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창작소설] 끼룩끼룩

두괴즐 2011. 5. 30. 19:20

<끼룩끼룩>

 



 웬일인지 아버지가 함께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셨다. 그렇다. 보러‘가자’고 하신 것이다. 세상에! 우리는 한 번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아버지를 쪽팔려하는 내 탓이기도 하고, 나와 주위를 흘끗거리는 아버지의 눈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별일이었고 우리는 처음으로 샤말란 감독의 작품을 따뜻한 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신작은 그가 신통함을 잃은 것이 확실하다는 나의 주장에 더 힘을 실어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곤 세상에! 레스토랑을 갔다. 아버지는 영화에 짜증이 나셨는지 이성을 잃으신 듯 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도 조성되어 있는 정원이 가짜라는 소리를 듣곤 연신 충격과 쯧쯧을 되풀이 하셨다. 아버지가 그러거나 말거나 난 그저 다행스런 진짜 음식에 감사하며 혀에 말아 먹을 뿐이었다. ‘세상에!’가 절로 나오는 음식들에 눈물로 경의를 표하며 가짜 정원 따윈 역시 중요치 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던 그 때,


 “아들, 군대나 가도록 해라.”


 나를 가짜 정원 보듯 보고 있던 아버지의 쯧쯧 사이로 나온 충격적인 소리였다.


 

*


 초코파이 하나도 주지 않는 지랄 같은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지랄 발광 이라는 자대에 배치됐는데, 아싸! 유격훈련 기간이었고 부대는 그저 그런 병력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 덕에 부대는 조용했고 나는 신병 대기실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깜짝이야!

철컥 문이 열리더니 와,와,와…, 왕이 들어오셨다. 으갸갸. 작대기가 무려 네 개! 병장님이 들어오신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나 쯧쯧하고 계실 아버지에게도 들려라 절대 충성을 외쳤다. 그런데 이 왕은 그저 가짜 정원 보듯 끼룩끼룩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 유격훈련에서 열외가 되려면 적어도 끼룩끼룩 웃는 법 정도는 깨우쳐야 하는 법일 게다. 어쨌거나 그 분은 오셨고 난 눈앞이 깜깜한 지옥생활백서를 들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호라. 왕은 사랑을 읊는 것이 아닌가. 군에서 듣는 사랑이란 예수의 사랑만큼이나 환상성이 흥건하다. 이 이야긴 그가 전하는 복음이다.


 왕이 20살 때 그의 소꿉친구였던 a가 찾아왔다. a는 어릴 적 동네 친구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를 가는 바람에 생이별을 한 자신의 첫 마누라였다. 돌아온 a는 더욱 예뻐져서 마치 텔레비전 속에서 살다가 돌아온 미소녀 같았단다. 그건 그렇다 쳐도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런 a가 왕에게 결혼 약속 운운하며 미니스커트를 살랑살랑 흔들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잠깐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계속 왕이라고 지칭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건 계급상의 관계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는 차라리 끼룩끼룩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 분의 신체를 묘사하자면 전체적으로 뚱뚱이 마인부우 몸매를 가지고 있고 크고 낮은 코를 중심으로 너무 쫙 벌어진 입과 지나치게 얍삽한 눈이 서로 짜증을 내며 마주하고 있는 그런 형국이다. 그러니깐 이건 뭐 딱 괴물로 정리 된다. 괴물이라고 해서 지나친 것도 같지만 ‘슈렉은 참 미남이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끔 하니 뭐 그렇게 보는 것이 그리 틀리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생각했다. 끼룩끼룩은 재벌 2세구나.


 a의 등장으로 알콩달콩한 청춘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이 아르바이트 하는 바(bar)에 온 b가 끼룩끼룩의 품에 안겼단다. 나원참. 그리고 뭔가 착각한듯한데 자신이 아르바이트 하는 바가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바였겠지. 끼룩끼룩으로 볼 것 같으면 바텐더가 갖춰선 안 될 모든 속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데 아르바이트는 뭔 놈의 오바이트 같은 소린가? 이름 있는 회사의 웹디자이너라는 b는 바에서 오랫동안 끼룩끼룩을 지켜봤고 그제야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단다. 확실히 그 맘 때를 떠 올려보면 한창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웹디자이너는 화려해 보이지만 안정성을 가진 직업은 아니지 않던가. 그렇다. 역시나 연예인 뺨치게 예쁘다는 그녀는 재벌 2세가 필요했으리라.


 그런데 이건 또 뭐람? b의 존재를 알게 된 a가 치마의 수위를 높이며 아양을 강화하고 a의 존재를 알게 된 b가 우월한 바디를 가지고 끼룩끼룩의 신체를 황홀하게 해 줄 때 c가 등장했다. c는 앞집에 이사를 온 여고생으로 자신이 가정교사로 맡고 있는 학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가정교사라니. 이건 뭐, 재벌2세가 수작을 위해 별짓을 다한다 싶다. c 역시 여고생 특유의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며 자신의 품속에 들어오고파 안달이란다. 해 맑은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순수해지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단다. 그래. 참 좋겠지. 난 이야기를 이쯤 듣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공평하구나 하고. 정말이지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어쩐지 이상했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지만 내 인생에 여자는 목도리여우원숭이처럼 희귀종이었을 뿐이었다. 역시 이제는 승자독식의 시대다.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끼룩끼룩은 d를 등장시킨다. 에라이, 다 해먹어라!


 얼짱이 아니면 상대를 안 하는 재벌 2세의 특성상 d도 우월한 여자였다. 그렇다. 모델이란다. 참나, 가지가지 한다. 빌어먹을 자본주의에서는 사랑도 그저 돈에 굽신굽신이다. 끼룩끼룩 그래 너는 유격도 쨌겠다, 이제 말년이니 곧 우월한 여자들의 사랑을 만끽하겠다, 인생이 참 좋겠지. 난 그저 암담함과 우울함에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 속으로 잠기고 있을 뿐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여인들을 다 거느리고 있는 걸까? 내게 희망이 되게 제발 비극적 결말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끼룩끼룩의 염장 지르는 소음을 귀에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아무리 승자독식 사회라도 인간은 그 자체가 자본은 아니기에 힘이 있다. 바로 질투의 힘. 그것이 희망이다. 역시 질투는 위대했다. 서로 지지고 볶고 또 우정 타령을 했지만, 결국 끼룩끼룩도 한 여자만을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돈 때문에 접근한 것이 빤한 여자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장 애틋하게 느껴졌던 소꿉친구 a가 어떨까 싶었는데. 오호라, 마지막 한 가닥의 개념일까. 그는 a를 선택했다. 참으로 흥건하고도 환상적인 끼룩끼룩의 연애 담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실은 지옥생활백서를 들은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드는 것이었고 정말 자대는 지랄 발광이구나를 깨달은 기분이었고 괴물이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 사회가 괴상할 뿐이었고 실상은 그저 그의 모든 조건이 부러울 뿐이었다. 패닉의 UFO1)가 간절한 순간이었지만 그래봤자 겨우 이런 말을 뱉어낼 따름이었다.


 “역시 매력남에는 미녀들이 모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병장님의 선택이 정말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a는 정말 행복한 여자입니다.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시겠지 말입니다?”


 병장 앞의 이등병은 모든 걸 이해하고야 마는 그런 비상한 능력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장담 역시 꿰뚫었다는 듯 그는 또다시 끼룩끼룩 댄다.


 “응. 결국 결혼까지 해서 엔딩을 봤지. 네 명의 여자를 다 먹어보고 엔딩 띄우는 건 최고 난이도지.”

 

그래, 결혼.

결혼! 

엥? 

결혼을 했다고

? ?

뭐,,,, 뭐지

? ??

 

 “그…, 결혼을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응. 그게 엔딩이거든.”


 엔딩? 웨딩? 웨딩? 엔딩?


 “연애 시뮬 게임 『두근두근』, 실은 그것이 새로운 바이블이야.”


 !!!!!


 이게 뭐야?!

 아이고야, 그런 거였다. 끼룩끼룩은 괴물도 아니었고 재벌 2세는 더더욱 아니었으며 매력남은 기필코 아닌 그저, 그저, 그저, 그저, 에라이, 미친놈이었다. 게임 이야기를 자신의 진짜 삶으로 체화하다니……. 그저 이럴수가, 다. 아버지, 가짜 정원이요? 그런 건 장난입니다. 그런 것에 쯧쯧 하시면 게임을 믿는 이놈은 어쩌란 말입니까? 요즘 신통을 잃은 샤말란 감독에게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는 스승이 이곳에 있습니다.



*


 끼룩끼룩이 자신 있게 자신의 힘 덕분에 가능했다고 우쭐댔던 나의 내무반 배치는 결국 고된 이등병 생활은 미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다는 지혜를 일찌감치 깨닫게 했고 미친 끼룩끼룩을 보며 꼬륵꼬륵한 시간을 보냈다. 자대 배치가 3주 쯤 지나고 끼룩끼룩은 전역을 하게 됐다. 떠나는 사람은 대게 그렇듯이 제발이라는 연락처를 남겨 놨고 나는 안녕히를 가식에 싸서 건네주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이 게을러터진 국방부 시계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타이르고, 걷어차고, 다독이고, 욕을했다빌고,

있는듯없는듯 머리를쥐어뜯다 심고, 총이삽이되고 삽이총이되는, 그런 탁월한 연금술의 획득은 개뿔, 어쨌거나 젊음의 8할을 빨려 먹힌 후, 나 역시 전역을 하게 됐다.


 앞으로 세상은 내 것,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슈퍼한 믿음을 가지고 사회로 나왔다. 원래 정신과 시간의 방2)인 군대를 다녀오면 22살의 육체에 222살의 정신을 가지게 되기에 그런 슈퍼한 믿음을 갖게 되는 법이다.(결국 셀한테 개발리지만 슈퍼한 믿음을 갖고 있던 베지터를 기억해 보라.3)) 게다가 22살의 육체에 222살의 정신이 깃들게 되면, 그렇다. 더욱 간절해진다.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4) 라는 사치는 안녕. 주적에 관한 정신교육 못지않게 텔레비전 속 여자를 통해 정신교육 된 예비역의 갈증은 지독함에 가깝다.


어쨌거나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슈퍼한 믿음은


미끌, 괜찮아. 미끌, 그럴 수도 있지. 미끌, 쉽지만은 않겠지. 미끌, 나도 별로였어. 미끌, 하여튼 요즘 애들은. 미끌, 나는 좋았는데. 미끌, 진짜 머리 감았어! 미끌, 향수도 뿌렸는데. 미끌, 니가 폭탄이다. 미끌, 정말 사랑했는데. 미끌, 세상은 왜 이렇지? 미끌,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는데. 미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미끌, 이럴 수는 없을 텐데…

미끌끌끌끌끝. 

2년, 22번의 소개팅, 세상에 이런 일이….



*


 노숙자와 이주 노동자의 소굴이어서 경찰 아니면 종교인만이 드나든다는 ‘그래도 나름’이란 공원을 아버지와 함께 갔다. 공원에 조성된 진짜 정원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연신 쯧쯧댔다. 그놈의 쯧쯧을 듣던 세월도 언 수천억초, 나는 가짜와 진짜를 완전히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가짜 정원 취급이 억울했던 진짜 정원이 내게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시’와 ‘비’ 사이가 얼마나 살벌하던지 그 동안 사랑했던 ‘시(時)’와 ‘비(Rain)’의 잔인한 이면을 보는 기분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 그러냐?

☻☈ 그렇습니다.

☹♐ 끼에에에에에에,

☠   옴,옴,깊,깊,


급기야, 

자신의 죄에 대해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꿇었다. 


그런 내게 다가온 고양이는 야옹대신 어흥이라며 인사했고 네온사인의 덫에 걸린 사람들을 구해달라는 별의 부탁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하늘엔 애처로운 별들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고, 유약한 별빛에 샤워를 하던 나는 바나나 껍질이 부러웠던 십창에서 세상에서 가장 슈퍼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옴옴깊깊.

함께 별빛 샤워를 하던 아버지가 마침내 쯧쯧을 벗고, 에휴로 탈바꿈하던 그 때,


나는, 

끼룩끼룩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나도 a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b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c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도 

d를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e까지……


 안녕히 계시던 제발을 꺼내 다이얼을 돌렸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는 끼룩끼룩 웃었다. 그 웃음은 고해성사를 대신해 주었고 완전한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나의 믿음 없음을 정죄하지 않았고 면류관 코드번호를 알려주며 구원열차를 예매해 주었다. 사도가 된 내게 메시아는『두근두근』을 상처 받은 자의 구원을 위해 전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전도를 한다.



*


 “팀장님, 이번 타이틀은 정말 대박입니다. 전도현상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어요. 차기작 구상보단 확장 팩을 계속 찍어 내서 우려먹어도 될 만큼 믿음이 굳건해 보입니다. 캐릭터 f, g는 물론이고 h까지 이미 완료단계에 와있습니다.”

 “그래, 이번 타이틀이 최고의 수익률을 경신하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네. 이게 다 그 끼룩끼룩 덕분 아니겠나? 오늘은 반가운 소식도 많이 들었고 하니 각자의 사랑을 위해 이만 마치도록 하겠네. 다들 수고했다.”

 화사하게 넘실대는 회사는 웃음바다였지만 그 속에서 끼룩끼룩 웃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2008. 초여름. 최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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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닉은 이적과 김진표로 이루어진 듀오이고 <UFO>는 그들의 2집 앨범 타이틀곡이다. 나는 이곡을 “이런 개 같은 경우”인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요청하는 곡이라고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

2) 도리야마 아키라의 작품인『드래곤볼』에 나오는 장소이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도, 현실세계에서는 단 하루의 시간만 간다.

3) 『드래곤볼』의 한 에피소드이다. 셀을 무찌르기 위해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훈련을 한 베지터는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결투에선 셀에게 죽기 일보직전까지 얻어맞는다.

4)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이 작품은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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