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밑줄] 우석훈,『디버블링』

두괴즐 2011. 8. 4. 12:14



디버블링

저자
우석훈 지음
출판사
개마고원 | 2011-02-2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토건 경제의 생태적 전환을 위하여!디버블링은 토건 경제가 클라이...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밑줄] 우석훈,『디버블링』



[밑줄] 우석훈,『디버블링』, 개마고원, 2010.



1장 생식의 위기, 가족의 위기


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한한 부와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지구는 유쾌함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잃게 될 것인데, 이 과정에서 인구는 증가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삶이 더 낫거나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정체 상태에 도달하기 오래전에 우리 스스로 정체 상태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번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정체 상태로 표현되든 혹은 또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든, 어쨌든 존 스튜어트 밀은 우리가 지구를 완전히 소진시켜 더 이상 경제성장을 계속 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오기 ‘훨씬 전에’ 또 다른 형태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간들이 스스로 경제 운영 방식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89 (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생태학 용어를 사용한다면, 한국 20대의 불행은 중산층의 재생산 실패가 진행되는 바로 그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부모는 가난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2세는 평균적으로 가난하게 될 것이다. 145



2장 토무현, 토명박, 토근혜, 그리고 토건의 완성


청계천은 자체적으로 회복 가능한 생태계가 아니다. 청계천은 한강의 물을 펌프로 역류시켜 동아일보사 앞의 수도꼭지를 통해서 흘려보내는, 일종의 거대한 어항이다.(···) 어항의 물 관리와 같은 방식인데, 핵심 설비는 어항과 마찬가지로 물과 모터다. 이 모터는 영구 수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2년에 한 번은 유지 보수를 위해 하루 정도 정지시키고 관리해야 하는데, 그날 우리는 돈과 시멘트로만 구성된 청계천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154


 투기가 종료되는 시점, 즉 투기의 영속성의 신화가 무너지는 순간, 투기는 바로 그 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50대가 40대들에게 넘긴 아파트를, 40대는 다시 30대들에게 넘기려고 한다. 재개발을 통해서 더 큰 평수를 획득한 앞 세대는 자신들의 것을 다음 세대에게···. 그러나 30대들이 넘기려고 하는 그 아파트를 받아줄 20대가 없다.(···) 한국에서 디버블링(debubbling)을 격발시키는 존재가 바로 이 탈토건 1세대들이다. 그들이 더 이상 다음번 아파트를 받아줄 수 없다는, ‘투기의 영속성’의 종료를 사람들이 이해하는 순간, 투기는 끝이 난다. 191


 일본은 하토야마 내각의 출범 이후 몇 가지 놀라운 조치들이 매우 신속하게 벌어지는 중이다. 거의 마무리 단계인 공사들까지도 재검토를 위해서 일단 세워놓은 긴급 조치도 놀라웠고, 이렇게 절감된 예산을 중고등학교의 교육이나 사회복지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적 발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기로 한 것도 놀라웠다.(···) 이러한 일련의 일본의 정책 중 나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건 유로도로를 무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만약 고속도로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도로를 무료로 만들면 도로 신축의 책임을 진 정부는 정상적으로 수요를 예측해서 도로를 신설하게 할 것이고, 지금과 같이 민자 유치라는 명목으로 무조건 도로를 짓게 하고, 적자인 부족분을 정부가 메우는 황당한 민자 사업은 사라질 것이다. 226


3장 2012년 대선과 탈토건의 정치경제학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지금과 같이 비정상적인 고가가 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을 압축시켜서 표현하면, 대학이 건물 짓고, 외지에 땅 투기하는 돈을 지금까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대학은 토건을 하고 싶어도 토건할 돈이 없는데, 그러니 자연스럽게 ‘에코 캠퍼스’와 문화적 리노베이션에 눈을 돌리게 된다.(···) 토건질로 지은 건물에 외부 상업 자본을 끌어들이니, 학교에서 먹는 식사나 차에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돈을 지불하는 데다가, 여기에 프랜차이즈 브랜드 사용에 관한 로열티까지 학생들이 지불하는 셈이다. 보조금은커녕 외부 로열티가지 지불하면서 커피 마시는 대학생, 이게 우리의 토건적 현실이다. 265


 유럽의 국립대학의 정식 교수는 공무원 신분인데, 정년이 보장된다. 보통 40대 중반에서 후반 정도에 일종의 국가고시를 통해서 교수가 되는데, 비슷한 나이의 한국 교수들에 비해서 절반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 움베르트 에코, 이런 사람들의 대학 월급을 물가를 감안해서 비교해보면 TV토론에 나오는 우리나라 일류급 교수 월급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유럽 사회는 이 사람들에게 명예를 통해서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대신 경제적 지위는 낮추는 방식으로 사회적 균형을 찾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애덤 스미스가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10만원대의 대학 등록금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한국 대학의 교수 월급은 지난 10년 동안 그야말로 획기적으로 올랐는데, 20대의 빈곤화와 교수들의 부유화가 거의 동시에 진행된 셈이고, 그 한가운데에 대학의 토건화가 자리 잡고 있다. 266


 예를 들어보자. 20대 남녀가 데이트하는 데 정부가 그냥 보조금을 준다고 해보자. 이것은 생태적인가? 만약 토건으로 가는 돈을 빼서, 이렇게 돌린다고 가정하면, 생태 정책으로 디자인할 수도 있다. 물론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붙여야 하는데, 4대강 사업보다는 출산율 저하에 대한 하나의 대책으로 20대 남녀의 데이트에 대한 보조금이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쉬울 것이다. 말장난이라고? 한국의 토건사업들은 많은 경우, 이 정도의 말장난도 하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의 공식적 장치를 통해서 돈을 마구 쓴다.

 (···) 한국의 대부분의 정부 소속 경제학자들이 지금까지 증권사 영업맨 아니면 토건 전도사 같은 역할 외에 한 게 도대체 뭐가 있는가? 그렇게 할 거라면 증권사나 부동산 기획사 아니면 건설사에서 월급을 받아야지, 왜 국민들이 주는 ‘국록’을 받고 있는가?

지금의 상황에서 ‘국토 생태’를 중심으로 사유한다면, 토건 경제가 완화될 때까지는 당분간 한국에서는 생태학이 바로 정치경제학이다.(···) 이 생태학의 문제를 푸는 것이 바로 한국의 문제를 푸는 지름길이며, 부동산 대공황 이후의 한국 경제의 정상화 단초를 찾는 길이다. 268


 개인적으로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추진한 정책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그는 생태적이지도 않았고, 문화적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보존’과 ‘정주’와 같이 고건 시장 시절의 서울시가 가지고 있었던 패러다임은 이명박, 오세훈을 거치면서, 파괴와 건설의 흐름으로 바뀌었다.(···) 가난한 사람은 끊임없이 서울 밖으로 내몰렸고, 그 빈 공간에 재개발을 통해서 들어선 주상복합아파트로 끊임없이 부자들이 채워졌다.(···) 국민소득 4만불을 몇 년 전에 넘긴 스위스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인 취리히에서 2~3개의 집은 가뿐히 살 수 있는 돈이 서울의 평균 집값이다. 276


 우리는 다른 어떤 OECD 국가와 비교해도 두드러지는 성매매, 접대, 부패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 중의 상당히 많은 것들은 토건과 연결되어 있다.(···) 토건을 하든, 무슨 짓을 하든, 쇼비니즘과 연결되면 전부 ‘애국자’로서 영웅이 된다.

노무현 정부가 빠져든 함정의 하나가 토건이라면, 또 다른 함정은 쇼비니즘일 것이다.(···) 일본도 토건 붐과 함께 스포츠 쇼비니즘이 같이 작동했는데, 토건의 흐름이 약해지면서, 그 대신 지역 자치 혹은 ‘대안 교육’과 같은, 아직 한국에서는 너무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 상징들이 앞으로 오게 되었다. 당연히 스포츠 쇼비니즘도 완화되면서,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도 못 따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이것은 일본 스포츠가 몰락한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엘리트 스포츠의 토건형 쇼비니즘을 청산함으로써 발생한 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280


한국에서 대중 영웅둘을 만들어주는 것은 강남 TK나 조선일보가 아니라 진짜 민중들이다. 그들이 TV를 보고, 응원을 하고, 자신들의 일처럼 좋아해주었기 때문에 영웅이 되고, 스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신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이런 민중들을 대변하는 정말로 민중들의 스타는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축구 황제 펠레는 가난한 제3세계 민중의 스타였고, 그는 그들을 대변하면서 평생을 살았다. 무하마드 알리는 흑인들의 영웅이었고, 스타였기에 그는 그들의 대변자로 살았다.(···) 한국의 스포츠 영웅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부동산 자본의 철저한 대변인이 되었고, 그들 중에 한명도 자신을 지지한 민중들의 대변자가 된 사람이 없었다. 한국의 쇼비니즘은 자본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런 쇼비니즘을 등에 엎은 스포츠 영웅들은 지독할 정도로 젊은 쇼비니스트이자 민중의 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281


한국에서 골프는 토건의 상징이며 동시에 반(反) 민중의 상징이다. 노무현, 이해찬, 전부 골프를 가까이했던 정치인들이고, 이 사람들 입에서 형식적으로나마 ‘민중’이라는 소리가 나온 적은 거의 없다. 그렇게 골프를 통해서 한국의 민주주의 투사들은 토건의 길을 걸어간 것이고 스스로 ‘민중의 적’이 된 셈이다. 단일 사건으로는 한국 민중의 가장 큰 위협은 여전히 한미 FTA다. FTA라는 틀 자체가 워낙 자본과 기업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 복지의 영역이나 공공성에 위협적인 것이라서 기본적으로 반(反) 민중적이다. 게다가 ‘표준 폼’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FTA 기본 문서양식은 개별 국가의 정책에 대한 개입도가 매우 높아서 여전히 폭탄 덩어리다. 그런데 그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손해 보면 우리나라에게는 이득이 될까? 전체적으로는 미국이 이득을 보는데, 미국 자본이 이득을 보고 미국 민중들 특히 노동자들은 손해를 본다.(···) 한미 FTA는 한국 민중, 미국 민중 모두에게 손해이고, 그 대신 한국 자본, 미국 자본에게는 일정한 이익을 줄 수 있다.(···) 유시민은 새만금에 골프장 100개를 짓자고 했다. 그가 민주주의의 투사이고,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화신인지는 몰라도, 그는 한국의 민중을 대변하지 않고, 오히려 골프장과 골프 동맹을 지지했던 사람이다. 282


 한국에서 진보는 골프와 함께 무너졌다.(···) ‘민주’ 혹은 ‘민주주의’는 장식품이고, ‘큰 토건’과 ‘작은 토건’의 차이점만 있지, 골프 정치이자 골프의 지지자인 것은 마찬가지다.(···) DJ의 집권 때 야당 인사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에게 골프는 생소한 것이었다. YS의 등산화, DJ의 지팡이, 모두 골프와는 거리가 먼 상징들이었다. 그런 흐름의 연장 속에서 소위 한국의 ‘리버럴’이 집권을 한 것인데, 토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야당 인사가 골프 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졌고, 그렇게 기득권이 되어가고, 그렇게 부패한 것이다.

 골프와 익숙해지면서 이해찬이나 유시민 같은 사람들이 ‘민중’과 멀어진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골프장에서 주요한 인사와 만나고 그렇게 접대받으면서, 민중의 문화, 민중의 삶, 그리고 작은 생태계의 목소리가 들리겠는가? 광장, 시장과 뒷골목이 한국의 민중이 숨 쉬고 움직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움직이는 한국의 엘리트가 도대체 누가 있는가? 유시민, 이해찬, 모두 민주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배신자들이다. 293


 이 골프로 집중된 돈과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부딪힌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토건, 신자유주의, 젠더, 이 3가지가 지금 우리가 보는 문제의 3대 의제다. 모두 골프 동맹군이 꽉 잡고 있는 전문 분야다. 그리고 이 5퍼센트가 나머지 95퍼센트를 끌고 가는 방식의 기본 메커니즘이 바로 쇼비니즘 아닌가? 내가 20대와 여성이 다음 세력 혹은 다음 동맹 세력의 기본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의 20대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은 어차피 경제적인 이유로 골프와는 인연이 없다. 294-295


노무현이 골프장으로 달려갈 때, 나는 그 이유가 우리나라에 녹색당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거의 다 내놓았다. 나는 다시 가난해졌지만, 녹색당을 만들지는 못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지만, 어쨌든 그때 우리의 힘으로는 창당에 필요한, 다섯 개 광역지자체에서 천 명씩, 5천 명 정도를 모으지 못했다.(···) 한창 때 환경운동연합의 공식 회원이 5만 명 가까이 갔었는데, 그 힘을 등에 업고도 고작 5000명의 당원을 모을 수가 없었다니! 그러나 모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명랑해지려고 노력했고, 늘 즐거운 생각을 하고, 우리에게 올 좋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했다.

 나의 선배들은 집안이 아주 가난해졌을 때에도 운동을 계속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3년 정도, 아주 가난한 생활을 했었는데, 나와 아내의 통장에 마지막 10만원이 남았을 때 결국 녹색당에 대한 꿈을 접었다. 299-300



4장 디버블링과 국민경제의 생태적 대전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종신 고용의 전면화, 그 대신 노동 시간 단축에 의한 개인당 노동 임금의 삭감이다.(···) 평생 일하는 대신, 일을 덜하고, 당연히 월급도 줄이는 방안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확실한 것은, 이런 방식의 노동전환이 생태적인 관점에서 미래의 노동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줄어든 임금으로도 자신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값, 교육비, 육아 비용, 이러한 비용들이 적어도 삭감된 임금 혹은 그 이상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임금의 사회적 성격을 높이면 가능하고, 실제 1인당 국민소득 6만 불을 넘긴 나라들이 전부 이런 방식을 취했다. 351


 일주일에 이틀 일하고 그 대신에 지금 임금의 절반만 받으라면 독자 여러분은 받아들이시겠는가?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것이 소위 알바나 비정규직의 형태라면 당연히 거부하겠지만, 만약 이러한 방식이 종신 고용이 보장된 정규직이라면 검토해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연구직이거나 창조력과 관련된 직업이라면 받아들일 여지가 더욱 많을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생산 과정’의 유연화다. 이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줄어든 노동 시간이 교육 훈련이나 문화활동과 연결되면서 창의력의 증가와 함께 문화 부문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면 가능할 수 있다. 이는 개별 기업의 생산성 증가를 뛰어넘어 국민경제의 창조 경제로의 전환 그리고 경제의 문화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노동의 세계는(···)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이 생겨나는 사회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주일에 이틀 노는 사람이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을 ‘창의의 세계’에서는 이겨낼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사람들의 독서량과 영화 보는 분량 혹은 사색의 양을 무슨 수로 이틀 노는 사람들이 당해낼 것인가? 놀이와 일을 결합시키고, 삶과 노동의 분리로부터 발생하는 소외를 해결하는 것이 생태학이 추구하는 노동관이다. 352


당신의 월급을 높여줄 테니 살아남은 당신은 ‘구조조정’에 찬성하라! 이게 신자유주의의 정신이었다. 인간의 야비함에 호소하는 직관적이며 원초적인 경제 시스템이며, 이렇게 살아남은 소수자를 ‘능력자’로 칭송하며 지난 10년을 우리는 살아왔다.(···) 인간은 모두가 높은 연봉과 ‘럭셔리’를 통한 과시만을 원할 것 같지만,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사랑도 하고 봉사도 하고 때로는 ‘자발적 희생’도 선택하는 아주 복잡미묘한 존재다. 353


 고강도 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사회적 덕목이던 시기는 이제 끝나간다. 대체 휴가에 대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그렇게 놀기만 해서는 국가는 도대체 누가 먹여 살리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포디즘의 시대에는 이 말이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식과 기술 혹은 문화와 같은 요소들이 노동 시간이나 기계적으로 해석된 노동 생산성보다 더 중요하며, 장기적 성장 패턴에 안정성을 주는 ‘축적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해야 잘산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앞으로의 경제에서 죽어라고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노는 사람을 이기기가 어렵다. 355


 대학 진학률이 30퍼센트를 넘지 않는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3배이고, 역시 비슷한 수준인 노르웨이는 우리의 4배가 넘는다. 대학을 졸업해야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편견일 뿐이다. 학교에서 입시 교육으로 중등 교육 6년을 암기만 하는 방식으로 한국 경제가 더 나아갈 곳은 없고, 그러다 보니 더욱더 토건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아닌가?

 사회가 우리의 10대에게 문화 교육과 지식 교육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제공한다면, 아마 그중에서 우리가 잊어버린 한학을 배우겠다는 학생도 나올 수 있고, 더 이상 명맥을 잇기가 어려워진 문사철에 인생을 걸겠다는 학생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식과 창의성의 또 다른 속성은 바로 다양성인데,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입시용 암기 교육만이 공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다양성’이라는 속성을 망각한 것 같다.(···) 나는 지자체, 예를 들면 시청이나 구청과 같이 정부의 일부이지만 중앙정부와는 다른 예산과 다른 작동 방식을 가지고 있는 지방 정부들이 문화 교육과 지식 교육의 중심적인 주체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많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98-400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수많은 능력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부유한 남자 친구들에게 에디트 피아프처럼 가수가 되게 해달라고 하거나 배우가 되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그들 중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숍’을 내게 해달라고 한 사람이 바로 가르리엘 사넬이다.(···) 샤넬은 가수와 재단사라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자신의 길이 바로 재단사이자 디자이너, 즉 일종의 ‘문화 생산자’로서의 길이었다. 그런 그녀가 기본적인 기술과 테크닉을 배운 곳은 바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평범한 학교였다. 고아였던 샤넬에게 20세기 초에도 기본 교육이 제공되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1세기 정도가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는 그걸 못한다. 우리는 샤넬 백을 사고 샤넬 명품을 부러워하는 학생들만을 키우고 있고, 가난했고 고아였지만 호기심과 질문이 넘쳤던 샤넬을 더 이상 키워내지는 못한다. 샤넬이 지금 한국에 태어났어 봐라. 고아인 그녀가 지금의 공교육과 대치동 학원가 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우리는 해방되면서부터 교육에 많은 노력을 들인 나라다. 그러나 종교계, 시민사회 대부분이 입시 교육 앞에 눈만 껌뻑껌뻑거리면서 대치동 눈치 보는 형국이다. 모두가 암기의 획일성에 갇힌 지금, 지자체와 시민사회 그리고 더 많은 자발적 흐름들이 다양성을 향해서 모여야 한다. 400-401


60년대 유럽의 경우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거리를 메워 결국 대학 국유화가 이루어졌다. 우파들이 우파 손으로 자신들의 보루였던 대학을 국유화했던 사건, 이것은 기술적 해법이 아니라 사회적 여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단순히 투표의 과반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거나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도로는 유럽식의 대학 국유화는 추진하기 어렵다. 68혁명 때의 유럽의 대학 개혁은 좌파 정부에서 진행된 일이 아니라 드골과 같은 우파 정부 때 벌어진 일인데, 정부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로 대중의 저항이 강해서 사람들에게 납득할 만한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수능 총 파업’이라는 이름으로 고3이 수능을 통한 대학 입시과정을 집단적으로 보이코트하는 경우가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프타를 추진하던 멕시코에서 상징적 ‘1페소’를 받고 있는 멕시코 대학 등 국립대학의 등록금을 사립대학 수준으로 높이려고 한 적이 있었다. 이걸 막기 위해서 멕시코 전역에서 수개월에 걸친 동맹 휴학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유럽국가들이 이러한 제도적 전환을 한 것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불이 되기 이전의 일이고, 우리는 이미 성공 사례에 대한 참고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혹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 혹은 ‘사회적 에너지’의 문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405-406


 한국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지금 등록금 문제가 딱 그런 상황인데, ‘정책 수요’만으로는 한국이라는 공화국보다 더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는 대학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조정해서 바뀌기가 어렵다. 309



[밑줄] 우석훈,『디버블링』.hwp


[밑줄] 우석훈,『디버블링』.hwp
0.0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