된 신자유주의 이념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 그러나 그 ‘신자유주의’들도 실은 불편하고 외롭지 않을까.


p. 54


 사교육 선생님들이 매일 주입해 준, 열심히 공부하면 잘살 수 있다는 마조히스트적인 애정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 죽도록 공부하면, 잘될 거야, 넌 잘났으니까···.


 (···) 지금 대학생들이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재테크에 관한 책들을 집어 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한 문장을 듣기 위해서는 아닐까. 이들에게 “너만 잘하면 돼!”라는 말 대신에 “곰곰이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거나 “이것은 구조의 문제”라고 말한 이들이나 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들은 외롭다. 그 이유도 알고 있다.(···) 그러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말해 줄 수가 없다. 그건 존재론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은 경쟁과 평가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마지막 5분 요약, 암기 그리고 그걸 통한 평가가 바로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이 친구들은 몸 자체가 신자유주의다.(···) 그들은 경쟁해서 이길 때에만 비로소 존재하며, 답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오픈 퀘스천’ 앞에서 끝없이 외로워진다. 그러므로 이들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이 아닌가.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자식들, 우리는 외로워요.

우리는 바리케이드를 칠 줄도 모르고, 짱돌을 던질 줄도 몰라요.

경쟁을 시켜 주세요 그리고 욕이라도 해 주세요. 그러면 잠시 열심히 살지도 몰라요.


p. 63


 이런 현시점에서 객관적인 사실은 대학생이든, 대학을 졸업한 취업 준비생이든,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사회에 뛰어든 20대든, 우리 사회에서 20대의 존재감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권을 비롯해서 20대들에게서 위협감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만약, 20대가 집단적으로 무엇을 할 것 같으냐고 묻는다 치자.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50대도 알고, 40대도 알고, 당사자인 20대들도 알고 있다. 심지어 지금의 10대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것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이다.(···)

 어쨌든 한국의 20대들 특히, 대학생들 속에서 집단적인 변화가 당장 생기지 않으리라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에서도, 설마 ‘그들’이 대규모로 투표장에 가는 일이야 벌어지겠느냐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니 만만한 게 20대다.(···) 한국에서 존재감과 존재가 주는 위협감은 여전히 광장에서, 오프라인에서 그리고 투표장에서 생겨나는데, 이런 힘의 근원들이 지금 대학생들에게는 좀 낯설다.


p. 71


 ‘간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이 20대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명랑함. 그렇다고 이들이 이명박이 싫다고 바로 민주당으로 가거나, 민주노동당 아니면 진보신당 같은 데로 관심을 돌릴까? 그럴 리가 있나. 많은 20대들에게 ‘간지’는 취향이 아니라 존재 이유다.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이 독특한 감성. 그것이 앞으로 펼쳐질 다음 세대들의 존재론 아니겠는가. ‘소녀시대’ 노래를 들으면서 화려함을 꿈꾸지만, 정작 주머니는 빈털터리인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20대들 속에서 혁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레닌과 같은 지도자도 없고, 68혁명 때의 세기적 사명감도 없지만, ‘아름다움’을 가슴에 간직한 대학생들 속에서 서서히.



제2장 진(陳)짜는 법


p. 85


 어쨌든 지금 20대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이제 자기들만의 진이 필요한 순간이 온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게 어려운 것은 이른바 ‘스펙 쌓기’라고 하는, 강준만식 표현을 빌리면 ‘각개약진 공화국’의 바고 그 각개약진이, 대학생들이 지금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선택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명박과 그의 동맹군에게 각개격파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고용문제에서 20대는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고용 문제만은 아니다. 세입과 세출이라는 국가 재정을 활용하는 방안에서 20대를 철저하게 고립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진을 가질 것인가. 그러나 이걸 누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 것인가?


p. 90


 스위스를 봐라. 대통령이 누군인지도 모르는 국민이 태반이지만, 국가의 중요한 많은 일을 지역 혹은 지역보다 더 작은 단위에서 토론해서 직접민주주의로 해결한다. 제도가 아니라 문화로, 지시가 아니라 상식으로 더 많은 것이 결정된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이나 미국과의 FTA 체결 혹은 유럽연합가입 같은,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들은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대체적으로 프랑스처럼 전통적으로 중앙형 모델이 강했던 국가들도 지난 20~30년을 거치면서 분산형 직접민주주의 모델로 많이 넘어갔다. 이런 사례에서는 수평적 리더십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많은 사람이 20대는 민주주의도 잘 모른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리더십 자체가 변하는 중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보기에 따라서 한국의 20대는 전혀 소통할 수 없고, 협력할 줄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그런 그들 속에 이미 전혀 새로운 형태의 리서십이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p. 111


지금의 20대가 생각하는 자신들과 가장 비슷한 이미지는 저격수가 아닐까 싶다. 저격수는 일단 자리를 잡으면 이틀이고 사흘이고 계속 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저격에 성공한 즉시 자리를 옮긴다. 위치가 파악되면 상대편 저격수에게서 공격을 받는다. 저격수는 사병은 쏘지 않고 하급 장교 이상을 쏘는데, 자리를 잡고 기다린 시간의 기회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서 끝없이 기다리고, 기다린 시간을 보상해 줄 수 있는 대기업이나 관공서 같은 곳이 아니면 취업하지 않으려는 지금 20대의 모습은 목표물을 끝없이 기다리는 고독한 저격수가 떠오르게 한다. 죽도록 혼자 열심히 해서 저격에 성공한 저격수처럼 삼성에 취직하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그 단 한 방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청춘을 바친다. 

        

p. 114


 그러나 대학에서는 이런 형식적인 말조차 없다. 그저 죽이고,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그야말로 원초적인 생존 본능만 남아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얘기하기조차 민망한 불신과 패배감 속에서 “한 방이면 돼!”를 외치며 혼자 뛰어다니는 고립된 저격수들만이 대학 안에 득시글하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죽었다.


p. 115


 지금 20대들이 ‘관계의 결핍’에 빠져 있다고 진단할 때, 그 반대의 상태가 새롭게 진을 만들어 내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질투와 우정’이라는 두 방향에서 지금의 20대는 질투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때문에 20대들이 진정으로 ‘우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영웅이 등장하지 못했고, 20대가 20대를 지지해 줄 수 없었던 것 아닌가. 답이 나오지 않는 경쟁에 내몰린 20대들은 외롭고도 외롭다. 관계의 결핍에 빠진 이 20대들이 다양한 관계망을 회복하게 해 주는,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다시 만들게 하는 것이 20대를 위한 진 짜기가 될 것 같다. 이건 신자유주의 절정기에 사람들이 상상했던 “너만 잘하면 된다.”는, 정말 지독할 정도로 종교적인 믿음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p. 121


 한국에서 20대 당사자 운동이 중앙형 조직이든 개별적인 별도의 조직이든 조직을 갖추고, 시민운동으로서 회원이 1만 명이 넘어서는 순간 혹은 언젠가 1만 명이 넘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는 순간, 장담하건대 한국에서 혁명보다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바꾸고,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뒤엎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 형식의 경제가 자리 잡는 큰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자본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던 관계를 역전시킬 전환점은 결국 20대 당사자 운동의 회원이 1만 명을 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어느 정도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p. 122


 '정치운동‘은 시민운동의 영역도 포함해서 결국은 정당이라는 장치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흐름을 말한다.(···)

 그런데도 내가 진보 정당들을 지지하면서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은 까닭은, 이게 더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보 정당의 역사가 바로 내가 살아온 역사라서다. 그러므로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과 같은 정치 바깥에 있는 운동들도 분명히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변화를 위해서든 아니면 국가권력을 효율적으로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운동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 125-128


 지금 한국의 정치에서 가장 잘못된 점은,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상적인 경로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방송인, 학자 혹은 고급 공무원으로 유명해졌다가 단번에 국회의원이 되거나, 많은 돈을 지키려면 정치적 권력이 필요해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다. 이런 구도에서 20대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고, 그들 자신도 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20대 현실에선 두 가지 조건 다 갖추기 어렵다. 누가 그렇게 유명해질 수 있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는가.(···)

 (···) 20대들의 정치운동은 지역에서, 작은 공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당 속에 들어가서 말이다. 20대들이 실제로 지역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면서 그 지역 20대들과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안정적인 방향 같다. 지역에 출마한 20대들이 그 지역 또래들의 지지를 받아 표를 얻는 길이 열린다면, 20대 당사자 조직을 꾸리는 가장 빠른 방식은 정당을 활용하는 것이다.(···)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꿈꾸어 온 이상적인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20대는 정당을 활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광장을 활용하는 법’보다 훨씬 요긴하게 20대들이 진을 갖는 데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p. 130


 비정규직이 점점 늘어나는 한국 현실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일본의 프리터 노조다.(···)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한국에서 지역 단위의 프리터 노조를 결성하는 게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다. 과거에는 최소 조합원 수 같은 규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노조원이 2명만 돼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다. 기존 노조가 없는 단위 사업당과 지역에서 얼마든지 노조를 만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비록 전체 알바는 아니지만, 수만 명의 프리터 노동자들이 지역 일반노조 형식으로 어느 정도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고바야시 다키지가 1929년에 쓴 소설 <<게공선>>3)이 다시 출간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화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화제는 이 책의 영향으로 20대 수만 명이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고, 또 프리터 노조에도 적극 가입해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그런 누구의 희생 없이도 놀이같이 즐기면서 자신들의 노조를 만들어 냈다.



3장 날자, 날자꾸나!


p. 139-142


 (···) 당사자 운동의 중심이 된 학교는 상지대다.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도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원주를 꼽겠다. 생협을 비롯해 신협, 의료생협까지 이젠 제법 알려진 대부분의 대안경제 모델이 원주에서 나왔다. 이런 지역 공동체에 생기와 활기를 지속적으로 불어놓어 주는 이들이 바로 상지대 학생들이다.

 (···) 생태와 젠더 그리고 문화라는 가치들은 분명히,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긴 한국 사회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아 주는 한편, 여러 다른 가치가 사회의 맨 앞으로 튀어 나오게 할 것이다. 이런 조짐은 지역에서, 30~40대 여성들에게서 그리고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국의 20대 안에서 보이고 있다. 생협과 사회적 기업 혹은 ‘소셜 벤처4)’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러한 대안경제의 흐름은 그야말로 장강의 물줄기가 바뀌듯이 밑에서부터 조용히 그러나 매우 빠르게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p. 143-144


9차 개정한 87년의 헌법은 국가의 중요한 일을 국민투표로 결정할지 말지를 대통령이 결정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로 인해 지난 20여 년간 한국은 한번도 국민투표를 실시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 뻔한 일을 투표로 결정하는 대통령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헌법은 선거라는 대의민주주의와 국민투표라는 직접민주주의 장치를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 정치인을 뽑는 선거에만 익숙해져서 직접민주주의를 연습하고 그것에 익숙해질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p. 148-149


 한국 대학생들이 68세대만 못한 것이 아니라 지배자들이 지나치게 무식해 68 때처럼 고상하면서도 문화적인 상상력이 넘치는 혁명을 못하는 것이다. 촛불집회를 봐라. 68 때도 그렇게 많은 이가 모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집중적으로 오래 집회하지도 않았다. 촛불집회는 규모와 기간 면에서 결코 68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아무 변화가 없을까. 이것은 이쪽 문제가 아니라 저쪽 문제다.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을 독해 못할 만큼 저쪽이 무식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68 때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차티스트 운동 방식으로 사회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p. 170


 지금의 ‘방살이’들이 방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고, 거기서 다시 사회 혹은 동료들 속으로 돌아오는 일이 벌어지면 그게 바로 탈신자유주의 시대 공동체를 복원하는 첫 출발이 되리라는 점이다. 즉, 혼자 고독하고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어쩌면 대한민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p. 176


 내가 한국 20대들과 만들고 싶은 세계는 소설책도,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마음껏 꿈꾸며, 그것을 실현해 먹고살 수 있는 곳, 누구도 누구 위에 올라서거나 누구를 불행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소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최소한 20대들이 창문이라도 달린 방에서 살고, 지하나 반지하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살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전 세대들처럼 인상 구기면서 살지 않고, 명랑하게 웃으면서 늘 재밌는 일들만 하면서 살아가게 해 주고 싶다. 배고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잔인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충분히 마음을 나누며 사는 삶.


 


 


1) 불안정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조합어로,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란 뜻. 신자유주의 경제로 인해 불안정한 고용, 노동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 사람들과 실업자를 아우르는 말.

2) 사회의 어느 특정 부문에 돈이 많이 들어가면, 어느 순간 그 부문은 본래의 임무보다 자기 활동 자체를 늘리기 위한 일들에 매진한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권익을 지키기 위한 일들로 이어진다는 것. 우리는 공무원들이 국가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믿지만, 많은 경우 공무원들은 국가가 아니라 자기 부처를 키우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자기들이 차지하고 있는 부처와 자리가 일종의 ‘지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3) 게잡이 배를 무대로 가혹한 노동 현실에 신음하는 노동자들 모습을 그린 소설. 공산당원이었던 작가는 고문 후유증으로 1933년에 숨졌다.

4) social venture, 사회적 가치와 영리를 함께 추구하는 기업. 예를 들면, 다 쓴 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여기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