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10824102600§ion=04
미친 교회, 하나님과 대적하다
[김민웅 칼럼]예수의 오병이어 기적은 전면 무상급식 사건
기사입력 2011-08-24 오전 10:56:51
하나님의 은혜는 돈을 지불하고 받은 대가?
대형교회들이 무상급식 전면 시행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어떤 경우에는 문자까지 보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곽노현 서울 교육감"을 물리쳐야 한다고 독려하고 나섰다. 교회가 할 짓이 아닌 걸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저지르고 있다.
교회가 무상급식 전면시행을 반대한다는 것은 우선 자기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애초의 예수 공동체는 무상급식 공동체다. 예수가 들판에서 5000명 이상을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으로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은 무상급식 전면시행의 원본이다. 아닌가? 돈 받고 나눠 주었는가?
부활한 예수가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아 구워서 제자들에게 먹이는 장면에서 한 마리당 얼마씩 받고 먹게 했는가?
성찬식은 또 어떤가?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자신을 기억하게 한 사건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자신을 나누어 준 예수의 사랑과 희생의 제의다. 여기에도 무상이 근본정신이다. 기독교의 신앙고백, 그 중심에는 나는 아무 기여를 한 바 없으되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와 축복으로 산다고 하지 않는가?
전도와 선교의 밑바닥에는 그래서 내가 거저 받은 것, 거저 나누어준다는 것 아닌가? 은총은 값이 매겨져 있지 않다.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할 때 그걸 돈 받고 파는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서로 섞여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부자는 돈을 내고 가난한 사람들은 무상인가? 그래서 돈을 내는 부자들에게 가난한 이들이 고마워하면서 밥을 먹는가?
예수는 식탁에서 서로 상석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비판했는데 그건 무얼 뜻하는가? 먹는 자리에서까지 높은 자, 있는 자와 낮은 자, 없는 자로 자리를 나누어 차별적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에 분노했던 것이 아닌가? 이게 만일 아이들의 식탁에 적용된다면, 돈 내는 아이들과 돈 안 내는 아이들 사이의 차별적 경계선에 대해 교회는 뭐라고 설교할 참인가?
초대교회의 모습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의 44절에서 45절은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은 채 자신을 것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함께 살아갔다는 것 아닌가?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초대교회가 살아남아 신앙공동체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근본에는 기독교 신앙의 원칙에 따른 이 무상의 분배, 나눔, 공동의 소유가 핵심이었던 것 아닌가? 그것이 초대교회를 결속하게 했고 돈과 권력이 판을 치는 세상과 대조되면서 가난한 이들과 깨우친 이들의 희망이 되었던 것 아닌가?
하나님 나라는 유상급식의 나라인가, 무상급식의 나라인가?
예수가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는 유상 급식의 나라인가, 아니면 무상급식의 나라인가?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지 않는가? 교회는 도리어 무상의 원리가 최대한 이 사회의 중심철학이 되고 필요한 이들이 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길을 앞장서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정부가 못하겠다면 우리라도 하겠다, 이게 교회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밥 퍼"의 최일도 목사가 돈 받고 밥 퍼주었는가?
그런데 거꾸로 무상의 원리를 공격하고 무상의 원리가 확산되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말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무상의 은혜를 무한히 주시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 아닐까? 도대체 누굴 보고 하나님과 대적한다고 하는 것인가?
ⓒ프레시안
한편, 어느 대형 교회가 발신지로 지목되고 있다는 문자 내용은 그것을 읽는 이로 하여금 기겁하게 한다. "급합니다"로 시작되는 이 문자의 논리는 이렇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곽노현 교육감의 <무상급식 전면시행>을 이번 8.24 주면 투표에서 막지 못하면 이 나라와 청소년들 영혼 망치는 <학생인권조례>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상급식 전면시행 반대가 1차전이라면 학생인권조례 저지가 2차전이라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통과의 결과는 (1) 미션 스쿨의 예배와 종교교육 무력화, (2) 동성애 급증 (3) 초중고생의 정치활동 허용으로 시위대의 전위부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작 무상급식 전면시행의 문제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은 채, 학생인권조례가 발동되면 애들 다 버리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일치단결해서 막자는 것이다. 주민투표 독려나 거부는 모두 민주주의 사회에서 각자의 권리에 속하는 사안이니 이걸 가지고 자기 나름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주장의 근거가 엉터리라면 이건 당연히 문제로 삼아야 한다.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는 서로 다른 사안인데 마치 두 가지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학생인권조례안에서 뭐가 그런 식의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인지 근거를 밝히지도 않았다.
진짜 적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문자에 드러난 근본발상이 독선적이고 왜곡되어 있다.
우선 종교교육은 어떤 경우에도 강제적 요구가 될 수 없다. 당사자의 선택이다. 그걸 강요한다면 인권침해다. 동성애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성정체성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다. 또한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동성애 급증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는 어떤 경우에도 성립하지 않는다. 초중고생들의 정치활동허용으로 시위대의 전위부대가 된다는 것은 우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인격과 판단을 모독하는 행위다.
일부 대형교회는 점차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미 미친 지 오래일 거다. 권력과 돈과 신도 수와 교회건물의 크기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 이 땅에서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무상이다. 하나님의 축복도 무상이다. 예수가 처형당한 십자가의 희생도 무상이다. 내가 기여한 바가 없다. 바로 그 무상의 원리 위에 세워진 예수 공동체가 이들 대형 교회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진짜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이 정도면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거대한 성채가 되어버린 교회를 보고 제자들이 그 규모와 화려함에 경탄을 하자 예수가 한 발언이 있다.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리라." 예수의 몸으로 다시 세워지는 교회가 아니고서는 이 나라의 교회도 맛을 잃은 소금처럼 길에 버려질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은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남들보고는 애들 밥 한끼 먹이려는 걸 가지고 돈 내라고 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무상, 너는 유상." 아. 이 진상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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